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신논현역에서 강남역으로 이어지는 안쪽 골목길. 인근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맛집들이 많이 모여 있기로 유명한 이 곳에 최근 ‘뽑기방’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뽑기방이란, 기계에 돈 2000~3000원을 넣고 인형을 집게로 잡아올리거나 혹은 캡슐에 들어있는 장난감을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오락실을 말한다.

지난 23일 오후 7시 기자가 찾은 신논현역 인근의 뽑기방은 교복이나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80㎡(약 24평) 규모의 가게 안에는 작은 캡슐 장난감 기계부터 크레인을 이용한 기계까지 30대의 뽑기 기계가 설치돼 있었다. 직원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자동 동전 교환기만 눈에 띄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뽑기방을 찾은 대학생 황진원(21)씨는 “새로 나온 인형과 캐릭터 상품 구경도 하고 운이 좋으면 시중에서 3만원 하는 비싼 인형도 게임비 3000원에 뽑을 수 있어 자주 온다”며 “여자친구와 포켓몬 휴대폰 고리를 종류별로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서울 논현동 봉은사로1길에 위치한 인형뽑기방 3곳. 모두 8~9월에 문을 열었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총신대입구역 1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이어지는 번화가에도 최근 1주일 새 뽑기방이 5곳이나 생겼다.

지난 22일 저녁 기자는 새로 문을 연 지 1주일 된 규모가 가장 큰 뽑기방을 찾아갔다. 100㎡(약 30평) 규모의 가게에 35대의 기계가 있었다. 가게 안에는 대략 30명의 손님이 있었는데, 대부분 대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뽑기방을 찾았다는 김모(15)양은 “인형뽑기가 취미여서 친구들과 함께 자주 이 곳에 온다”면서 “갖고 싶은 인형이 생기면 손에 넣을 때까지 용돈을 모아서 뽑기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업체 대표는 “1주일 새 뽑기방 5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며 “인근 업주들 사이에 ‘자고 일어나면 뽑기방이 생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최근 인건비와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데 불황은 장기화되다 보니 뽑기방 같은 창업·유지 비용이 저렴한 창업이 늘고 있다”며 “젊은 계층은 저렴한 가격으로 데이트도 즐기고, 인형도 뽑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다만 “인형뽑기방과 같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갑자기 사라지는 업종이 너무 많다”며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창업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불황의 시대... 자고 일어나면 새로 생기는 뽑기방

지난 23일 방문한 이수역 역세권 상업지구에 인형뽑기방이 열흘새 5군데가 생겨났다.

뽑기방은 과거 음지(陰地) 영역이었다. 일부 업체들이 특정 인형을 뽑으면 고가의 경품이나 현금으로 바꿔주는 불법을 저질러 사행성 게임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뽑기방은 대부분 가게 전면을 전부 통유리로 만든다. 뽑기방이 사행성 게임장이 아니라 건전한 놀이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강남과 홍대, 대학가 등 주로 번화가 목 좋은 곳에 문을 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때문에 뽑기방은 10~20대가 자주 찾는 명소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뽑기 인형들은 대부분 10~20대에게 인기가 많은 국내외 유명 캐릭터 상품이다.

또 최근 문을 여는 뽑기방 대부분은 ‘청소년게임제공업자 등록증’을 발부받고 영업한다. 등록증을 받으려면 오후 10시 이후에는 청소년 출입을 금지하고 사행성 게임도 하면 안 된다. 오후 10시가 되면 뽑기방 관리자가 방문해 게임 중인 청소년들을 내보고, 출입을 막는다.

서울에 뽑기방 4곳을 보유하고 있다는 ‘뽑기방 재벌’ A씨는 “점원이 없어도 가게는 알아서 굴러가고 드는 비용이라곤 월세와 기계 대여비, 세금 뿐이니 편하다"면서 “처음 개업한 곳에서 장사가 생각보다 잘 되어 주변에서 투자를 받아 계속 점포수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뽑기방 점주들은 대부분 청소년게임제공업자 등록증을 발부 받았다. 왼쪽은 뽑기방에 걸려있는 청소년게임제공업자 등록증, 오른쪽은 23일 총신대 인근 뽑기방 모습

총신대에 위치한 B뽑기방 관리자인 권상백(53)씨는 "가게 사장은 CCTV를 통해 가게 안 상황을 언제라도 살펴볼 수 있어 하루 한 번만 방문하면 된다"며 "기계에 투입된 돈은 자동으로 계산이 되고 주인은 하루 한 번 기계가 계산한 돈과 실제 돈을 비교하고 수금해 간다"고 말했다.

◆ 반년만에 가맹점 30개 확보한 ‘기업형 뽑기방’도 등장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문을 연 가챠샵 내부 모습. 가챠샵은 인형 뽑기 외에도 유명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저비용 창업이 가능한 뽑기방이 늘어나자, 아예 이를 비즈니스화 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가챠샵이 대표적인데, 올초 1호점을 낸 이후 서울에 14개점, 전국에 30곳을 열었다.

뽑기방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기계를 대당 10만~30만원선에서 빌려 준다. 수금 액수는 기계 종류마다 다르지만, 인기 상품이 들어 있는 기계는 주말에 대당 30만~40만원 이상 벌어 들이기도 한다.

가챠삽의 경우엔 인형 종류가 다양해서 키덜트(아이 같은 취미를 가진 어른)에게도 인기가 많다. 봉은사로1길의 가챠샵 관리인 김모씨(24·여)는 “저녁 9시가 넘으면 인근 식당에서 회식을 마치고 온 직장인들이 단체로 몰려온다”며 “중고생이나 대학생보다 씀씀이도 큰 편”이라고 말했다.

뽑기방은 주로 ‘깔세’ 형태로 영업한다. 깔세란, 보증금 없이 몇 달치 월세를 미리 내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최근 자영업자 폐업이 늘면서 번화가의 중심지에도 몇달씩 임대가 안되는 상점이 늘고 있다. 뽑기방은 이런 자리를 치고 들어가서 영업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강남의 한 부동산 업체 대표는 “강남 번화가에도 보증금·권리금 없이 나오는 1층 상가들이 많다”며 “이런 상가를 중심으로 강남 일대에 인형 뽑기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