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6시(현지시각) 베트남 호찌민시. 퇴근 시간이 되자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신호가 바뀌자 오토바이 수백대가 동시에 출발했다. 마치 홍학 떼의 군무를 보는 듯했다.

베트남 국민의 오토바이 사랑은 남다르다. ‘첫 월급을 받으면 오토바이를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억명에 육박하는 인구에 오토바이가 5000만대, 2명 중 1명은 오토바이를 갖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혼다’라고 부른다”고 가이드가 옆에서 설명했다. 일본의 오토바이 브랜드 ‘혼다’는 오토바이라는 명사를 대체할 만큼 베트남 시장을 점령했다. 베트남에서 판매된 오토바이 중 70%가 혼다 제품이다. 혼다에 이어 ‘야마하’나 ‘스즈키’ 등 일본 브랜드가 다음 순위를 차지한다. 최근 이탈리아의 ‘베스파’나 대만의 ‘SYM’이 진출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미미하다.

일제 오토바이는 어떻게 베트남의 도로를 점령하게 됐을까? 베트남의 많은 도로는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로 지어졌다. 도로를 닦아준 일본은 베트남 정부와 주요 관공서에서 사용하라고 중고 오토바이 1만여대를 제공했다. 베트남 국민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공무원들을 보며 ‘자가용 오토바이’라는 꿈을 가졌고 이를 현실화했다.

베트남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가용 오토바이’의 꿈은 이제 ‘자가용 승용차’로 바뀌고 있다. 베트남 자동차 생산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2015년 베트남에서 24만5000여대의 자동차가 판매됐다. 전년 대비 55% 늘어난 수치다.

한발 빠른 선점 때문일까. 베트남의 자동차 시장도 일본의 브랜드가 점령하고 있다. 도요타 모델이 2014년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휩쓸었다. 실제로 베트남 도로에서 본 차량 2대 중 1대는 도요타였다. 도요타의 성과는 20년이 넘는 장기투자에 따른 시장 선점 효과로 보인다.

베트남의 도로를 보며 일본 기업의 개척 정신을 봤다. ‘도로를 깔아주고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팔겠다’, 이 마음가짐은 우리 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노멀’의 시대, 대부분의 우리 기업은 안전한 투자처만 찾고 있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는 개혁과 혁신의 불씨를 살릴 수 없다. 길이 없으면 만든다는 도전적이고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