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박모(26·4학년)씨는 지난 6월 운영하던 스타트업(창업 초기기업)의 문을 닫았다. 취업 준비에 매진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작년 하반기에 대학생을 위한 스마트폰용 메모장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본격적인 사업은 시작도 하지 않고 사업을 접었다. 창업은 실패했지만, 금전적인 피해는 없었다. 창업에 들어간 비용과 사무실 임차·운영 비용은 학내 창업보육센터와 서울시가 운영하는 창업지원기관에서 지원받아 충당했다. 박씨는 "솔직히 내 아이디어는 사업성이 별로 없었다"며 "주변에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데 '창업 경력'이 굉장히 유리하다고 해서 창업했을 뿐"이라고 했다.

전국 대학에서 대학생 창업 붐이 일고 있지만 상당수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용'이란 지적이다. 대학생 창업 열풍 현상은 '스펙용 창업'이 만든 착시라는 것이다. 한 해 800개 안팎의 기업이 창업을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매출이 일어나는 곳은 절반도 안 된다. 스펙용 창업은 정부의 청년 창업 지원금을 받아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업을 준비중인 한 대학생은 "상당수 대학생이 자신의 돈은 한 푼도 투자 안 하고 정부 지원금만 활용해 동아리 활동처럼 창업한다"고 말했다.

어학연수보다 좋은 스펙이 된 '청년 창업'

서울의 H대에 다니는 김모(29)씨는 취업 3수 끝에 올 3월 IT 기업에 취직했다. 경력에 쓴 '온라인 음식 주문 서비스 창업 멤버'가 큰 역할을 했다. 김씨는 3년 전 Y대, K대 선후배와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이들은 개발이 어려운 앱이 아닌, 간단한 온라인 홈페이지만 만들었다. 이 서비스는 6개월 만에 사라졌다.

창업은 실패했지만 멤버들은 성공했다. 창업한 지 얼마 안 있어 당시 취업 준비생이었던 선배 3명은 대기업에 취직했다. 이 스타트업의 한 참가자는 "선배 한 명은 이름만 올리고 처음부터 스타트업에 아예 관여하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창업 스펙이 잘 먹혀 당시 멤버 8명 중 한 명 빼고 모두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가(大學街)에 부는 창업 열풍의 이면에 '스펙용 창업' 거품이 끼어 있다. 현재 전국 200여 대학에는 6000여 개의 창업 동아리가 있고, 회원 수만 5만명이 넘는다. 교육부가 운영하는 대학 정보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작년(2015년 4월~2016년 3월) 대학생이 세운 창업기업 750개 중에서 3분의 1 정도는 매출이 한 푼도 나지 않는 휴면(休眠) 상태다. 고용도 거의 없다. 대학생 창업기업 1곳당 평균 고용 인원은 0.8명이다. 상당수가 '스펙 쌓기용'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Y대에서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한 대학생은 "창업 동아리에 들어온 대학생들이 가입 이유로 대기업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푸드트럭'도 '스펙 쌓기'를 위한 좋은 창업 아이템이다. 한국푸드트럭협회의 하혁 대표는 "푸드트럭을 시작했다가 금방 접는 청년들이 꽤 많은데, 이들 중 일부는 스펙을 쌓기 위한 대학생들"이라며 "푸드트럭은 사업증을 내면 지자체 등에서 저리 대출을 해주는 데다 사업을 접을 때도 트럭만 팔면 원금 회수가 쉽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의 질(質)을 고민해야

정부 부처와 지자체는 최근 3년 동안 청년 창업에 2조원 정도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청만 3년간 약 5000억원을 썼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창업 지원이 창업의 질(質)까지 담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창업 지원은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만 보고 선정한 뒤 후속 절차로 3~6개월 단위로 성과 보고서만 형식적으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펙용 창업을 해도 홈페이지만 개설해 사업이 진행 중인 것처럼만 꾸미면 아무런 문제가 안 생긴다는 것이다. 한 대학생 창업자는 "같은 창업 아이템으로 2곳 이상에서 지원금을 타내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박주영 숭실대 교수(벤처중소기업학과)는 "정부 각 부처와 지자체가 중구난방으로 청년 창업을 지원하다 보니 허점을 악용하는 대학생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생겨난 것"이라며 "대학생을 탓하기 전에 정부 지원 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