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황희 의원 "전문성 없는 인력 왜 뽑나"…직무연관성 있는 SR로 이직 사례도
88%가 6개월 이내 재취업…당일 재취업도 12%나 돼

코레일에서 경영총괄본부장(상임이사)으로 재직하던 A씨는 2014년 3월 31일 사표를 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수서고속철도 주식회사(SR)로 재취업했다. 코레일은 SR의 4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코레일 사업개발본부장(상임이사)으로 재직하던 B씨는 2016년 3월 6일 사표를 내고 같은 날 코레일네트웍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 회사는 코레일의 계열사로 코레일 역사(驛舍) 주차장을 운영·관리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고위 퇴직자들이 자회사 등으로 재취업하는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레일은 퇴직자들이 재취업한 회사와 "직무 연관성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는 코레일이 출자한 코레일관광개발, 롯데역사 등 계열사나 민자역사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퇴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4년 8개월간 1급 이상 고위 간부급 퇴직자 50명은 민자역사나 자회사, 출자회사 등 21개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취업 불가 판정을 받은 퇴직 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조선일보DB

코레일 고위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새 둥지를 튼 곳은 민자역사로 총 12곳에 31명이 옮겼다. 롯데역사(영등포) 6명, 신세계의정부역사 5명, 수원애경역사 4명, 한화역사(서울역) 등으로 많이 갔다. 코레일은 이들이 옮긴 민자역사에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계열사 7곳에 15명, SR 등 기타출자 회사 2곳에 4명이 이동했다. 이들 모두는 해당 기관 내 최고위직인 대표이사(6명), 이사(33명), 감사(11명) 등으로 임명됐다.

이들 중 15명(30%)은 퇴직 후 한달 이내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당일 재취업도 6명(12%)이나 됐다. 44명(88%)은 퇴직 후 6개월 이내 재취업했다. 사실상 현재의 위치를 이용해 이미 나갈 자리를 만들어 놓고 움직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코레일이 이처럼 계열사나 출자회사에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등 '권리'는 누리고 있지만 '의무'는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코레일은 자회사 지분이 30%를 넘으면 정부와의 사전 협의가 의무화되고 연결재무제표의 빚으로 잡힌다는 이유로 상당수 출자사의 지분을 30%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 신촌역사(지분 29.41%), 롯데역사(지분 25.0%) 등 상당수가 이렇다.

코레일은 '낙하산 논란'에 대해 이들이 재취업한 회사와 코레일에서 당초 이들이 맡고 있는 직무와는 연관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SR처럼 직무 연관성이 있지만 심사 없이 이직한 사례도 발견됐다. 코레일은 SR로 이직한 퇴직자에 대해서는 "코레일과 SR의 경우 직무 연관성이 있고, 퇴직자의 코레일 근무는 취업 기관과의 직무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희 의원은 "과연 국민들이 보기에 코레일 고위 임원이 계열사나 출자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게 정의롭고 정당하게 느껴질까"라고 반문하면서 "이는 현행 공직자윤리법의 허점을 이용한 낙하산 인사"라고 지적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상임이사가 퇴직일로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2014년 11월 이런 내용의 '공공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지침'을 만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재취업 심사를 받은 퇴직자 가운데 취업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낙하산 인사를 거르라고 만든 심사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예산정책처는 "기재부는 공공기관 퇴직 임직원의 부적절한 출자회사 재취업을 방지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공기업 퇴직자의 출자회사 임용 현황에 대한 공시 대상을 고위 임원에서 임직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황 의원은 "코레일은 고위 임원들의 재취업에 대해 '퇴직자들의 퇴직 전 직무와 재취업한 직무와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전문성이 없는 인력을 왜 계열사에서 뽑아가는지 국민들이 이해할지 의문"이라면서 "낙하산 관행이 계열사의 부실경영과 유착의혹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부 감독 시스템을 강화해 이를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