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에 처한 국내 1위(세계 7위) 해운사 한진해운을 일단 정상화한 뒤 국내 2위(세계 14위) 해운사 현대상선과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선 해운업이 국가 기간(基幹) 산업인 만큼 국익(國益) 차원에서라도 한진해운을 살리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상당수 해운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이 시장에서 퇴출되면 사실상 홀로 남는 현대상선만으로는 세계 해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어렵다"면서 "한진해운의 독자 생존이 어렵다면 국내 1·2위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이 현실적 대안" 목소리 커져

국내 해운 전문가들은 일단 한진해운의 파산을 막는 게 세계 6위의 한국 해운업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란 데 이견이 없다. 현재 글로벌 해운업계는 치열한 운임 경쟁 속에 '너 아니면 나 죽기'식 치킨 게임이 한창이다. 세계 1위 해운사인 머스크를 비롯한 세계 주요 선사가 모두 적자다. 하지만 운임 인하 경쟁을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경쟁에서 도태되는 해운사가 나오면 운임이 다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 협의회를 하루 앞둔 29일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사옥 로비는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한진해운 채권단은 지난 25일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안에 대해 수용 불가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해운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정리되면 가장 좋아할 곳은 해외 경쟁 선사일 것"이라면서 "외국은 자국 선사 지원에 국가적으로 나서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죽이기에 골몰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도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을 살릴 수 있다면 경영권 포기까지 검토하겠다니 채권단도 한진해운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향적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보유 선박 158척, 수송 용량 152만TEU(1TEU는 6m 컨테이너 1개)의 세계 5위권 국적 해운사가 탄생한다. 합병 회사는 세계 해운 시장 점유율이 5%대로 올라서기 때문에 머스크·MSC 등과도 경쟁할 수 있고 비용도 5~10% 절감이 가능하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2%에 불과한 현대상선만으로는 해외 선사와 경쟁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두 회사의 합병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 청산 땐 국내 해운 산업 붕괴"

산업은행 등은 30일 채권단 협의회를 열고 한진해운에 대한 자율 협약(채권단 공동 관리)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 앞서 채권단은 지난 25일 한진해운이 제출한 5000억원 규모 자구안에 대해 "자구안 규모가 미흡하다"며 수용 불가 의사를 밝혀 왔다. 채권단은 최소 7000억원 이상의 자구안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30일 열릴 협의회에선 한진해운에 대한 자율 협약 중단을 결정한 뒤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해운 전문가들은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는 해운업 특성상 파산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정해진 구간을 오가는 정기(定期)선 사업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전 세계 주요 항만이 밀린 항만 이용료와 급유비 등을 회수하려고 한진해운 선박을 압류할 가능성이 높다. 또 화주(貨主)들은 운송 계약을 대거 해지하고 중국·일본 등 다른 나라 선사에 물량을 돌릴 것이 확실시된다. 양창호 인천대 교수는 "한진해운 선박이 한꺼번에 압류되면 배를 움직일 수 없어 운송 지연에 따른 피해 보상까지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해운 산업과 수출입 무역도 직격탄을 맞는다. 세계 3위 항만인 부산항은 환적 물량이 최대 70%까지 급감할 수 있어 항만 터미널 수입 감소, 선박 관리·수리 급감 등으로 연간 4400억원 피해가 예상된다. 연관 산업 종사자 1000명 이상이 실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해양수산부 관료 출신인 정유섭 새누리당 의원은 "한진해운에 3000억원 지원을 아끼려다 국내 해운업 전체로 연간 17조원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