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의 DNA 염기서열 분석 실험이 처음으로 성공했다. 화성 탐사를 떠난 우주인이 미지의 생명체를 우주선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우주 생물학 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과 UC샌프란시스코 등 공동연구진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의 DNA 염기서열 분석(시퀀싱) 실험에 성공했다고 30일(현지시각) 밝혔다.

우주공간 또는 우주선 내부에서도 생명체의 DNA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해져 우주인의 질병 진단, 국제우주정거장이나 우주선에서 생기는 미생물 분석, 미지의 생명체 확인 등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케이트 루빈스 NASA 우주인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처음으로 생명체 DNA 염기서열 분석에 성공하고 활짝 웃고 있다.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유전자(DNA)는 아데닌(A), 구아닌(G), 사이토신(C), 티민(T)라는 염기로 구성된다. 생명체는 이 염기서열의 숫자와 배열에 따라 구분된다. 염기서열을 분석하게 되면 특정 생명체나 질환 유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우주공간에서 DNA 염기서열 분석이 가능해지면 장기간 동안 우주에 머물러야 하는 화성 탐사 우주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몸에 이상 징후가 있을 때 곧바로 DNA 분석을 통해 항생제를 투여할지 여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 밖에 있는 미지의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생명체의 DNA를 분석해 바로 지구로 데이터를 보낼 수도 있다.

연구진은 쥐와 바이러스, 박테리아 DNA 샘플을 ISS에 보낸 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이 설립한 유전자 시퀀싱 전문기업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스’사가 만든 DNA 염기서열 분석 장비 ‘미니온(MinION)’을 이용해 DNA 염기서열 분석을 시도했다.

미니온은 기존 염기서열 분석방법과는 달리 ‘나노포어’라는 막단백질을 이용한다. 생명체 샘플을 나노포어에 통과시킬 때 나타나는 미세한 전류의 변화를 측정해 염기서열을 분석한다. A, C, G, T 각 염기서열마다 나노포어를 통과할 때 나타나는 전류의 변화가 미세하게 다른데, 이를 분석해 염기서열을 파악하는 것이다.

NASA 연구진이 DNA 염기서열 분석에 활용한 장비 ‘미니온’. 옥스퍼드 나노포어 테크놀로지스사가 만들었다.

이번 실험을 ISS에서 직접 수행한 NASA의 케이트 루빈스 박사는 미니온을 이용해 ISS에서 DNA 염기서열 분석을 진행했다. 같은 시간 지상에서는 다른 연구자들이 동일한 생명체 샘플로 염기서열 분석을 시도했다. 중력이라는 변수만 둔 채 동일한 샘플과 동일한 장비로 동일한 시각에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실험 결과 ISS의 분석 결과와 지상에서의 분석 결과는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주공간에서 DNA 시퀀싱이 처음으로 성공한 것이다.

연구진은 ISS에서 DNA 시퀀싱 실험을 하기에 앞서 다양한 변수를 제거해 나가는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지구에서는 생명체 샘플을 담은 배양액에 기포가 생길 수 있지만 우주에서는 기포 발생 유무를 예측하기 어렵다. 시퀀싱 장비인 미니온이 우주로 발사될 때 생기는 진동에 의해 변형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밀 기계인 장비가 변형되면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연구진은 장비의 에러를 일으킬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확인, 해결하기 위해 최근 미국 플로리다 해변의 18m 수심에 있는 수중기지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NASA의 극한 환경 미션 수행 프로그램(NEEMO)의 일환으로 설치된 수중 기지인 ‘아쿠아리스’에서 습도, 온도, 압력이 다른 가혹한 환경에서 장비의 오류를 일으키는 다양한 변수를 찾아내고 교정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케이트 루빈스 박사는 ISS에서 생명체 DNA 시퀀싱에 성공한 것이다.

NASA의 극한 환경 미션 수행 프로그램(NEEMO) 연구자가 수중에서 ‘미니온’ 장비를 테스트하고 있다.

연구진의 다음 단계는 우주공간에서 생명체 샘플을 준비하고 DNA 시퀀싱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실험이다. 실제로 우주에서 만날지 모르는 생명체 샘플을 추출하고 시퀀싱을 준비해 염기서열을 분석, 미지의 생명체를 확인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특히 우주선 내에서 DNA 염기서열 시퀀싱이 가능해지면 우주인들은 우주 탐사를 하는 동안 건강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다. NASA의 카스트로 왈리스 박사는 “지구상의 연구자들이 교신하며 우주인의 건강 이상 징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며 “소독약이나 살균제, 항생제 등을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실험을 이끈 케이트 루빈스 박사는 실험에 성공한 뒤 지구상의 연구자들과 교신하며 “우주에서의 시스템 생물학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