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5회로 종영한 KBS 1TV 드라마 '임진왜란1592'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역을 맡은 중견배우 김응수(55)를 재발견하는 기회였다. 한 회를 온전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권력을 잡는 과정을 표현하는 데 할애한 이 드라마에서 그는 현지인 버금가는 일본어 연기를 펼치며 '응신수길(김응수+풍신수길)'이란 별명을 얻었다. "NHK가 방영한 사극 '사나다마루'에 출연했던 배우 다카시마 마사노부가 문자를 보내왔어요. '역시 한국 드라마는 퀄리티가 높다. 이게 진짜 대하드라마'라고. 제 히데요시 연기가 일본에서도 통했나 봅니다."

21일 마포의 한 중국찻집에서 만난 김응수는 자신이 연기한 히데요시는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패왕의 가문'을 읽다 보니 히데요시를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대악당'이라고 썼더군요. 미천한 신분에 외모도 볼품없었던 열등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캐릭터를 잡았어요."

호탕하게 웃던 김응수는 카메라 앞에 서자 차분해졌다. 그는 선조실록까지 찾아보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했다.

그는 "악인도 멋있게,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미화한다는 게 아니라 특유의 매력이 있는 인물로 그린다는 얘기죠. 히데요시를 보면 말투, 억양, 행동거지 하나하나 천박한 게 없어요. 이순신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앉은 자리에서 찻잔을 깨트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원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벽을 주먹으로 치는 장면이었어요. PD에게 말해 바꿨습니다. 간파쿠(關白·일왕을 대신해 정무를 총괄하는 최고 관직)가 패전 소식을 들었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분노를 표현하면 권위가 없어 보인다고. 그런 식으로 매력을 살리고자 했지요.

그에게는 '어둠의 최수종'이란 별명이 있다. 사극에서 잇달아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최수종과 반대로 김응수는 '대왕 세종' '추노' '해를 품은 달' '각시탈' 등 여러 사극에서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으로 나와서다. '악역'으로 고착되는 걸 그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를 잘해야 다른 배역도 들어오니까요. 히데요시를 잘하는 사람에게 이순신 배역도 들어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제 삶에서는 '딸바보'에 애처가다. 근엄하고 속 시커먼 악역을 했던 그가 망가지는 모습이 재미있다 보니 TV 예능 섭외도 많다고 한다.

히데요시 역을 하며 막힘없이 일본어를 내뱉을 수 있었던 데는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에서 영화를 공부한 경험이 도움 됐다.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극단 목화에서 연극을 5년 정도 하다가 영화 연출을 배우겠다고 떠났다. 돈 없는 연극배우의 밑천은 결혼식 축의금.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400부 정도 배달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차례나 받은 이마무라 슈헤이 감독이 설립한 '일본영화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배웠다. 일본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던 1996년, 우연히 영화 '깡패 학교'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영화 '타짜'(2006)에서 군산 조폭 '곽철용'을 연기해 눈도장을 찍었고, 이때부터 드라마 출연 제의가 잇달았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하지 못한 게 아쉽지는 않을까. "이마무라 감독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때 메가폰을 잡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