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시중 A은행의 대체투자를 맡고 있는 팀에는 예년에 없던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 내 오피스 빌딩이나 호텔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대출을 해 달라는 미국 금융기관들의 일종의 투자 요청이다. 3000만~4000만달러 정도를 투자하거나 빌려주면, 연 4~5% 정도의 수익을 볼 수 있다는 식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한 달에 한두 건은 꾸준히 제안서가 들어온다"며 "투자 제안 리스트에는 뉴욕의 이름난 빌딩이나 하와이 호놀루루 등지의 호텔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금융 회사들의 해외 부동산 사냥이 활발하다. 글로벌 저(低)금리 시대에도 꾸준히 돈이 들어올 수 있는 오피스 빌딩이 주를 이룬다.

해외 오피스 빌딩 사냥 나선 금융사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 미국 텍사스주의 댈러스에 있는 사무실 빌딩 4개동(棟)을 인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맺었다. 인수 가격 8억5000만달러(약 9500억원) 중 5500억원을 현지 대출로 조달하고, 2000억원은 직접 투자, 나머지 2000억원은 공모 펀드를 만들어 조달할 계획이다. 대형 보험사인 스테이트팜과 20년 임대차 계약을 맺어, 세입자가 끊길 우려가 적다는 평가다. 미래에셋은 최종 실사를 거쳐 다음 달 인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 거래는 올 들어 미래에셋의 6번째 해외 부동산 인수다.

이에 앞서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SRA자산운용이 공동 출자한 삼성 금융 계열사 컨소시엄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56층짜리 코메르츠방크 타워의 매각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코메르츠는 건물을 매각한 후 임차인으로 계속 남을 계획이다.

저금리 시대 꾸준한 수익을 좇아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활발하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가 인수할 독일 프랑크프루트 코메르츠방크 타워, 하나자산운용과 3개 증권사가 사들인 미국 뉴저지 다국적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 사옥,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수 양해각서를 맺은 미국 댈러스 스테이트팜 빌딩.

하나자산운용은 이달 미래에셋대우 등 3개 증권사와 펀드를 조성해 미국 뉴저지에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 사옥을 4000억원 정도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초(超)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이 부동산 대체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대체투자는 주식,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대상에서 벗어나 부동산,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말 국내 연기금과 금융회사들이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해 둔 돈은 77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중 오피스 빌딩 투자가 전체 부동산 투자의 56%에 달한다. 기업이 장기간 통째로 임대해 본사 등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실률(空室率)이 낮고, 임대료가 안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B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장기간 임차 계약으로 오피스 빌딩에 투자하면 연간 5%가량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이만큼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는 투자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오피스 빌딩에 투자가 몰린다"고 말했다. 고(高)금리 시절 계약자와 약속한 수익을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자금 운용이 보수적인 보험사들도 최근엔 부동산 사냥에 가세하고 있다.

오피스 빌딩은 매물이 많아 국내 금융회사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C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외국 오피스 빌딩은 펀드가 소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투자 기간이 끝나면 자산을 매각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줘야 해 매물이 꾸준하다"며 "특히 최근 미국 내 금융 규제가 강해지면서 미국 금융기관이 중(中)순위 대출로 투자한 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매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해외 부동산 투자, "정책·환율 리스크 감안해야"

그러나 최근의 대체투자 붐, 그중에서도 부동산 투자 쏠림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은행은 8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부동산 등) 대체투자는 전통적인 투자 대상에 비해 유동성이 낮고 투자 위험이 높아 대내외 여건이 급변하면 큰 폭의 손실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금융회사가 자체 자금으로 투자한 경우 금융사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고, 일반 투자자 돈을 모아 투자한 경우라면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진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 2012년 2월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오피스 빌딩을 사들일 때 발행한 공모펀드는 최근 1년 수익률이 -49%다. 브라질 경제가 주저앉으면서 헤알화(貨) 가치가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신흥국이 아닌 선진국 부동산에도 위험 요인은 있다. 지난 6월 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면서,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이 본사를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 옮길 것이란 예상에 런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JP 모건은 영국 부동산 가격이 2017년 말까지 약 10%가량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9년 국민연금이 런던의 HSBC 빌딩을 매입한 후 영국에 뒤따라 몰려갔던 국내 기관 투자자들이 브렉시트 후 속앓이를 한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조만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금융사가 부동산 물건의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쉽지 않아 정확한 컨설팅 과정을 거쳐야 하고, 부동산이 위치한 해당국의 정책 리스크와 환율 리스크가 상존한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