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적인 포석으로 중국에 접근해 온 글로벌 회사
'개혁'과 '개방' 기조에 부응한 폴크스바겐, 조기 안착 성공

1930년대 나치 독일을 연원(渊源)으로 삼는 세계적인 자동차 폴크스바겐이 요즘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비를 조작하였다 하여 미국 등의 법원으로부터 소비자 배상 결정을 받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오히려 이에 굴하지 않고 할인 프로모션 등으로 매출을 이전보다 더 올리다가 배출가스 서류 조작 파문으로 사업의 계속성 자체가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 폴크스바겐을 중국에서는 대중 기차(大众汽车·따중 치처)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중국 소비자를 상대로 사업을 영위하려면 중국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브랜드가 필요할 터인데, 중국어로 브랜드를 짓는 방법에 몇 가지가 있지만 이렇게 폴크스바겐의 경우처럼 원어의 뜻을 그대로 중국어 단어로 변환 시키는 방법이 그 중의 하나다.

중국에서 휴대폰 회사 애플은 원어의 뜻 그대로 사과(苹果·핑궈), 블랙베리는 검은 딸기(黑莓·헤이 메이), 식품회사 네슬레는 참새 둥지(雀巢·추에 차오), 버거킹은 햄버거왕(汉堡王·한바오 왕),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는 통용 기차(通用汽车·퉁융 치처)가 브랜드가 된다.

폭스바겐도 이러한 방식으로 독일어로 ‘국민’인 Volk 는 대중(大众)으로 바꾼 것이고, ‘수레, 자동차’ 즉 Wagen 은 기차(汽车)로 명명했다. 중국어의 원래 번체자로는 ‘무리 중(衆)’인데 간체자로는 ‘중(众)’이라서 폭스바겐의 심볼마크(V와W)를 뒤집어 놓은 듯한 묘한 공통점이 만들어 졌다.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어의 기차는 중국어로는 화차(火车·훠처)니까 기억해 두자.

폴크스바겐 차량에 중국어로 된 로고가 붙어 있다. 상해 대중(上海大众)은 상하이자동차와 폴크스바겐의 합자회사.

기업명 이외에 그 하위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인데, 예를 들어 폴크스바겐의 저 유명한 더비틀(The Beetle)은 중국에서는 갑각충(甲壳虫)이니 재미있지 않은가. 또 파사트는 帕萨特(파사터), 티구안은 途观(투꽌), 골프는 高尔夫(까오얼푸)로 이름 지어졌다.

최근에 중국도 한국처럼 표시, 광고를 다루는 법률이나 시행령에서 로마자로 된 브랜드를 허용하게 되었지만, 이전에는 엄격하게 금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소비자들 상당수가 영문 알파벳을 읽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글로벌 회사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는 당연히 현지화 브랜딩을 했다. 그래서 중국 거리에 나가 보면 본토 자동차는 말할 나위도 없고, 대부분의 글로벌 회사 자동차에도 이렇게 중국어로 붙어 있는 브랜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기업전략 측면에서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그 어떤 기업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대륙에 문화혁명의 광풍이 지나가고, 1978년 등소평(邓小平·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 개방은 대내적으로는 개혁을,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큰솥밥(大锅饭)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 체제를 받아들인다는 일대 전환이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선진 글로벌 민간 기업들이 중국에 들어와 투자하고 공장을 건설하고 선진 기술을 공유해 주는 모델이 절실했던 것이고, 폴크스바겐이 이러한 중국 정부의 의지에 부응했다.

1984년 중국의 상하이 자동차와 독일의 폴크스바겐이 역사적인 합자(合资) 합영(合营) 계약을 체결했던 장소가 바로 베이징의 국가적 건물인 인민대회당이라는 점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어서 1991년에는 중국의 제일 기차(一汽·이치)와 폴크스바겐의 합자회사, 또한 제일 기차(一汽·이치)와 아우디(奥迪·아오디)의 합자회사도 문을 열었다.

중국제일 기차(一汽)와 폭스바겐의 합자회사인 일기 대중(一汽-大众·이치 따중) 차량이 모터쇼에 나와 있는 모습

이렇게 중국의 개혁 개방 초기에 중국 정부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글로벌 기업들은 이후로 상당 기간 선착(先着)의 효(效)를 누렸고, 자동차 산업 분야만 놓고 보자면 폴크스바겐이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와 함께 중국내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어 왔다.

폴크스바겐이 캘리포니아에서 개발했던 ‘산타나’ 모델은 중국에 와서 상타나(桑塔纳)로 판매되었는데, 지금도 중국 거리의 많은 택시가 이 모델이다. 그리고 2010년 엑스포 때에는 폴크스바겐이 엑스포 택시 모델로 선정됐다.

중국인들이 폴크스바겐 그룹의 아우디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돈을 번다는 의미(发财·파차이)와 발음이 비슷한 숫자 8 두개를 연달아서 눕혀 놓은 듯한 아우디의 심볼마크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이렇게 긴 시간에 걸쳐 중국인, 중국 정부와 인연을 맺어 놓은 그 동안의 노력도 분명히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허무하게 물러나게 된 폴크스바겐이 중국에서는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시장과 소비자에게 중장기적인 포석으로 접근해 온 폴크스바겐등 글로벌 회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기업들도 단견(短见)과 단기 성과주의로 인한 반복되는 실패의 함정에 더 이상 빠지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 필자 오강돈(52)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현재 한국과 중국간 아웃바운드/인바운드 마케팅 및 컨설팅을 진행하는 한중마케팅주식회사의 대표이사다.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 국내마케팅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IT 투자회사, 디자인회사 경영의 경력을 쌓고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 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