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던 에쓰씨엔지니어링(023960)이 27일 오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날 에스씨엔지니어링은 장 시작 직후 상한가까지 올랐으나 유력 대선후보로 예상되는 인물과 관련이 없다는 소식에 순식간에 급락했다.

대선이 가까워지며 ‘정치 테마주’가 기승이다. 국내 증시는 정책과 상관 없이 유력 정치인과 단순 혈연·학연·지연만 있어도 종목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 주식시장과 비교했을 때 지나치게 비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금융당국은 매번 '정치 테마주'에 대한 대응을 강화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주식시장에서는 거짓이거나 터무니없는 내용들이 유포되며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또한 문제를 일으키는 세력을 적발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이기 때문에 오히려 왜곡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 누구 동생, 누구 사촌인지가 중요한 한국

현재 유력 정치인과 관련된 테마주 종목은 수십개가 넘는다. 이들 종목들은 정책이나 회사 내용과 상관 없이 정치인들과 혈연·지연·학연 등으로 엮여 있다는 이유로 주목 받는다. 그리고 각 정치인들이 여론조사에서 얼마나 많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어떤 행보를 걷는가에 따라 주가가 좌우된다.

조선비즈 DB

3일 전, 에쓰씨엔지니어링의 주가가 처음 급등하게 된 계기는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이 이 회사에 투자했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다. 투자자들은 파인아시아자산운용의 대표인 반기로 씨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이름이 비슷해 반 총장의 사촌이라고 판단했다.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된 것이다.

이후 에쓰씨엔지니어링은 4일동안 연달아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4일 째 되는 27일 오전 반기로 대표가 언론보도를 통해 본인은 반기문 총장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에스씨엔지니어링의 주가는 순식간에 25.67%(1830원) 급락하며 53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상한가를 찍었던 고가(9260원) 대비 하루만에 반토막 난 셈이다.

또 다른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되는 보성파워텍(006910)은 지난 8일 전날보다 29.7%(3950원) 급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이날은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호 씨가 보성파워텍 부회장직을 사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다. 보성파워텍은 그 전까지 열흘 간 꾸준한 상승을 보여줬던 종목이다.

야당 정치 테마주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일에는 '안철수 테마주'가 들썩였다. 이날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대선 후보 단일화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혔다. 발언 이후 유가증권 시장에서 '안철수 테마주' 태원물산(001420)이 10% 넘게 올랐다. 태원물산은 감사가 안철수 기부재단의 상임 회계감사로 재직 중인 기업이다.

그리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테마주 중 하나인 고려산업(002140)은 27일 상한가에 이어 28일에도 급등했다. 고려산업은 자회사인 금강공업의 사외이사가 문재인 전 대표의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됐다.

◆ 미국은 지역·인맥보다 정책에 따라 움직여

해외에도 정치 테마주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달리 주로 정책적인 요인이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선 공화당 후보는 방위산업, 민주당은 헬스케어처럼 정책에 따라 주가 예측이 가능하다”며 “우리나라처럼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가까워지며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테마주는 신재생 에너지와 인프라·헬스케어주다. 클린턴 후보의 에너지 정책은 ‘지구온난화’를 염두에 두고 미국을 청정에너지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이다. 또한 그는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개혁 법안을 계승,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태양광 종목인 퍼스트솔라, 선파워, 솔라시티 등과 풍력 종목인 넥스트라에너지 등이 수혜주로 분류된다. 그리고 헬스케어 중 의료서비스 종목으로 HCA홀딩스, 유니버설 헬스서비스 등이 있고, 의료보험 사업 종목으로 유나이티드헬스, 애트나, 앤섬 등이 유망종목이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 질수록 헬스케어 분야가 후보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클린턴 후보가 트위터를 통해 한 특수의약품 회사의 높은 약값에 대해 비난하자 나스닥 바이오 지수는 급락했다. 또한 지난 24일 클린턴이 제약업체 ‘밀란’의 알레르기 치료제 ‘에피펜’의 높은 가격인상에 대해 비난하자 밀란의 주가가 5% 넘게 떨어지고 나스닥 바이오 상장지수펀드(ETF)도 3.4% 하락했다.

