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자동차세 배기량→차값 개편안 재발의돼
정부, 통상마찰·친환경차 개발 축소·세수 감소 우려

같은 직장에 다니는 김정현(가명·41세)씨와 이광수(가명·45세)씨는 1년에 내는 자동차세가 약 50만원으로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이 퇴근 후 타는 차는 매우 다르다. 김씨는 2700만원 정도의 1999㏄ 쏘나타를 타지만, 이 씨는 6300만원 안팎의 1995㏄ BMW 차량을 사용하고 있다. 외제차를 타는 이 씨는 차값이 세 배가량 비싸지만, 김 씨와 비슷한 세금을 내고 있다.

김 씨와 이 씨는 왜 같은 세금을 낼까. 1960년대 만들어진 자동차세법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세 부과법은 배기량이 기준이다. 배기량이 커질수록 세금이 비싸진다. 하지만 지난 50년 동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배기량이 적고 성능이 좋은 차량들이 개발됐다. 이에 따라 가격이 비싼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들이 배기량이 같다는 이유로 저가의 자동차 소유자와 세금을 비슷하게 내는 ‘조세부담의 역진성’이 발생했다.

20대 국회에서는 불합리한 자동차세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회부의장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2일 자동차세를 배기량이 아닌 ‘차값’으로 부과하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19대 국회에 이어 재발의했다.

자동차세를 차값으로 매길 경우 1000만원~2000만원 후반대 차량의 세금은 줄어들되 고가의 국산차와 외제차는 대부분 세금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정부는 외제차의 세금 증가에 대한 통상 마찰과 친환경 차량에 대한 소비·투자 감소라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어 연말 국회 심의 과정에서 팽팽한 공방이 예상된다.

현대자동차 LF소나타(왼쪽)와 수입차 BMW 520D(오른쪽)의 자동차세는 똑같이 50만원대다.

◆ 국산차-외제차 ‘차값 3배’ 차이나도 세금 동일

50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현행 자동차세 부과법은 비영업용 승용차 과세표준에 따라 배기량 1000㏄ 이하는 ㏄당 80원, 1600㏄ 이하는 ㏄당 140원, 1600㏄ 초과는 ㏄당 200원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2700만원 현대자동차 LF쏘나타 터보 1999cc 스마트 모델과 6390만원 BMW 520D 1995㏄는 52만원대의 비슷한 자동차세를 낸다. 같은 차량 모델도 배기량을 낮추면 가격이 비싸도 세금이 줄어드는 ‘이상한 현상’도 발생한다. 터보 엔진이 장착된 1600cc SM6 TCE 가격은 2000cc 모델보다 300-400만원 가량 비싸지만, 자동차세는 10만원 정도 적다.

‘비싼 물건에 비싼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세부담의 원칙이 이같이 흐트러지는 이유는 배기량이 커지면 차량 가격이 비쌌던 1960년대에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현재는 배기량이 적으면서도 성능이 좋은 고가의 차량들이 개발되고 있다.

출처=조선일보DB

전기차도 문제다. 배기량으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에 기타로 분류돼 10만원대의 세금이 동일하게 부과되고 있다. 4300만원대 전기차 기아 쏘울EV와 6400만원대 BMW i3, 최고 2억원에 달하는 테슬라 모델S에 모두 자동차세는 10만원대다.

심 의원의 개정안은 부과 기준을 ‘차값’으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동차 가격이 높을수록 세금도 올라간다.

