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벤처 붐이 불어닥치기 직전인 1998년, 충남대 컴퓨터과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윤두식씨는 같은 과 선배가 창업한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가 입사한 회사는 충남대 88학번 오치영씨가 1994년 설립한 지란지교소프트. 임직원이 총 16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였다.

윤씨는 지란지교소프트에서 ‘점포닷컴’(온라인 쇼핑몰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 개발을 맡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선배의 눈에 든 그는 대학원 졸업 직전 입사를 정식으로 제안 받았고, 1999년 정직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점포닷컴을 비롯해 메신저 기반의 그룹웨어(협업을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인트라쿨’, 전자 상거래 교육 시스템 ‘점포아카데미’ 등을 운영하던 윤씨는 2년 뒤인 2001년 인터넷 보안 사업에 눈을 떴다. 국내 인터넷 보안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시대였다. 그는 스팸메일을 차단 서비스를 만들며 보안사업본부장을 맡기 시작했고, 지난 2013년 말까지 12년 동안 지란지교소프트의 보안사업을 총괄해왔다.

지란지교소프트의 보안사업본부는 2014년 1월 지란지교시큐리티라는 이름으로 분사했다. 보안사업본부장을 맡아온 윤씨가 자연스럽게 대표이사(CEO) 자리에 올랐다. 분사 후 2년 8개월이 지난 현재,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코스닥시장 상장이라는 두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다.

윤두식 지란지교시큐리티 대표이사. 윤 대표는 상장을 계기로 일본 수출을 확대하고 유럽 및 동남아시아 시장을 개척해나갈 계획이다.

◆ “日 시장 뚫는 데 6년 걸려...이달부터 지자체 납품 시작

지란지교시큐리티가 9일 KB스팩5호와의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입성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대치동에 위치한 지란지교시큐리티 본사에서 윤 대표(43)를 만났다. 윤 대표는 자신을 ‘우리나라 보안 업계 1.5세대’라고 소개했다.

“처음 보안사업본부를 만들었을 당시 국내 인터넷 보안 업체로는 안철수연구소(현 안랩)와 인젠, 어울림, 시큐어소프트가 있었어요. 안철수연구소가 1995년에 설립됐고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는 1997년에 생겼으니, 아직 인터넷 보안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이었죠.”

윤 대표에 따르면, 2000년 국내 정보 보안 시장 규모는 2000억원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약 2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지란지교소프트의 보안사업본부는 출범 이듬해부터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2001년 스팸 메일 차단 서비스 ‘스팸스나이퍼’를 출시했고, 2002년 스팸스나이퍼에서 20억원 가량 매출을 올렸다. 손익분기점은 바로 달성했다.

국내 시장에선 쉽게 매출을 올렸지만, 2003년 일본에 진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고생이 시작됐다고 윤 대표는 회고했다.

“일본에 진출한 뒤 7~8년 동안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스팸스나이퍼를 처음 소개한 뒤 테스트하게끔 하는 데 3년이 걸렸어요. 테스트부터 계약까지 3년이 더 걸렸죠. 일본 시장의 문을 두드린 지 6년이 지나서야 납품을 시작한 거에요.”

윤 대표는 일본 시장이 버그(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의 착오) 하나도 인정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우나, 한 번 신뢰를 얻고 나면 관계가 깨지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지난해 일본 시장에 총 6억원 규모의 스팸스나이퍼와 발신 메일 보안 솔루션 ‘메일스크린’을 수출했다. 내년 1월부터는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국민 일련 번호 ‘마이넘버’ 제도를 전격 시행하기로 해, 시스템 통합(SI) 업체 캐논ITS와 손잡고 이달부터 일본 지방자치단체에 ‘스팸스나이퍼AG’를 납품할 예정이다. 올해 스팸스나이퍼AG의 일본 내 판매액은 20억~30억원에 달할 것이며, 향후 4년 뒤에는 100억원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윤 대표는 전망했다.

◆ 해외 사업 확장 ‘박차’...동남아·유럽·미국 시장 진출 준비중

인터뷰가 절반 가까이 진행됐을 무렵, 윤 대표의 안내로 회사 내 회의실을 둘러봤다. 방마다 ‘대치동’, ‘신주쿠’, ‘샌프란시스코’ 등 지명으로 된 간판을 달고 있었다. 모두 지란지교의 해외 법인이 진출한 지역이라고 윤 대표는 설명했다.

지란지교시큐리티의 회의실. 신주쿠, 대치동, 샌프란시스코 등 해외 법인이 있는 지역 이름을 땄다.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일본 외에도 미국 시장과 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시장, 스웨덴을 거점으로 한 유럽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법인인 지란소프트 INC와 싱가포르 법인인 지란소프트아시아퍼시픽, 스웨덴 법인인 지란소프트EU를 설립했다. 해외 법인에서 현지에 제품을 판매하면, 지란지교시큐리티측은 매출액을 일정 비율만큼 나눠 갖게 된다. 중국 시장 진출은 아직 계획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외국 기업이 들어가 영업하기에 너무 어려운 시장입니다. 구글도 퇴출됐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사업을 거의 못하고 있어요. 중국 시장에는 함부로 뛰어들었다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더 멀리 내다봐야 하는 시장이에요.”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수출 확대를 위해 글로벌 보안 업체들과의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해나갈 계획이다. 회사는 현재 미국 파이어아이(Fireeye)와 트렌드마이크로(Trendmicro), 인텔시큐리티의 맥아피(Mcafee) 등과 손잡고 해외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이 외에도 지란지교시큐리티는 내수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국내 고객사들과의 신뢰 관계를 더 돈독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지난 2014년 11월 KB2호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보안 솔루션 업체 케이사인과도 관계사로 묶인다. 케이사인 역시 지란지교시큐리티와 마찬가지로 2000년 지란지교소프트에서 분사한 업체다. 지란지교시큐리티와는 서로 우호 지분 3.3%를 보유하고 있다. 케이사인의 최승락 대표이사는 오치영·윤두식 대표와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를 졸업한 동문이다.

◆ “올해 매출·영업익 전년 比 30% 증가할 것...기관 물량 출회 우려 잠재울 것”

지란지교시큐리티는 이번 상장을 통해 총 1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다. 이 가운데 약 40억원은 새 제품 개발과 인력 채용에 투자할 계획이며, 나머지 자금은 해외 진출 등에 투입된다. 특히 일본 내 영업 마케팅과 개발 인력 충원에 주력할 것이라고 윤 대표는 말했다.

윤 대표는 올해 지란지교시큐리티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영업이익은 각각 155억원, 31억원이었다.

최종국 지란지교시큐리티 경영관리실 부장(가운데)과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상장 후 최대주주는 지분 57.15%를 보유한 지란지교며, 프리미어 Growth-M&A투자조합이 18.11%를,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5.87%를 보유하게 된다. 기존 주주였던 프리미어파트너스가 보유 지분 일부를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프리미어파트너스의 지분 중 46%는 상장 후 1개월 동안 보호예수되며 나머지는 바로 유통 가능하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의 보유 지분은 상장 직후 전량 유통 가능하다.

기관 보유 지분이 높은데 따른 물량 출회 우려에 대해선 “단기적으로는 물량 출회로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보안 산업의 미래를 감안한다면 주가 흐름은 중장기적으로 좋을 것”이라며 “주주들의 우려를 덜기 위해 투자사들과 우호적 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가겠다”고 윤 대표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