2012년 미국 대선을 앞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테마주는 건강, 정보통신(IT), 신재생에너지 관련 업체들이었다. 오바마는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열겠다는 공약과 함께 친환경 에너지 산업 활성화와 셰일가스 개발 등을 주장했다.

반면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테마주는 에너지와 금융업종이었다. 롬니 후보는 금융 규제 강화 법안을 폐지해 규제를 완화하고 석유·석탄·천연가스 등 전통 에너지산업의 규제를 풀겠다고 공약했었다.

대선 과정에서 이들 후보자들의 행보에 따라 정책 관련 테마주들이 들썩였다. 2012년 10월 초 대통령 후보 1차 토론회 때 오바마가 롬니에게 밀렸다. 그러자 의료시설 경영업체 HCA홀딩스는 주가가 5% 가까이 하락했다. HCA홀딩스는 대표적인 오바마 테마주였다. 반면 롬니 테마주였던 광산업체 아치콜, 알파내추럴, 제임스리버콜 등은 주가가 20% 넘게 급등했었다.

◆ 대부분이 사후약방문...그마저도 솜방망이 처벌

한국의 ‘정치 테마주’ 현상은 일반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2년 대선 기간 1년간 테마주 35개 종목을 거래한 195만개 계좌를 확인한 결과 개인투자자들이 1조5500억원의 손실을 입은 사실이 밝혀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치테마주는 변동성이 높기 때문에 주가가 급등하고 나서 일반 투자자들은 매매시점을 찾기 어렵다”며 큰 손실을 입는 게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정치 테마주들은 급격하게 올랐다가 다시 가파르게 하락해서 투자자들이 투자원금의 절반이상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안철수 테마주로 분류됐던 써니전자(004770)는 2012년 12월 21일 기준 이전 최고가에서 88%가 떨어졌다.

또 다른 문제점은 주식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투자문화가 정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은 “주가가 기업의 실적이나 시장 가치와 상관없이 비상식적이고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면 장기적으로 투자자들이 시장에 등을 돌려 이탈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수년 째 매번 정치테마주와 관련해서 감시와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말해왔지만 여전히 주식시장에서는 정치테마주들이 보란듯이 활개치고 있다. 금융당국은 2012년 대선 이후 시세조종 혐의자를 집중단속하고 끝까지 추적해서 엄정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또한 올해 3월에도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3개 기관이 앞으로 정치테마주 공동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에쓰씨엔지와 마찬가지로 부산주공(005030), 파인디앤씨(049120)도 허위사실에 의한 정치인 테마주였지만 투자주의나 위험종목으로 구분하는 형식적인 예방조치에 그쳤다. 더불어 즉시 조사에 착수해서 신속한 사법처리를 강구한다고 했지만 현재 금융당국은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금융당국에 실제 적발 건수나 현황에 대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물었으나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 뿐이었다.

조선일보 DB

다른 한편으로는 사법당국의 처벌이 지나치게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자본시장법에서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시세조정행위를 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시세조종으로 얻은 이익의 1~3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정치인 테마주로 수십억대 이득을 올린 일당이 법원으로부터 받은 처벌은 적게는 벌금 500만원, 많아야 3000만원이었다. 검찰 측에서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왔다.

이들은 2011년 ‘마이더스GN’이라는 비공개 주식동호회를 만들어 증권포탈사이트 ‘팍스넷’에서 활동했다. 박모씨 등 5명은 정치인 테마주 17개 종목에 대해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등 차기 대권주자들과 친분이 있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최대 36억5500만원까지 부당이득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황세운 실장은 “테마주로 불공정거래를 주도하는 세력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약한 것 같다”며 “부당이득이 발생하면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이에 대한 환수를 강하게 집행해야 하는데 오히려 느슨하게 하다보니 문제를 증폭시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승우 금융감독원 테마기획조사 팀장은 “재판과정에서 실제 부당이득의 규모가 얼만큼 되는지 입증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처벌 수위가 낮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그는 “금융당국 입장에서도 테마란 이유로 투자했다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곧바로 거래를 제한하거나 조치를 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