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2인자’ 이인원 부회장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 26일 검찰 소환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의사 결정을 하면 이인원 부회장 지시에 따라 롯데그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며 “이인원 부회장의 빈자리를 빨리 메우는 게 롯데그룹의 과제"라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7일 오전 고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해 이동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인원 부회장 조종간 누가 넘겨 받나

26일 생을 스스로 마감한 이인원 부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에 이어 신동빈 회장을 보좌해온 명실상부한 롯데그룹의 2인자였다. 이 부회장은 정책본부장으로서 롯데그룹 계열사 전반의 자금을 관리하고 경영 상황을 조율해 온 롯데그룹의 실세였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에서 대표이사로 22년 일한 백화점 업계의 대부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롯데쇼핑 대표에 오른 1997년 2조4409억원이던 롯데그룹 매출은 2015년 68조2833억원으로 약 20년 만에 28배 불어났다. 같은 기간 롯데그룹 재계 순위도 11위에서 5위로 껑충 뛰었다.

신동빈 회장의 가신(家臣) 가운데 이 부회장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인물은 소진세 롯데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이다. 소 단장은 1977년 롯데쇼핑에 입사해 롯데슈퍼 대표, 롯데쇼핑 총괄사장을 거쳤다. 40년간 이 부회장과 롯데 신화를 일군 유통 전문가다.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 역시 그룹 내에서 손꼽히는 유통 전문가다. 노 대표는 1979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한 뒤 기획담당 이사, 서울 잠실점장, 판매본부장, 전무 등을 맡아 롯데백화점을 국내 최대 백화점으로 키웠다.

롯데마트 대표로 근무하다가 2015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숙원사업 ‘제2롯데월드 건설’을 완성하기 위해 롯데물산 대표를 맡을 정도로 신씨 일가의 신뢰가 두텁다. 그러나 노 대표는 현재 롯데마트 영업본부장 시절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연루, 검찰에 구속된 상태다.

롯데그룹 정책본부 관계자는 “(이인원 부회장의)빈 자리를 누구라도 채울테지만, 아직 상중(喪中)인 만큼 후속 인사에 대한 언급은 이르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관련 인물에 대한 언급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비구름에 가려져 있다.

◆ 수포로 돌아간 연초 계획

롯데그룹은 당초 2016년을 ‘글로벌 롯데’로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을 예정이었다. 123층 555m 크기 롯데월드타워를 개장하고, 호텔롯데를 주식 시장에 상장해 지배 구조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려 했다.

하지만 6월 초 시작한 검찰 수사가 8월까지 이어지면서 롯데그룹 경영 계획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보통 매년 8월 초 계열사 사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경영 방향을 검토하던 하반기 사장단 회의는 열리지 못하고 있다. 역점 사업이던 호텔롯데 상장은 무기한 미뤄졌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6월 미국 2위 면세업체인 ‘듀티프리아메리카스(DFA)’의 인수를 접었다. 1조7000억원 규모였던 DFA 인수가 성사됐다면 롯데면세점은 세계 2위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롯데홈쇼핑은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로부터 받은 ‘6개월 프라임타임(오전·오후 8~11시) 영업정지 처분’ 시작일(9월 28일)을 한달 앞두고 있다. 현재 영업정지 조치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로 법원 결정만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당장 법원이 롯데홈쇼핑 손을 들어주더라도, 곧 미래부에 홈쇼핑 채널 운영권 재승인 심사를 받아야 한다. 승인권을 쥔 심사기관과 행정 소송을 벌여야 하는 판이다.

최근에는 정부가 추진하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최적지로 롯데가 보유한 ‘롯데스카이힐 성주CC(성주골프장)’가 낙점돼 이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지난 7월 3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장기간 해외출장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일본에서 귀국하고 있다.

◆ 신동빈 회장, ‘원리더’ 역량 시험대에

신동빈 회장은 7월 3일 귀국 후, 지난 28일 이인원 부회장 빈소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두달 가까이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 ‘롯데가 형제의 난(亂)’ 당시 간담회와 대외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쳤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롯데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롯데호텔 24층 집무실에서 정책본부 핵심 임원과 계열사 사장단을 조용히 만나 업무를 처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룹 실무를 총괄하던 이인원 부회장의 부재, 신동빈 회장 본인의 검찰 소환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신동빈 회장이 스스로 강조한 ‘원롯데·원리더(One Lotte, One leader)'의 역량을 보여줘야할 때다"라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형(兄)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와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다투면서 ‘한·일 롯데그룹은 한 몸이고, 리더도 한명'이라는 ‘원롯데·원리더(One Lotte, One leader)' 체제를 누누이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