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했던 폭염이 물러나면서 몇일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낮 기온 33도를 웃돌며 폭염 특보가 이어진 게 엊그제 같은데 지난 27일에는 아침 최저 기온이 16.9도까지 떨어졌다.

29일 기상청은 중기 예보를 통해 9월 첫주까지 아침 최저기온이 21~23도, 낮 최고기온이 28~29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아침저녁으로는 비교적 선선한 날씨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8월 28일 갑자기 선선해진 날씨에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 공원에서는 석양이 장관을 만들었다.

이처럼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기온이 6~8도 가량 드라마틱하게 떨어진 것은 한반도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기단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반도 상공에 정체돼 있던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약화하면서 한반도 북쪽에 머물렀던 찬 공기가 한꺼번에 북태평양 고기압이 머물던 자리를 메운 것이다.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도 한반도의 기온 변화에 큰 영향을 줬다. 최근에 생긴 열대성 저기압인 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움직임이 정체해 있던 한반도 주변 대기 상황을 급격히 변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8월 여러 차례 폭염 소멸 예보가 빗나가 곤혹을 치렀던 기상청은 29일 기상예보 정확도 향상 대책을 발표했다. 강수 예보 정확도를 92%에서 95%로, 장마철 강수예보 정확도를 85%에서 90%로 끌어올리고 100여명의 유능한 예보관 인력풀을 확보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기상청의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 ‘폭염’ 주연 북태평양 고기압...퇴장도 ‘드라마틱하게’

올해 우리나라에 절정의 폭염을 유발한 북태평양 고기압은 거짓말처럼 드라마틱하게 퇴장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동쪽으로 물러가면서 북서쪽에 머물러 기회만 노리던 찬 공기가 한꺼번에 남하하면서 한반도 기온은 뚝 떨어졌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난 것은 한반도 주변에 영향을 미치는 기단의 세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강하게 자리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나면 기압계의 정체가 풀리면서 양쯔강 기단 등 이동성 고기압이 영향을 준다. 최근 날씨 변화의 경우 급격하게 북태평양 고기압이 물러나면서 북쪽의 차가운 공기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특히 8월에 생긴 9호 태풍 민들레, 10호 태풍 라이언록, 11호 태풍 곤파스가 일반적인 태풍 소멸과정 및 이동경로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우리나라 기온 변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가장 나중에 생긴 11호 태풍 곤파스는 지난 21일 저기압으로 소멸됐다. 일본 남쪽 해상에서 세력이 발달한 9호 태풍 민들레와 10호 태풍 라이언록은 서로 인접하며 북상하는 과정에서 간섭 효과가 생겨 서로의 이동방향에 영향을 미쳤다. 민들레가 일본 쪽으로 북상하는 과정에서 라이언록은 민들레의 세력에 밀려 원래 태풍의 이동방향인 북동쪽이 아닌 서남쪽으로 움직인 뒤 민들레가 소멸하자 다시 일본쪽(북동쪽)으로 향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서쪽까지 영향을 미쳤던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민간 기상 정보 전문 업체 케이웨더의 이재정 예보팀장은 “계절이 바뀌면서 기온이 떨어지는 건 이례적인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태풍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며 “인접해 있던 태풍 2개가 간섭현상을 보이며 이동경로가 바뀌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빠르게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태풍 라이언록 진로도.

10호 태풍 라이언록은 현재 일본 도쿄 남동쪽에서 북진하고 있어 일본에 상륙할 가능성이 크다. 라이언록의 북상으로 우리 나라 상층 공기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기압계에 변화를 줄 여지가 있다. 약 일주일 전 낮 최고기온이 30도 내외로 늦더위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 기상청이 당초 예보보다 2~3도 낮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 기상청 정확도 향상 대책 발표로 성난 민심 달래기…전문가들 “재탕이다"

올 여름 폭염보다 국민들을 불쾌하게 만든 것은 기상청의 날씨 예보였다. 올 여름 장마 기간 예보와 강우 예보, 폭염이 끝나는 시기 예보에서 기상청의 예보는 번번이 빗나갔다.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휴가 계획을 세웠던 많은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기상청은 이에 대해 29일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상 현상의 빈발, 예보관의 사전 학습 부족 및 심층 연구 미흡, 수치모델 예측성능 개선 한계점 등으로 사전대비가 미흡했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장마철 강수량 예보 및 중기예보 정확도 향상을 위한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을 발표했다.

올 여름 기상청의 강우와 폭염 예보는 빗나갔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서울시민이 책으로 비를 피하고 있다.

기상청은 반성을 바탕으로 향후 10년 이내에 강수예보 정확도와 장마철 강수예보 정확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전문분석관 제도를 도입하고 퇴직 기상인 중 예보 경력이 20년 이상인 전문가를 ‘예보자문관’으로 위촉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예보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평생 예보관제도’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29일 기상청이 발표한 대책은 과거에도 여러번 발표됐던 대책으로 ‘재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강수예보 정확도를 일정 수준 끌어올리겠다는 내용은 대책으로 볼 수 없으며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반기성 케이웨더 통합예보센터장은 “한반도에 이상기후 징후가 나타난 게 오래 전 일인데 아직도 이상기후 현상 때문에 예보가 틀렸다는 안일한 상황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전문예보관제나 자문관제 등은 기존에 내놨던 대책과 큰 차이가 없어 기상청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