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다 놓으면 무조건 팔린다’

독일차업체들은 한국 시장을 이렇게 만만하게 봤을 것이다. 다른 나라보다 신차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도 줄을 서서 사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판매 차량에 문제가 생기면 리콜을 해줘도 한국에서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잡아뗐다. 차량 부품 가격은 공개하면서 공임은 공개하지 않는다. 비싼차를 팔고서 수리비에서도 폭리를 취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 시장을 만만하게 보는 이런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도 이런 버릇은 나온다. 폴크스바겐은 디젤 차량 배출 가스 조작으로 피해를 본 미국 소비자들에게 배상금 153억3300만달러(약 17조8000억원)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에는 의례적인 사과 한번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차값을 일부 깎아 글로벌시장에서 안 팔리는 차량을 한국에서 재고떨이하듯 팔아치웠다. 이런 괘씸한 행동에 대해 정부가 철퇴를 내렸다. 폴크스바겐 차량에 대한 인증 취소는 곧바로 판매 급감으로 이어졌다.

차량 인증 취소로 폴크스바겐이 흔들리는 사이 경쟁사인 BMW는 ‘견적서실명제’라는 제도를 도입해 가격을 사실상 올렸다. 폴크스바겐이 차를 팔지 못하면 자신들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한 것이다.

연초에 1000만원씩 할인하던 차를 이제는 700만원만 할인해 팔고 있다. 같은 차를 누구는 300만원을 더 주고 사야 하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BMW는 판매 차량에서 운행 중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안전 문제까지 발생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격부터 올린 것이다.

그럼 국내 소비자들은 지금처럼 독일차업체에 당해야만 할까? 시장경제의 기본은 ‘소비자의 이기심’ 즉 사익추구에서 비롯된다. 소비자의 이기심은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다.

일례로 2010년 초 불거진 도요타 위기 사태를 보면 된다. 미국에서 2009년 8월 일가족 4명이 렉서스를 타고 가다가 급발진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도요타는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경시하는 나쁜 회사라는 이미지가 확산됐다. 2010년 대량 리콜이 현실화되고 비난 여론은 거세졌다. 이 시점에 엔고까지 겹치면서 한국에서의 판매량은 급감하기 시작해 지금의 수입차 왕좌를 독일차에게 넘겨줬다. 렉서스를 타면 위험하니 ‘나는 타지 않겠어’라는 소비자 이기심이 일본차의 아성을 허문 것이다.

이미 폴크스바겐과 아우디 차량의 경우 신차가 잘 안 팔리는 것은 물론 중고차 가격도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폴크스바겐 차량을 구매하는 것이 사익추구에 반하는 행동이 된 만큼 소비자들이 알아서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BMW는 7년 연속 유지한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올해는 메르세데스 벤츠에 내줄 가능성이 커졌다. 반복되는 화재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추락과 할인폭 축소 이후 ‘나만 혹시 비싸게 사는 것이 아니냐’는 소비자 이기심이 BMW 차량 구매를 꺼리게 만든 것이다.

‘잘 달리고 잘 선다’는 독일차 신화는 이제 흠집이 난 상태다. ‘갖다 놓으면 무조건 팔린다’라는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소비자의 이기심은 발동됐다. 한국 시장에서 버릇을 잘못 들인 독일차들만 이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