총기의 역사를 다룰 때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이 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와 유진 스토너이다.

구소련군의 하사였던 칼라시니코프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총기를 개발한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온 게 AK-47 돌격 소총이다. AK-47은 구소련의 주력 돌격소총으로 채택되며 대규모로 양산됐다. 단순한 구조와 튼튼한 총몸과 총열. AK-47은 공산 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한국인들에게 AK-47은 ‘북한군총’, ‘공산당총’으로 통한다. 최근엔 이슬람국가(IS)나 탈레반 등 테러집단이 사용하는 총으로 더 많이 인식되고 있다.

세계 총기시장을 양분한 AK-47과 M16.

칼라시니코프의 AK-47이 공산진영을 대표한다면, 스토너의 AR-15는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총이다. AR-15는 베트남전에서 우수성이 입증됐다. AR-15의 경우 5.56mm 구경으로 AK-47(7.62mm)보다 탄 자체의 관통력은 약했지만 빠른 발사속도와 긴 사거리로 전장을 효과적으로 지배했다. 미군의 AR-15 제식 명칭은 M16A1. 한국군도 K2소총 개발 전까진 M16A1을 제식 소총으로 사용했다.

총기 역사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칼라시니코프와 스토너는 상대방 총기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총기보다 앞서는 총을 만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총기 제작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전북 완주군 완주산업단지에 위치한 다산기공 본사.

◆ 한국군 소총, 경쟁시대 열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8월 다산기공을 방위산업체로 지정했다. 총기 생산 수출업체인 다산기공이 군의 소총 구매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S&T모티브만 한국군에 소총을 독점 공급해왔다. 그러나 다산기공이 방위산업체로 지정되면서 한국군 소총 시장은 S&T모티브와 다산기공의 경쟁 체제로 탈바꿈했다.

S&T모티브의 전신은 1970년대 만들어진 조병창이다. 조병창은 1981년 대우정밀공업으로 민영화됐다. S&T그룹이 2006년 9월 대우정밀공업을 인수하면서 회사이름이 지금의 S&T모티브로 바뀌었다.

김병학 다산기공 대표는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에서 근무하면서 배운 금속 가공 기술을 토대로 1992년 11월 1일 전북 전주 제1산업단지에 회사를 창업했다. 1993년 총포부품 제조업 허가를 취득한 다산기공은 총기 방아쇠 뭉치를 만들어 세계 유수의 총기회사에 수출했다.

방아쇠 뭉치를 만들면서 권총 총열 제작에도 나섰다. ‘콜트45’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1911’ 권총의 총열을 제작했다. 이어 AK-47과 AR-15 소총 총열을 만들었다.

‘다산 부품 괜찮다’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부품 기술에 자신이 붙은 다산기공은 2012년부터 완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2015년 1월 방위사업청으로부터 군용총포 제조업 허가를 받은 다산기공은 같은 해 8월 첫 완제품을 만들었다.

다산기공에서 만든 알루미늄 합금강 총몸. 다산기공 관계자는 “경량성과 내구성을 잡은 소재”라고 소개했다.

세계 총기회사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던 다산기공은 ‘DASAN’ 브랜드를 걸고 완제품 공급에 나섰다.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김병학 대표는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완제품이 차지한 비중은 5%에 그쳤지만 올해엔 10%로 보고 있다”면서 “내년 목표는 완제품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수도 급증했다. 1992년 7명으로 출발한 다산기공의 직원수는 현재 420명이다. 2016년 3월엔 고용창출 100대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산기공은 전북 완주에 본사와 제1공장, 제2공장을 두고 있다. 1공장에선 정밀주조 방식으로 주요 부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2공장에선 총열 내부 크롬 도금 및 도색 작업을 한다. 본사에는 주요 사무실과 총기 부품 및 완제품 생산 공정을 담당하는 공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자회사로는 미국 법인인 ‘DASANUSA’와 정밀 공정용 공구 제작업체인 ‘다산툴’이 있다.

다산기공의 지난해 매출액은 560억원, 올해 목표 매출액은 680억원이다. 다산기공 관계자는 “목표액 달성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산기공 본사에서 가동하고 있는 머시닝센터.

