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DB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사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28일 "한국은 빈곤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을 달성한 챔피언 국가"라며 "한국은 경제발전과정 속에서 축적한 지식을 통해 개발원조 분야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턴 교수는 이날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6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 성과 공유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은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인당 소득 증가 및 기대 수명 연장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도 큰 증가폭을 보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디턴 교수는 소비자의 행동 모델 연구로 잘 알려진 미시경제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미국 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인류가 빈곤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에 대해 연구한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 :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이 있다.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이란, 단기간에 고도의 성장을 달성한 우리나라만의 경제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게 나눠주는 양자간 지식공유사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사업총괄기관이며, 개발도상국 정책 컨설팅, 다자간개발은행과의 3자협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디턴 교수는 “선진국, 다자개발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이전하는 전통적인 공적개발원조(ODA)는 수원국의 경제 성장을 활성화하는 효과가 없거나 부정적”이라고 주장했다. 회귀분석을 통해 국가 간 원조 효과를 살펴본 결과, 작은 나라일수록 상대적으로 더 많은 원조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성장속도는 느린 반면, 인도, 중국 등 큰 나라들은 경제규모 대비 원조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역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은 원조를 받더라도 그 재원이 비효율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으며, 원조를 통해 의료 등 공공서비스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개도국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원조는 개도국의 개인과 국가 간 효과적인 공공 서비스 계약, 즉 제도의 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디턴 교수는 한국이 주도하는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에 대해 “국가별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피해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용이하다”고 평가했다. 빈곤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개발도상국의 제도와 정책 역량이 갖춰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식공유가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외부에서 유입된 새로운 지식을 현지 사정에 맞추는 ‘회복 성장(Catch-up Growth)’이 중요한데,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이 이를 뒷받침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이 자금제공 없이 개도국의 현지 사정을 고려한 맞춤형 지식 공유 방식이기 때문에 개도국이 필요로 하는 제도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디턴 교수는 “어느 한 쪽이 자금을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경우, 수원국에서 원조국들이 듣고 싶어 하는 내용만 앵무새처럼 흉내내 전달하는 ‘복화술 효과’가 발생한다”며 “이러한 조건적 연결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은 이 조건적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디턴 교수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원조에 앞장서고 있는 세계은행(WB) 역시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많이 쌓았지만, 차관이 이루어져야 이 경험을 공유하려 한다. 즉 자금 원조가 이루어져야 조언도 해주는, 배타적 원조를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저서 ‘위대한 탈출’을 집필하기 전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한다”며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은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개발협력 수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