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산 강서구 테크로스 공장에서 직원들이 BMWS(평형수 살균 장치)의 수압을 점검하고 있다. 조선업의 불황으로 최근 기자재 업체 상당수가 '개점휴업' 상태이지만,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9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22일 오후 부산 녹산공단에 있는 조선기자재 업체 테크로스의 공장. 직원 40여 명이 선박에 들어가는 캐비닛 크기의 기계 장치 조립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조립대 선반에는 부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공장 안쪽 연구실에선 장비 성능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최악의 조선업 불황 때문에 대부분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개점휴업’ 상태인데도 이 회사는 밀린 일감이 산더미이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900억원을 돌파했고, 5년 새 매출액은 5배 커졌다.

◇40조원짜리 새 시장 열린다

이 업체가 하는 일은 ‘선박 평형수’를 살균하는 처리 장치(BWMS)를 만드는 일이다. 선박 평형수는 배에 물건을 싣거나 내릴 때 배가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박 아래에 채우는 물이다. 배에 짐을 실을 땐 평형수를 빼고, 짐을 내릴 땐 평형수를 채운다. 지금까지는 외항선들이 싣고 온 평형수를 정박하는 항구에 그냥 버렸다. 이 때문에 평형수 안에 섞여 있던 플랑크톤 등 생물종이 함께 번져나가면서 지역 생태계가 교란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호주 남부 해안에 퍼진 아시아계 다시마, 흑해에 번식한 미국 해파리 등이 대표 사례이다.

그런데 국제해사기구(IMO)가 2022년까지 전 세계 모든 국제 항해용 선박에 대해 평형수 처리 장치를 달도록 하는 환경 규제를 최근 발표했다. 평형수 처리 장치는 일종의 필터다. 평형수를 채울 때 이 장치를 통과하게 해서 생물종을 거르거나 박멸한다. 바닷물에서 염소·오존을 뽑아내 살균제로 사용한다. 대당 가격은 60만~100만달러 정도다. 현재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은 6만7000여 척에 달한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는 최대 40조원에 달하는 선박 평형수 처리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위기의 국내 조선 기자재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뚫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이 1등이지만 경쟁도 치열… “기술개발에 총력 다 해야”

특히 한국은 선박 평형수 처리산업에서 글로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IMO가 승인한 평형수 처리 기술은 지금까지 37개인데, 이 가운데 13개가 한국 업체 기술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수주량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 39%를 차지하며, 세계 1위 국가로 올라서 있다.

한국이 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던 건 지금까지 한국 조선업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중희 테크로스 부사장은 “주요 선주들이 배를 만들 때 한국 조선업체에 맡겼고, 한국 조선업체가 한국 기자재 업체의 평형수 처리 장치를 설치했기 때문에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다”며 “우리만 해도 이미 1000척 이상 수주해 현재 장비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크로스 외에도 판아시아, NK, 한라IMS 등 비슷한 장비를 만들고 있는 업체들도 적게는 수척부터 많게는 1000여 척까지 수주를 받아둔 상태다. 이에 한국 정부도 이 산업을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 과제’ 중 하나로 지정해서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이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상대적으로 투자 시작은 늦었지만 발 빠르게 기술을 개발하는 해외 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선박평형수 처리 산업에 뛰어든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60여 곳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중국이 10여 곳, 일본·미주가 5~6개곳, 나머지 30곳이 유럽 업체들이다. 정영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선진국이 우수 기술을 무기로 이 시장에 가세하면 시장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며 “국내 업체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만 지금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