◆ 예상과 다른 공장 풍경... ‘깨끗하고 조용하다’

9월 30일 찾은 전북 익산 본사 공장은 예상보다 더 깨끗한 모습이었다. 아이보리색 에폭시 코팅이 된 바닥은 깔끔했다. 또 ‘머시닝센터’라는 정밀공정 기계 덕분에 철강을 깎는 소음과 물로 씻어내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100여개의 프로그램이 저장된 머시닝센터는 소재를 올려놓으면 입력한 프로그램대로 제품을 제작한다. 금속 덩어리를 깎아 가공하는 정밀 CNC 방식 공정도 함께 진행된다.

다산기공이 가장 자랑하는 기술은 ‘해머포징’이다. 해머포징은 총열로 만들 소재의 외부를 두드리면서 성형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총기 제작은 총열크기보다 큰 철강을 깎아가면서 만드는 방식인 반면 해머포징은 총열크기보다 작은 철강을 두드려 크기를 늘린다. 이렇게 만들면 조질(강의 결정입자를 미세하게 만들어 강의 질을 조정해 강인성을 향상시키는 조작)이 돼 기존 제품보다 치밀하면서도 강성과 강도는 더 세진다.

해머포징 장비와 특장점.

해머포징 기계 한 대의 값은 무려 30억원. 황인섭 다산기공 상무는 “국내 정밀 기공 업체 중 해머포징 기계를 보유한 회사는 우리가 유일하다”면서 “미국 등 해외 군수업체에서는 해머포징으로 만든 총열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 한가운데에는 ‘측정실’이 자리했다. 이 곳에선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제품의 정밀도를 점검하는 작업을 한다. 작은 오차만 있어도 오발·폭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든 부분을 측정실에서 검사한다.

본사에서 자동차로 3분 거리에 있는 1공장에서는 정밀 주조 방식으로 부품을 생산했다. 밀랍이나 연납 등 낮은 온도에서 녹아내리는 고체를 사용해 형상을 만든 다음 세라믹을 입혀 거푸집을 만든다. 거푸집이 굳으면 열처리 장비에 넣어 안에 들어있는 밀랍을 녹여 비운다. 세라믹 안에 비어있는 부분에 쇳물을 넣고 굳히면 주물품이 나온다. 주물품 겉에 붙은 세라믹을 모두 떼내고 거친 부분을 갈아내면 공정이 마무리된다.

2공장엔 대중탕 욕탕 사이즈의 수조가 2개 설치돼 있다. 이 곳에선 총열 내부 크롬 도금과 도색 작업이 진행된다. 총열 내부에 크롬 도금을 하는 것은 총기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준옥 다산기공 관리부 차장은 “도금 도색 작업은 이전엔 외주를 줬지만 기술 신뢰성 확보를 위해 올해부터 직접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다산이 만든 총 직접 쏴보니.. ‘안정적인 사격감’

공장 견학을 마치고 본사 공장 지하에 마련된 실내 사격장에서 총기 사격을 해봤다.

다산기공이 만든 총기. 위에서부터 AR-15, 1911권총, F90소총, 1911권총, AK-47, CAR-816, CAR-816.

9mm탄을 사용하는 DSP9과 45구경 DSP45 두 정의 권총, AR-15, CAR-816 소총을 직접 쏴봤다.

가장 먼저 잡은 건 DSP9이었다. 전통적인 총기 명기 1911 디자인을 채택한 이 권총엔 이중 안전장치가 적용됐다. 손잡이를 제대로 잡지 않으면 발사가 안되도록 해 안전사고를 최소화했다.

그 다음엔 DSP45를 잡았다. 45구경은 0.45인치를 의미한다.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2mm 가량 된다. 탄두가 큰 만큼 반동도 더 컸다. 첫발을 쏘고난 뒤 오른손이 확 들렸다. 2발째부턴 오른손을 지지하는 왼손에 더 힘을 줬다. 왼손 지지가 굳건해지자 정확도가 더 높아졌다. 홍콩 누아르 영화처럼 한손으로만 정확하게 사격하는 건 불가능했다.

