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6'의 소니 전시장에선 가전제품의 스마트 허브(hub) 역할을 하는 로봇인 '엑스페리아 에이전트'가 눈에 들어왔다. 전시장 직원이 로봇 앞에 서서 "내가 평소 듣던 음악 좀 틀어줄래(can you turn on my usual music)?"라고 요구하자, 로봇은 "물론이지(sure)"라고 말하며 음악을 틀었다. 다시 "볼륨을 좀 높여줄래(turn up the volume a little bit)?"라고 말하자 "당연하지(O.K.)"라고 답한 로봇이 볼륨을 높였다. 리듬에 맞춰 몸체를 좌우로 움직이며 춤까지 췄다.

소니의 '엑스페리아 에이전트'는 음성 인식 기반이어서 사용자는 말로 로봇에게 명령해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다. 얼굴에 있는 눈을 통해 사람의 동작을 인식한다.

네슬레의 커피머신 '돌체구스토'와 연결해 음성으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모습도 시연했다. 로봇이 "커피 한 잔 할래?"라고 물어 "좋아"라고 답하니 로봇이 "어떤 커피를 마실래?"라고 되물었다. "늘 마시던 걸로"라고 답하자 커피머신에서 커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7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16에는 많은 업체가 로봇을 등장시켜 주목을 받았다. TV와 냉장고, 세탁기 등 각종 가전제품을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하는 스마트홈이 역시 주요 화두(話頭)였지만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로봇을 스마트홈의 필수 요소로 제시한 것이다.

◇요리법 가르치고 빨래까지 개는 로봇

글로벌 기업 보쉬의 자회사인 BSH는 음성인식을 통해 작동하는 로봇 '마이키(Mykie)'를 선보였다. BSH 최고경영자(CEO) 카스텐 오텐베르그 박사는 기조연설에서 "마이키는 '내 주방 요정(My Kitchen Elf)'의 줄임말로 세탁기·냉장고 등 주방의 모든 가전기기를 연결해 제어하는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마이키는 특정 요리를 검색하면 지금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 목록과 비교해 필요한 것을 직접 주문할 수 있게 한다. 요리법도 검색해 프로젝터로 벽면이나 화면에 보여준다.

빨래를 개고 수납함에 정리해주는 로봇도 나왔다. 일본 벤처기업인 세븐드리머스가 내놓은 '론드로이드'.

건조가 끝난 옷을 건네주면 알아서 티셔츠·바지·수건 등을 구분해 빨래를 갠 뒤 수납함에 정리도 해준다. 세븐드리머스는 이르면 내년 중 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우리나라 로봇 전문기업 RF(알에프)는 유리창을 청소하는 로봇 '윈도우 메이트'로 주목을 받았다. 윈도우 메이트는 유리창에 본체를 부착한 후 버튼만 누르면 유리창의 너비와 높이를 자동으로 인식해 청소한다. 청소가 끝나면 알아서 처음 부착했던 위치로 돌아온다.

중국의 하이얼이 공개한 유봇(Ubot)은 눈 대신 달린 카메라로 집안 구석구석까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로봇은 미래의 스마트홈에서 필수품이 되는 흐름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아직 콘셉트 단계이기는 하지만 로봇의 등장은 가전업체들이 본격적인 스마트홈 시대로 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며 "미래엔 결국 집안에 로봇 비서 한 대 정도는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 지난 3일(현지 시각)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2016에서 삼성전자의 패밀리허브 냉장고를 작동해 보는 관람객들. 2 지난 5일(현지 시각) IFA 2016에서 관람객들이 LG전자의 스마트 냉장고를 살펴보고 있다. 3 일본 가전업체 소니가 지난 2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6에서 공개한 음성 인식 기반의 로봇‘엑스페리아에이전트’.

◇변화 선두에 선 가전업체의 '스마트홈 미래'

스마트홈의 허브로 주목받은 것은 냉장고이다. 24시간 전원이 켜져 있어 다른 가전제품과 언제든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가전업체들은 잇따라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냉장고를 선보였다. 가장 앞선 것은 삼성전자가 올해 초 출시한 '패밀리허브 냉장고'. 냉장고 전면(前面)에 부착한 화면을 통해 식품을 관리하고 필요한 것을 직접 구매할 수도 있다. TV 보기와 음악 듣기까지 가능하다. LG전자, 일본의 샤프, 중국의 하이얼도 날씨와 교통량, 조리법을 확인하고 소셜미디어 메시지까지 확인할 수 있는 같은 디자인의 냉장고를 이번 전시회에 내놨다.

가전업체들이 추구하는 스마트홈은 미래 지향적이다. LG전자가 선보인 '스마트홈'은 스마트 허브를 통해 집 안팎의 모든 가전과 자동차 등을 연결하는 것을 넘어서, 가전제품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진화하는 딥 러닝(deep learning)과 인공지능으로 이어진다. 수동적인 개념의 가전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종의 '생활 로봇'이 되겠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의 음성인식 시스템인 '알렉사(Alexa)'를 통해 연말부터 음성인식 기반 스마트홈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가전업체들이 내놓는 이런 청사진에도 스마트홈 시대가 언제 본격적으로 열릴지는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삼성전자 윤부근 소비자가전(CE) 부문 대표는 "IoT가 2~3년 내에 가전업계 경쟁의 축을 바꾸면 업계에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라면서도 "단순히 가전제품을 서로 연결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 고객들의 행태를 분석해 생활에 편리한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정한 스마트홈 시대를 만들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