자동차가액 1500만원 이하는 자동차가액의 0.8%, 자동차가액 1500만원 초과 3000만원 이하는 12만원+(15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의 1.4%), 자동차가액 3000만원 초과시에는 33만원+(3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의 2%)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산차와 수입차의 희비는 엇갈릴 전망이다. 준중형 이하의 국산차는 세부담이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수입차는 대부분 자동차세를 더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1000만원 후반대의 소형차에 붙는 자동차세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고, 2000만원 후반대의 배기량 2000cc 차량은 20% 이상 세금이 줄어드는 반면 8000만원대의 차량들은 자동차세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심 의원실에 따르면 대표적인 경차인 모닝의 경우(신차 기본사양 기준) 자동차세를 살펴보면 현행 7만9840원(998㏄)에서 7만3200원으로, 아반떼의 경우는 22만2740원(1591㏄)에서 11만2800원으로 줄어든다. 2700만원대 LF쏘나타 1999cc 도 현재 50만원대 자동차세가 20만원대로 낮아진다. 그랜저도 47만1800원(2359㏄)에서 33만4800원으로 세금이 줄어든다.

반면 LF쏘나타와 같은 50만원대 자동차세를 냈던 6390만원 BMW 520D 1995㏄는 100만원으로 자동차세가 오른다. 현재 98만원을 내고 있는 8900만원짜리 제네시스 EQ900 3.8도 145만원으로 세금이 늘어난다. 또 유럽차가 미국차 보다 세금 증가가 클 것으로 보인다. 미국차는 유럽차 보다 배기량이 큰 차량이 많아 더 높은 세금을 낸다는 불만이 있었다.

자동차세가 ‘차값’ 기준으로 조정될 경우 소득재분배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심의원 측은 주장한다. 올해 초 한국재정학회 학술대회에서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등이 발표한 ‘가격기준 자동차세제 개편의 소득재분배 효과’ 논문에 따르면 차값으로 자동차세 부과를 조정할 경우 소득상위 10% 가구는 세금을 지금보다 29만원을 더내고, 소득하위 10%가구는 5만원을 적게 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사진=연합뉴스

◆ 국회 ‘개편’ 움직임에 정부 “검토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개정안은 올해 연말 지방세법 개정안을 담당하는 국회 안정행정위원회에서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심 의원의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회기 말에 제출돼 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채 폐기됐다.

자동차세가 ‘차값’ 기준으로 변경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결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이 여당 소속인 심 의원에 의해서 발의됐지만, 세금 제도 변경은 정부가 동의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반대할 경우 여당 의원 모두가 관련 법안에 찬성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정부는 현재 자동차세를 배기량에서 차값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몇 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통상 마찰 부분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산차 보다는 외제차의 세금 부담이 높아진다. 자동차세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자동차세에 대한 법률 자문을 여러 곳에 의뢰했는데, FTA(자유무역협정) 위반 소지가 있어 통상 마찰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면서 “자동차세에 대해 정부는 검토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통상 마찰 소지가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디미트리스 실라키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장인 정재희 포드코리아 대표는 공개석상에서 현행 자동차세의 개편이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언급한 적이 있다.

정부는 자동차세 개편에 대해 친환경 차량에 대한 소비·투자 감소도 우려하고 있다. 자동차세는 재산세인 동시에 환경오염, 도로이용 및 교통혼잡, 주차난 등 부정적 외부효과를 막기위한 부담금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자동차 배기량이 큰 차량일 수록 내뱉는 환경오염 물질과 교통혼잡이 심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자동차세는 환경에 대한 가치를 고려해 과세하는 목적도 크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국회가 자동차세 개편을 위해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세수 감소’다. 자동차세는 지방세의 8.7%를 차지하는 중요한 세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부과기준을 차량가액으로 변경하면 자동차세는 2017~2021년 연평균 1조3000억~3조4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기량 1000~2500cc의 자동차가 전체 자동차의 약 72%를 차지하고 있어 이 구간의 세수감소(1조2000억원)가 3500cc 이상의 자동차에 대한 세수증가(2000억원)를 상쇄한다는 분석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솔직히 자동차세를 ‘차값’으로 바꾸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수 감소에 대한 부담 때문일 것”이라며 “차값으로 기준을 바꿀 경우 세수 감소 대책으로 세율 조정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신영임 국회 예정처 경제분석실 세수추계1과 경제분석관은 “자동차세 부과기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조세제도의 역진성, 친환경 차량에 대한 소비 및 투자의 변화, 세수변화 등을 고려해 과세기준과 세율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