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584, 550, 459, 441개월. 혼자 사는 가수 김건모와 MC 박수홍, 가수 토니안, 영화평론가 허지웅의 나이는 SBS 예능 '다시 쓰는 육아일기―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렇게 표시된다. 스튜디오에 어머니들이 모여 관찰 카메라로 촬영된 이 남자들의 일상을 본다. "저걸 어쩌면 좋아" "아이고, 내 저럴 줄 알았어" "처량하다, 처량해"…. 대본에 없는 탄식이 터져나오고 어머니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소파에 널브러져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이 특징인 금요일 심야 시간대에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드는 예능이 등장했다. '미운 우리 새끼'는 밤 11시 30분부터 늦은 시간 방영하는데도 정규 편성 한 달 만에 시청률 두 자릿수(10.2%)를 찍었다. 1인 가구 520만 시대. 만혼과 독신이 젊은이들에겐 익숙한 라이프스타일이라 해도 지켜보는 부모는 여전히 괴롭다. '미운 우리 새끼'는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령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남자는 평생 애"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철부지인 아들들. 편안하고 유쾌하게 지켜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가 않다. 밤새 클럽에서 춤추고 다리가 풀려 세면장 모서리에 이마를 찍힌 46세 박수홍, 어제 먹은 밥그릇을 옆으로 슥 밀어놓고 오늘 아침 밥상(물론 배달 음식)을 차리는 38세 토니안, 취향에 꼭 맞는다며 똑같은 신발을 9켤레 사서 늘어놓는 48세 김건모…. 엄마에게 감정이입할수록 불쑥불쑥 분노가 치솟는다. "부모 집에 얹혀사는 아들 입장에서 내 모습도 저렇게 한심할까 반성하게 됐다"(양지호 기자), "돈 많고 놀기 좋아하는 노총각들의 게으른 호사를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터졌다"(김윤덕 기자).

가수 김건모가 자신이 좋아하는 수퍼맨 로고 티셔츠와 신발을 똑같은 것으로 여러 개 사서 거실 바닥에 늘어 놓은 모습. 어머니 이선미씨(위)가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지켜보며 골치 아픈 표정을 짓고 있다.

프로그램의 진짜 재미는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에 있다. '방송 초보'인 엄마들은 아들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맞닥뜨리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바퀴벌레 나올 것 같은 방구석이나 지나치게 독특한 취미가 공개되면 엄마들은 거의 숨을 못 쉬거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다. "저래서 빨리 장가를 가야 돼요. 뭐가 모자라서 장가들을 안 갈까요"라며 서로 위로를 주고받다가도 "변기가 너무 더럽던데 도우미 아주머니라도 부르지 그러세요?" 하는 잔소리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반백이 다 된 아들을 바라보면서 김건모 어머니가 '소년 같아, 아기 같아'라며 감탄할 때, '돌배기 아들이 나 없는 사이 걸음마하다 넘어질까 걱정'이라는 MC 한혜진 말에 박수홍 어머니가 '혼자 사는 아들이 화장실에서 넘어질까 늘 걱정'이라고 답할 땐 엄마들이란 정말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최수현 기자)

노총각들의 유치한 일상을 공개해 '충격'을 던져준 이 프로그램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듯하다. 가정사와 상처를 털어놓으며 눈물짓는 장면이 예고편에 등장했다. "여러 어려운 형편과 사정 탓에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노총각들에게 이 프로가 과연 유쾌한 웃음을 던질 수 있을까?"(김윤덕 기자) "아들이 청소를 안 하거나 밥을 대충 챙겨 먹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엄마들이 입 모아 '장가'를 부르짖는 모습이 반복되니 불편해졌다. 아들을 챙겨줄 또 다른 엄마가 필요하다는 건가?"(양지호 기자) "여전히 엄마한테 용돈 받고 엄마가 해놓은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는 아들이 장가를 간다고 독립적이고 성숙한 인격체가 될 수 있을까?"(최수현 기자) 이런 날 선 시선을 의식한 모양이다.

도대체 이 시대의 '육아'란 생후 몇 개월이 되어야 끝난다는 말인가. 금요일 밤 머릿속이 뜬금없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