AR-15 소총을 집었다. 불과 사흘전 예비군 훈련에서 M16A1 소총을 사격해봤기에 비교가 수월했다. M16A1보단 확실히 가벼웠다. 다산기공은 이 총의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 합금강 소재를 사용했다. 총열 덮개엔 다양한 액세서리를 장착할 수 있도록 피카티니 레일을 적용했다.

1911 권총을 사격하고 있는 윤희훈 기자.

조준경을 이용해 겨냥한 사격은 전체적으로 하탄이 났다. 사격 이전에 영점을 따로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6단계 길이 조정 개머리판은 신체에 맞춰 조정할 수 있다. 다만 조준경 이외에 별도의 가늠쇠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CAR-816 소총을 쏴봤다. CAR-816은 HK(헤클러 앤드 코흐)-416을 잇는 소총이다. 가스피스톤 방식(가스압으로 피스톤을 밀면, 피스톤과 연결된 봉이 노리쇠 뭉치를 밀어내는 방식)을 사용한 HK-416은 탄을 쏘고 난 후 나오는 탄매가 총열에 쌓이지 않아 내구성이 좋다. 모래속에 파묻혀있어도, 잠수 직후에도 바로 사용할 수 있어 특수전 부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CAR-816은 HK-416을 개선했다. 반동 완화 기술이 적용됐으며 가스량 조절 및 발사속도 조절 기능을 이용해 사용 환경에 최적화할 수 있도록 했다.

DSP45로 사격한 과녁판. 45구경 권총이었지만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실사격을 한 결과, 연사 발사시 상당히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AR-15보다 무게는 더 나갔지만 무게 중심이 안정적이어서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산기공은 CAR-816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보였다. 김병학 대표는 “총기 디자인 설계자인 로버트 허트가 와서 직접 테스트를 실시한 후, ‘원더풀’ 평가를 내렸다”면서 “총기 약실과 총열 등을 막고 ‘폭발 실험’을 실시했는데 탄이 막힌 것을 뚫고 나갔다. 당연히 총열이 터질 것이라고 예상됐는데 총알이 정상적으로 나가 테스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고 말했다.

◆ 제한된 시장, 경쟁 체제 적합성 놓곤 갑론을박

방산업계에서는 다산기공이 방산업체로 지정돼 입찰경쟁에 참여하게 된 것을 놓고 말이 많다. 시장이 제한된 상황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과열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소총의 경우, 군의 수요도 많지 않다. 군은 2017년 이후 새로운 총기 예산을 잡지 않고 있다. 올해 말까지 K2C1 소총 6만정을 구매할 예정이지만 2017년 이후 소총 구매 예산은 확보하지 않은 상태다.

다산기공 직원이 3D 측정실에서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방산업계에서는 2022년 예정된 차기 소총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고 있다. S&T모티브와 다산기공의 경쟁도 차기 소총 입찰 시점에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기 입찰이 경쟁체제가 된 데 대해 S&T모티브는 “(다산기공의) 방산업체 지정으로 인해 소구경화기부분의 공급이 경쟁체제가 됐다. 향후 당사의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자율 공시까지 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방 물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방산 업체를 추가로 지정한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한 개의 물자를 다수 업체에서 조달하는 것을 확대할 방침”이라며 “2008년 전문화·계열화 제도를 폐지한 후 대규모 재원이 투입되지 않는 방산물자는 복수의 업체를 지정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쟁 체제 도입은 산업 발전에 긍정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산업계 인사는 “기술력만 검증됐다면 경쟁에 못붙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병학 다산기공 대표

‘굴러온 돌’ 입장이 된 다산기공은 이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입장을 밝히기 꺼려했다. 다산기공 관계자는 “기존 회사의 노하우와 역사를 존중한다”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학 대표는 “한국의 총기시장은 매우 작지만 세계 시장은 매우 크다”며 ”총기 개발사도 짧아 많이 낙후돼 있지만 좋은 총을 만들어 군납해 자주국방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총기 부품과 관련해선 다산의 브랜드가 세계에서 통한다”면서 ”이제 소총·권총 완제품으로 선두대열에 올라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국가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