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이 있는데, 앱(응용프로그램) 하나만 깔아주면 안 될까?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나온 ㅇㅇ멤버스인데… 부탁할게. 이 링크 타고 들어가면 돼. 내 사번은 ㅇㅇㅇ번인데 가입할 때 꼭 적어줘. 가입하면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마일리지도 줘.”

A카드사 부장인 김모(50)씨는 요즘 카카오톡 메신저로 이 같은 메시지를 돌리는 일이 일상이 됐다. 김씨는 “200명을 가입시켜오라고 할당받았는데, 일하면서 멤버스 회원까지 모으려니 죽을 맛”이라며 “주변인들에게 도와달라고 읍소하는 것도 질렸다”고 넋두리했다. 이처럼 하나금융(하나멤버스), 신한금융(신한판(FAN)클럽), 우리금융(위비멤버스) 소속 직원들은 너나할 것없이 ‘멤버십 영업’ 실적을 쌓느라 분주하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 신한, 우리금융그룹의 그룹 통합 마일리지 적립 멤버십 서비스는 3사를 모두 합쳐 회원수 1300만을 돌파했다.

전체 이용자수는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지만, 은행원들이 경품을 내걸고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어 상당수는 다운로드한 뒤 곧바로 어플을 지웠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신한판클럽, 하나멤버스 맹추격 中…내달 KB도 가세

각 사에 따르면 하나멤버스의 회원수는 640만명, 신한판클럽(판페이 포함)은 600만명, 위비멤버스는 100만명에 달한다.

작년 말 은행권 중 가장 먼저 멤버스 서비스를 내놓은 하나금융이 가장 많은 회원수를 확보하고 있지만, 신용카드 점유율이 높은 신한카드를 중심으로 한 신한판클럽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우리은행은 위비톡, 위비뱅크 등 다른 어플을 중심으로 프로모션하다가 최근에야 멤버스 대전에 뛰어들어 상대적으로 위비멤버스 유치 실적은 적은 편이다.

KB국민은행은 9월부터 KB멤버스(가칭)를 출시해 멤버십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졌다.

◆ “멤버스 깔아주면 기프티콘 드려요” 사비로 실적 채웠다는 울분도

각 금융그룹은 빠른 속도로 회원수를 늘렸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일선에서 회원 유치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울상이다. 사비를 털어 실적을 채우고, 주말 근무도 대폭 늘어났다는 불만이 쇄도하며 “누구를 위한 멤버십 전쟁인가”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한 은행 직원은 익명 커뮤니티에 “급하게 실적을 쌓아야하는데 가입해주는 사람에겐 선착순 15명까지 A아이스크림 업체의 아이스크림 교환권을 보내주겠다”고 글을 올렸다. 해당 직원은 7200원 상당의 아이스크림 교환권 비용은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의 경우 각 은행 영업점에 과도한 실적 달성을 요구해 직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지난달 이 금융지주 소속 노동조합은 공동으로 금융감독원에 불건전 영업을 막아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은행은 또 직원들이 영업점 인근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원 모집을 하다가 학부모가 금감원에 민원을 넣어 자제 권고를 받기도 했다.

◆ 과잉 경쟁에 금감원도 나서서 경고

각 금융사의 사활을 건 회원 모으기가 출혈 경쟁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금융감독원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양현근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난달 신한, 우리, 하나, KB 등 4대 금융지주 부사장을 불러 모아 멤버십 서비스로 과당 경쟁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금감원은 이전에도 17개 은행의 부행장들을 소집해 은행 직원들을 동원한 멤버십 서비스 판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나 본사에선 과당 경쟁을 벌이지 말라고 하고 있으나 당장 숫자에 목마른 은행원들이 사비를 털어 실적을 늘려가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은행의 한 지점 관계자는 “주거래고객이 아니고서야 어플을 이용해도 아무 득될 것이 없는데 괜히 은행원들만 괴롭히고 있다”면서 “혹시나 고객이 탈퇴할까봐(탈퇴시 실적 미인정) 아예 은행원들이 그 자리에서 어플을 지워버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