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을 가리키며) 저기 앉은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와 저는 굉장히 친한 사이에요. 그래서 퓨처플레이가 초기 투자한 회사에 제가 후속 투자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친분 관계때문’이라고 오해하곤 하죠. 그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앞으론 퓨처플레이의 포트폴리오사(피투자사)에 투자하지 말아야겠어요.”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이사)

불볕 더위가 한풀 꺾인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가와 벤처 투자가, 관련 부처 공무원 등 벤처 업계 관계자 100여명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이날 여섯번째 연사로 나선 송 대표가 국내 벤처 생태계의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며 농을 던지자,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25일 오후 부산 우동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제2회 스타트업생태계컨퍼런스’에서 벤처 업계 관계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파트너,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이호찬 KTB벤처스 대표, 유주동 엔씨소프트 상무, 박인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방송기반과장.

이날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개최됐다. 올해에는 송 대표 외에도 주최측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임정욱 센터장, 이호찬 KTB벤처스 대표,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 유주동 엔씨소프트 상무,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파트너, 권혁태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대표, 탁 로(Tak Lo) Zeroth.ai 파트너와 브라이언 양(Brian Yang) DT캐피털 전무 등이 연사로 나섰다.

◆ “기술 스타트업, 투자 유치 특히 힘들다”

연사들은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M&A 등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와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주제로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초기 투자사 매쉬업엔젤스의 이택경 대표파트너는 특히 기술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M&A나 후속 투자가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보통 매쉬업엔젤스 같은 초기 투자사가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피투자사가 M&A되거나 벤처캐피털로부터 후속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보유 지분을 매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 분야 스타트업의 경우 M&A는 커녕 투자 제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엑시트가 어렵다는 것이 이 대표파트너의 설명이다.

그는 “국내 벤처캐피털들은 순수한 ICT 기술 기업에 투자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매출 증가 등 눈에 보이는 ‘지표’가 나와야만 후속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문에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은 O2O 서비스 스타트업에 비해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가 2~3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송은강 대표는 벤처캐피털 입장에서 후속 투자가 어려운 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액셀러레이터 등 초기 투자사가 엑시트하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털이 지분을 사주면 되는데, 신주가 아닌 구주를 사기 위해선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사와의 개인적인 친분때문에 후속 투자에 참여했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김영덕 롯데액셀러레이터 상무는 일반 대기업 입장에서 느끼는 M&A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다.

김 상무는 “대기업이 타 법인 지분을 30% 이상 보유할 경우, 그 회사는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돼 공정거래법상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며 “이때문에 대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전에 지분을 얼마나 가져갈지에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A를 강제로 활성화하기보다는 기업공개(IPO) 문턱을 낮춰 엑시트의 문을 넓혀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택경 대표파트너는 “M&A는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것”이라며 “그 대신 정부가 IPO 기준을 완화해줘 더 많은 기업이 상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호찬 KTB벤처스 대표도 “M&A 시장이 경직됐다고 비판하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IPO를 고려하는 게 더 합리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 “내수 시장에 갇혀있지 말라...한국 스타일 벗어던져야”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국내 스타트업이 공통적으로 가진 한계와 이들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제시됐다.

임정욱 센터장은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내세우는 스타트업이 많지만 제대로 된 기술을 보유한 회사는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카쉐어링 등 공유 경제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지나치게 심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임 센터장은 덧붙였다.

외국인 연사들은 한국의 스타트업이 내수 시장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탁 로 파트너는 “동남아시아 창업가들은 해외에 진출하지 않으면 성장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데, 한국 창업가들은 흥미로운 사업 아이템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내수 시장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 스타트업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소개하는 영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브라이언 양 전무 역시 “젊고 국제적인 배경을 가진 창업 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해당 기업이 한국적인 스타일을 벗어던질 수 있는지, 그리고 창업가가 가족과 함께 해외에 나가 거주할 수 있는지 여부를 본다고 말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편, 이날 컨퍼런스에는 지난달 보석 석방된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도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호 대표는 지난 4월 중소기업청 팁스(TIPS·민간 주도형 기술 창업 지원 사업) 보조금을 받아주겠다며 스타트업 지분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