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를 주도하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이 한국의 팹리스(생산라인이 없는 반도체 설계업체)를 대상으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의 '쇼핑 리스트'에 오른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전력관리, NFC, 보안 등 사물인터넷(IoT) 관련 솔루션에 특화한 기업들이다.

18일 국내 팹리스 업계에 따르면 칭화유니그룹은 실리콘마이터스, 맵스, 지니틱스 등 국내 5~6개 반도체 설계업체들을 대상으로 M&A 협상을 준비 중이다. 이들 중 최소 한 개 업체는 구체적인 인수 협상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 최고의 이공계 명문대로 꼽히는 칭화대가 과학기술 연구성과 상용화를 위해 1988년 설립한 첫 산학연계 기업이다. 칭화대에서 100% 출자해 설립한 칭화홀딩스가 이 회사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고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M&A 공세를 펼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 본사 전경.

칭화유니그룹이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진 실리콘마이터스는 전력관리 반도체(PMIC) 전문 회사로 지난 2007년 설립된 이후 6년만에 매출액 1000억원을 돌파한 강소기업이다. 그동안 PMIC는 맥심인터그레이티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외산 기업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분야였다. 실리콘마이터스는 굴지의 다국적 반도체 회사와 경쟁 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와 페어차일드 반도체 출신의 엔지니어들이 모여 설립한 팹리스업체 맵스(MAPS)는 최근 세계 최초로 자기유도 방식과 자기공진 방식의 무선 충전을 모두 지원하는 칩을 생산해 미국, 중국 등지에 납품하고 있다. 지니틱스는 삼성페이 등에 쓰이는 근접무선통신(NFC) 방식 결제용 반도체를 양산해 주목을 끌고 있는 업체다.

칭화유니그룹은 중국의 첫 ‘반도체 거인’이 되기 위해 과감한 M&A 전략을 구사해왔다. 지난 2013년 팹리스 시장 다크호스로 부각되고 있던 스프레드트럼을 17억8000달러에 인수했고, 2014년 7월엔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9억달러에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올해 역시 M&A와 설비투자 등을 합쳐 300억달러 규모의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프로그래머블 반도체 기업 래티스반도체 지분을 6% 인수하기도 했다.

칭화유니그룹이 한국으로 눈을 돌린 가장 큰 배경은 국내 팹리스 업체들 상당수가 기술력에 비해 회사 가치가 저평가돼 있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내 팹리스 업체 상당수가 삼성전자 출신이거나 삼성전자와 협력 관계라는 점도 칭화유니그룹 입장에선 매력적이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이 해외 업체들의 사냥감 신세가 된 건 국내 팹리스 업계 전반에 걸친 위기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내수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며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실력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위 16개 업체 중 상위 9개 업체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30% 이상 급감했다. 국내 팹리스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도 지난 2014년에 1% 수준으로 떨어진 이후에도 줄곧 하향 추세다.

국내 팹리스 업체 관계자는 "중소 팹리스 기업이 뛰어난 기술력으로 차별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자본력이 부족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그 사이에 대기업에게 따라 잡히는 사례도 부지기수"라며 "한때 중소기업들이 생산하던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CMOS 이미지센서도 이젠 대기업들이 잠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중국 칭화유니그룹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형 시스템 반도체 및 센서 업체인 A사도 국내 팹리스 업체들을 대상으로 M&A를 검토 중”이라면서 “실력 있는 팹리스 업체들이 해외 기업에 하나둘씩 흡수합병될 경우 국내 팹리스 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이와 관련해 실리콘마이터스 관계자는 "칭화유니그룹과 인수합병과 관련해 현재 논의 중인 사항은 전혀 없다"며 "회사는 독자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속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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