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히트요? 생과일주스죠.”

25일 저녁 8시 서울시 중구 명동. 쇼핑의 중심지답게 아직 더운 날씨에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명동 거리 중심가엔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다. 가장 붐비는 곳은 생과일주스 노점이었다. 손님이 몰려 주스를 내는 손이 바빴다. 한 손님은 “노점에서 목마를 때 찾을만한 건 주스뿐"이라고 말했다. 상인의 표정도 즐거워 보였다. 호떡과 생과일주스를 함께 파는 한 노점 상인은 “올 여름은 생과일주스가 제일 잘 나간다"고 말했다.

반면 아이스크림 노점은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적었다. 장사는 잘되느냐고 물었더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날이 더우니 아이스크림은 잘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엔 그저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명동의 노점상.

20여 분간 명동 노점에서 판매되는 제품 판매량을 비교해봤더니 닭꼬치 6개, 아이스크림 11개, 생과일주스 19개로 생과일주스가 가장 많았다. 생과일주스가 아이스크림의 두 배 수준으로 팔려나갔다. 날씨가 너무 더워 단맛이 강한 아이스크림보다 수분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생과일주스가 잘 나갔다.

올 여름 ‘역대급 폭염’이 지속되면서 식품업계의 인기 판매 품목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통적 여름 제품인 빙과류와 탄산음료 성장이 주춤한 반면, 그 자리를 커피와 스포츠음료가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기록적인 무더위로 땀 배출이 많아 소비자들이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제품을 많이 찾았다고 분석했다.

◆ 커피·음료, 과일 주스·컵얼음 폭발적 성장

커피와 스포츠음료가 음료 시장의 변화를 선도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올 8월 커피 매출은 작년 8월보다 24.5% 늘었다. 특히 커피 등 음료를 담기 위해 준비된 컵얼음의 매출은 같은 기간 128%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푹푹찌는 무더위에 전해질이 함유된 스포츠음료를 찾는 소비자도 많았다. 세븐일레븐의 8월 스포츠음료 매출은 작년 8월에 비해 26.7% 늘었다. 이마트의 7, 8월 스포츠음료 매출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33.6% 증가했다. 동아오츠카는 올해 들어 8월까지 포카리스웨트 매출이 역대 최고치인 1000억원으로 작년보다 15%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IFC몰 내의 생과일주스 전문점. 주문하면 바로 착즙기에 과일을 갈아 제공한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매출 증가폭이 눈에 띄게 늘었다. 스타벅스의 8월 3주간 아이스 음료 판매량은 이전 3주간에 비해 20% 증가했다. 여름 대표 상품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판매량은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5% 늘었다. 투썸플레이스의 냉음료 판매량도 같은 기간 20% 증가했다.

길거리에선 생과일주스가 인기다. 쥬씨, 닥터쥬스, 쥬스식스, 쥬스팩토리, 곰브라더스 등 테이크아웃 고객을 상대로 하는 주스 체인들이 늘고 있다. 노점과 몰에서도 생과일주스 매점을 흔히 찾을 수 있다. 여의도 IFC몰의 한 생과일주스 전문점에선 청포도부터 자몽, 망고까지 다양한 과일을 즉석에서 즙을 짜내 팔고 있다. 점원은 “신선한 과일을 눈앞에서 짜내니 믿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 ‘전통의 여름강자’ 아이스크림, 탄산음료는 부진

전통적인 여름 인기 품목이었던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는 생과일주스와 스포츠음료에 왕좌를 내줬다.

이마트의 7, 8월 빙과류, 탄산음료 매출은 기록적인 폭염에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0.6%, 3.2% 성장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33.6% 성장한 스포츠음료 매출과 비교하면 거의 매출이 늘지 않은 셈이다.

세븐일레븐의 올 8월의 아이스크림, 탄산음료 매출은 작년 8월에 비해 각각 18.4, 16.3% 늘긴 했지만, 같은 기간 각각 24.5%, 26.7% 증가한 커피와 스포츠음료에 미치진 못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한 생과일주스 노점.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에 들어있는 당분은 오히려 갈증 해소를 막는다. 당분이 몸에 들어오면 신체의 삼투압이 높아져 물을 찾게 된다. 시원한 맛에 아이스크림을 먹더라도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진 못한다.

남대문에서 만난 한 시민은 “아이스크림이나 탄산음료는 시원하지만 먹고 난 뒤 입이 텁텁하다”며 “흘리기라도 하면 끈적거려 여름철 짜증을 돋구기도 한다”고 말했다.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9일 발표한 음식료산업변화동향조사에서 올해 아이스크림 출하량을 작년에서 5.7% 감소한 34만3662M/T(메트릭톤)으로 예상했다. 시장 규모 또한 줄어드는 추세다.

◆ 간편식·배달음식 소비 늘어

더운 날씨에는 요리도 고역이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가스 불 앞에 서면 땀이 절로 맺힌다. 식후 뒷정리도 문제다. 폭염 아래선 설거지도 중노동이다. 올 여름에는 이미 조리돼 먹기 간편한 냉동, 냉장 음식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

이마트의 7월부터 8월 25일까지 냉동HMR(가정간편식)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0.3% 늘었고, 냉장대용식품의 매출은 10.2%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의 냉장, 냉동식품 매출은 8월 1일부터 23일까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21.9%, 17.8% 올랐다. 심야(밤10시~새벽4시) 매출 신장률은 각각 45.5%, 28.1%로 더 크다.

배달음식 업계도 호황을 맞았다. 무더위에 요리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음식을 시켜먹는 욕구가 늘어난 것이다. 계속된 열대야로 야식 주문도 크게 늘었다. 모바일 배달 앱 ‘배달의 민족'의 7, 8월 야식 주문은 6월보다 22% 증가했다. 배달 음식이라면 흔히 치킨을 떠올리지만, 최근엔 족발·보쌈 같은 한식 메뉴의 판매도 늘었다.

배달음식 주문량은 온도에 큰 영향을 받는다. 배달의 민족 주문 건수는 기온이 30도 이상일 때 11% 이상 증가한다.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성호경 팀장은 “업체 자체의 성장도 있지만, 7월1일부터 8월 23일까지 주문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3%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