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레드 카펫 위에 유명인들과 패션 관계자들이 오른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의상연구소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리는 특별전 '메트로폴리탄 갈라(Metropolitan Gala)'를 축하하는 자리다.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 패션 행사의 지난해 화두는 중국이었다. '중국:유리를 통해 들여다보기'라는 주제에 맞춰 배우와 모델, 디자이너들이 비단에 봉황이나 용을 색색의 자수로 새긴 옷이나 붉은 드레스를 입고 왔다. 패셔니스타로 잘 알려진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는 중국 경극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머리 장식까지 쓰고 왔다. 21세기 뉴욕 한복판에서 17~19세기 청대(淸代)가 재현됐다.

색색의 자수로 수놓은 가을·겨울 패션

메트로폴리탄 갈라 전후로 디자이너들은 중국을 연상시키는 옷을 선보였다. 구찌는 올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소매 끝에 풍성한 털이 달린 화려한 문양의 '치파오(旗袍)'를 내놨다. 일명 '차이니즈 드레스'라고 불리는 이 치마는 청나라 때 형성된 중국 전통 의상이다. 펜디는 치파오를 연상시키는 금색 원피스와 재킷을, 에트로는 금색 자수 장식 재킷을 선보였다. 오스카 드 라 렌타, 알렉산더 매퀸,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에서도 중국 도자기 문양이나 비단, 자수, 차이나 칼라를 활용한 의상을 내놨다. 마고 로비, 제시카 차스테인 같은 여배우들은 시상식 등 공식 행사에 중국풍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국내 패션 브랜드에서도 중국풍 자수가 들어간 제품을 빠짐없이 내놨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배우 마고 로비가 지난 6월 영화 ‘타잔’ 홍보 행사에서 치파오를 연상시키는 구찌의 드레스를 입었다. 지난해 열린 ‘메트 갈라’에 금색 용이 새겨진 재킷(발망)을 입고 나타난 가수 저스틴 비버. ‘메트 갈라’에서 매화가 새겨진 붉은색 드레스(알렉산더 매퀸)를 입은 유명인 비 셰퍼.

패션계는 한때 명품 소비가 늘어난 중국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붉은 옷이나 용, 봉황 등 동물 문양 액세서리를 내놨었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중국 밖의 소비자를 겨냥하고 있다. 패션칼럼니스트 수지 멘키스는 사라 제시카 파커가 쓴 중국풍 머리 장식을 극찬했지만 이를 중국인이 쓰고 다닐 일은 없기 때문이다.

패션계에 부는 중국 바람

패션계에 불고 있는 '중국풍'은 '시누아즈리(chinoiserie)'의 부활로 볼 수 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유럽 귀족 사이에 일어난 중국풍 취미다. 유럽과 청나라 사이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면서 당시 중국 문화가 유럽 미술과 가구, 건축, 의상 등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한때 '자포니즘'(Japonism·일본 문화, 특히 미술에 영향을 받은 일본풍)이 유행하면서 한풀 꺾였던 시누아즈리가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제2의 시누아즈리' 현상을 가장 잘 드러낸 예는 작년 5월에 개막한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중국 특별전이다. 80만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역대 최다 관람객을 기록했고 전시가 3주 연장됐다. 중국 문화가 서양 패션에 미친 영향을 조명한 이 전시는 언론과 관객의 극찬을 받았다. 디오르, 랄프 로렌, 랑방, 발렌티노, 샤넬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중국을 떠올리게 하는 문양, 색깔, 디자인 등의 문화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옷들을 여기에 내놨다. 중국에 대한 환상과 동경까지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