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작년 3월 모바일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서비스인 '카카오 택시'를 출시했다. 당시 정주환 부사장 등 카카오 임원진이 가장 눈여겨본 서비스는 중국판(版)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이었다. 차량 공유업체인 디디추싱은 스마트폰으로 차량을 호출하고 배차·결제까지 모든 과정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주환 부사장팀은 수차례 중국을 오가며 직접 디디추싱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중국 현지 택시 기사들과 만나 서비스의 장단점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모방과 짝퉁으로 한국 기업을 추격했던 중국이 IT 종주국을 자처했던 한국을 오히려 앞서고 있다. 특히 모바일 서비스 분야에선 한국 IT기업들이 중국을 벤치마킹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페이스북과 단문형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트위터 등 미국의 실리콘밸리 간판 기업들도 '중국 배우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모바일 분야에선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중국이 혁신의 첨단을 달린다"고 평가할 정도다.

"종주국 자처했는데"…중국에 역전당한 한국 IT

카카오가 중국에서 배운 건 카카오 택시만이 아니다. 현재 출시했거나 준비 중인 대리운전, 미용실 예약, 가사도우미 중개 서비스 등에서도 중국을 철저하게 벤치마킹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택시·대리운전뿐만 아니라 마사지, 호텔 룸서비스 등 생활의 모든 영역을 스마트폰 앱으로 이용할 수 있다"며 "모바일 서비스 분야에서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의 경우도 카카오 페이는 2014년 9월에, 삼성페이는 작년 8월에 나왔지만 이때는 이미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의 '알리페이'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었다. 알리페이 사용자는 현재 4억5000만명 이상으로 삼성페이보다 수십 배나 많다.

앞서가는 중국 IT모바일서비스 정리 표

한국이 종주국 역할을 자처했던 게임산업도 중국을 뒤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게임인 '리니지2'의 모바일 버전은 이미 중국의 스네일게임즈가 개발을 완료해 중국 현지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엔씨소프트가 한국에선 넷마블게임즈에, 중국에선 스네일게임즈에 판권을 넘긴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게임을 개발해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모바일 게임이 오히려 한국에 역(逆)수출되기도 한다. 구글의 앱 장터인 '플레이스토어'에서 최고 매출 4위에 올라 있는 '뮤 오리진'과 8위인 '검과 마법 포 카카오(for kakao)'는 중국 개발사에서 만든 게임이다. 불과 2∼3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게임이 독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이젠 중국 게임이 장악하는 것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과거 한국 IT산업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정부의 지원과 값싼 하드웨어 공급, 열정적인 소비자 등 3박자를 모두 갖췄다"면서 "여기에 10억명이 넘는 거대한 시장에서 수집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글로벌 모바일 서비스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첨단 중국…"이젠 미국이 중국 베낀다"

페이스북 메신저 사업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마커스 부사장은 최근 중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서비스 위챗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준다"고 극찬하며 "페이스북 메신저를 (위챗처럼) 사람들이 비즈니스를 하고 물건을 살 수 있는 플랫폼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위챗 모델을 따라 페이스북을 변신시키겠다는 것이다. 위챗은 페이스북 자회사로 인수된 왓츠앱보다 2년 늦은 2011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단순한 메신저 기능을 넘어 쇼핑과 금융, 영화 공연, 차량 호출, 병원 예약까지 모든 서비스를 메신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실제 페이스북은 위챗을 본떠 작년 모바일 결제 기능과 차량 호출 기능을 메신저에 추가하기도 했다. 또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동영상 실시간 재생 서비스는 이미 수년 전 중국 인터넷방송 업체인 YY닷컴(YY.com)이 시작한 서비스다. 세계 1위의 소셜데이트 앱인 미국의 틴더도 중국의 모모(陌陌)보다 늦게 출시됐다.

이처럼 과거 세계 IT혁신의 중심이었던 실리콘밸리도 이젠 혁신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중국 기업에 눈을 돌리는 것이다. 신기술 연구 기업인 스트래테커리의 창립자 벤 톰슨은 뉴욕타임스에 “최근 몇 년 상황을 보면 중국이 미국을 베낀다는 비유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정반대로 미국이 중국을 모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애플도 중국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팀 쿡 애플 CEO는 15일(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고위 간부들을 만나 중국에 최초로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팀 쿡은 3개월 전에도 중국을 방문, 유명 앱 개발자들과 만나 “중국의 혁신은 애플 정신과 부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애플은 당시 디디추싱에 10억달러(약 1조1110억원)를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