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손해보험사들이 지진 특약(특별약관) 판매를 갑작스럽게 중단하거나 가입 조건을 제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진 특약이란, 화재보험에 가입하면서 지진 피해에 대비해 별도로 추가하는 담보를 말한다. 지진 특약 보험료는 건물 급수나 보험금 등에 따라 다르나 통상 월 400원(아파트 기준) 정도이며, 특약에 가입하면 1억원 정도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 특약 없이 가입했던 기존 화재보험 가입자도 가입 도중 보험사에 문의해 추가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21일 “현재 지진특약을 팔고 있는 현대해상·동부화재·한화손해보험·농협손해보험 중 동부화재와 한화손보가 지진 특약 판매를 중단했고, 현대해상은 한시적으로 특약을 팔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지진 발생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판매 중단이나 제한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인 보험이 가장 절실할 때에 보험사들이 상품 판매를 꺼리고 잇속만 챙긴다며 비난하고 있다.

경주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여진(餘震) 때문에 불안해서 지진 특약 가입 절차를 보험사에 문의했는데 더 이상 팔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았다”며 “아무리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라지만 가입자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에 외면하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경주의 한 건물이 무너진 모습.

◆ 동부화재, 5.8 규모 지진 후 하루 만에 판매 중단

지난 13일 동부화재 각 지점에는 지진 특약 판매를 중단하라는 구두 지침이 떨어졌다. 전산상으로 추가 가입 절차가 막혔다. 12일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꼭 하루 만이었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손해율(거둔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올라갈 확률이 크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이라며 “요율 등을 검토해 빠른 시일 내 지진 특약 판매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화재가 지진 특약 판매를 빠르게 중단한 것은, 추후 분쟁 소지를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동부화재가 판매 중인 지진 특약은 약관상 지진에 대해서만 손해를 배상해주는데, 최근 지진 특약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진에 대비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DB

또 지진 특약 신규 가입자들이 보험사에서 보상받으려면, 이번 지진의 원인으로 꼽힌 양산단층대가 아닌 다른 단층대에서 새로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야 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진 원인에 대한 해석은 보험사 자체적으로 할 수 없고 전문기관에 의뢰해야 하는 등 분쟁 소지가 큰 만큼, 지진 특약 판매를 일단 중단해 분쟁 소지를 사전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해상은 지진 특약 판매를 신규 화재보험 가입자로 제한하고 있다. 주택은 아파트만 가능하며, 일반건물이나 공장의 경우엔 철근이나 콘크리트로 지어진 1급 건물에 한해서만 가입이 가능하다. 또 최저 보험료 기준도 월 5만원(화재보험과 지진특약 보험료 포함)으로 문턱이 높다.

현대해상 지진 특약을 판매 중인 한 설계사는 “신규 가입자에 가입 조건도 까다롭지만 한시적으로 팔고 있는 중인 데다 앞으로 특약이 없어질 것이란 예상이 커지면서 경주와 주변 지역 소비자들의 가입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지진에 대한 위험도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만큼 지진 특약의 위험도 조정과 그에 따른 보험료 변경 등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의 지진 특약 판매 중단이나 가입 제한 절차에 문제가 없었는지 향후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지진 발생 확률이 매우 낮던 상황에서 만들었던 보험 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것은 보험사들이 리스크 관리 목적에서 실행할 순 있다”면서 “하지만 금융 소비자들의 공포심을 이용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단기 실적을 개선하기 위한 절판 마케팅에 활용한다면 문제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