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유시진 대위(송중기역)는 작전지인 우크르에서 현대자동차의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투싼’을 주로 타고 다녔다. 그러나 작전 지역으로 이동할 땐 군용차량인 험비(HMMWV)를 탔다.

미군이 사용하는 전술차량 험비는 ‘High Mobility Multipurpose Wheeled Vehicle(고기동성 다목적 차량)’의 앞글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AM제너럴이 이 차량을 생산한다. 험비를 기본 모델로 해 민수용으로 만든 험머(HUMMER)는 미국인들이 아끼는 차 중 하나다. 험비는 군용 차량의 바이블로 통한다. 고각 등판 능력과 탁월한 도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튼튼하고 대부분이 기계식이라 수리가 간편하다. 다만 낮은 연비와 미흡한 방탄 성능은 단점으로 꼽힌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와 부대원들이 험비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기아자동차가 험비에 도전장을 던졌다. 기아차는 험비와 동급인 신형 소형전술차량(LTV·Light Tactical Vehicle)에 역점을 두고 있다. 전술차량은 군 작전 용도로 만든 차량을 말한다.

◆ 국내 유일 전술용 차량 생산 기지…기아자동차

국내에서 전술차량을 개발·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기아자동차는 1973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우리 군의 주요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전술차량은 미군으로부터 조달했다.

기아차는 1977년 5톤 표준 차량, 1978년 2.5톤 표준 차량, 0.25톤 표준 차량의 양산에 성공했다. 1981년에는 0.25톤 표준 차량 1126대를 이란에 수출하는 성과도 냈다. 군수차량 최초의 수출이다.

기아자동차가 만든 LTV 시제품이 험지에서 주행 시험을 하고 있다.

2003년부턴 성능을 개량한 표준차량 양산에 들어갔으며 유조차, 급수차, 신형응급차 등 생산 품목을 늘렸다. 2012년 LTV 체계 개발업체로 선정된 기아차는 2015년 상반기에 LTV 개발을 완료했다.

기아차가 생산하는 LTV는 4인승 지휘용, 8인승 지휘용, 기갑수색용, 관측반용, 정비용 등 5가지로 나뉜다. 기아차 대형 SUV인 모하비의 엔진을 탑재해 강력한 힘을 갖췄으며 험비처럼 넓직한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북한군이 주로 사용하는 5.45mm AK-74 소총탄이 관통하지 못하도록 방탄 쉴드도 채용했다. 또 전자제어8단 자동미션에 전자식 4륜 구동, 전자파차폐장치, 런플랫 전술타이어 등 첨단 기술이 들어가 전장 생존성을 극대화했다.

LTV를 소개하는 기아차 직원의 표정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험비와 붙어도 자신있다”고 했다.

◆ 손으로 만드는 LTV…”품질관리가 생명”

8월 4일 광주 기아차 공장을 방문했다. 기아차는 군용 차량과 특수 차량 공장인 광주 하남 공장에서 LTV를 생산한다. 전술차량의 경우 생산 대수가 많지 않아 대부분의 제작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전술차량의 공정은 크게 두가지 나뉘어서 진행된다. 공장 오른쪽편에선 엔진과 미션 등 차체 공정이, 왼쪽편에선 탑승부 공정이 진행됐다. 차량은 각 부분을 조립해 결합하는 프레임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광주 하남의 기아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LTV를 조립하고 있다.

군용 차량 답게 차체에 들어가는 모든 자재는 국방색으로 도색돼 있었다. 차량에 바퀴를 장착하는 공정에 비치된 타이어에 눈길이 갔다. ‘들 수 있을까?’ 성인 남성이 들기에도 벅차 보였다. 기아차 관계자는 “펑크가 나도 시속 48km로 한 시간 이상 주행할 수 있도록 내부에 플랫이 들어간 타이어”라며 “무게가 80kg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퀴까지 장착된 차체가 도착하면 크레인에 달려있던 몸체가 그 위로 얹혀진다. 완성된 전술차량은 이어 휠얼라이언스와 롤앤브레이크 검사를 받는다. 차량 조향 장치에 이상은 없는지, 동력계와 제동장비도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는 과정이다.

차량은 가만히 서 있으면 런닝머신처럼 원통 모양의 바닥이 자동으로 움직이는데, 원통이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차량이 가속하는지, 원통이 구르는 동안 브레이크를 잡았을 때 바퀴가 돌지 않는지 등을 확인한다.

이어 방수 테스트가 진행된다. 20여분간 폭포수 수준의 물을 차체에 뿌려 방수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까지 마치면 위장 도장을 하고 출하 대기 상태가 된다.

조립된 차량이 방수 테스트를 받고 있다.

출하 전에는 최종 점검 과정도 밟는다. 최종 점검장에 들어간 차량은 133개 항목의 검사를 받는다. 차량 한 대를 점검하는 데 3시간 가량이 소요된다. 한번에 두 대를 점검한다. 하루에 12대 가량의 최종 점검을 받는 것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군에서 요구하는 수준보다 품질관리를 더 엄격하게 하고 있다”며 “기아차의 품질관리체계를 그대로 적용해 불량률 ‘0’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 ’60도 경사가 어느 정도길래’…롤러코스터 타는 듯 ‘아찔’

주행테스트장에서 LTV를 직접 타봤다. 차 문을 열 때부터 ‘탄탄함’이 느껴졌다. 기아차 관계자는 “수천만원 어치의 방탄 소재를 장착해 방호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차 안은 매우 심플했다. 가장 먼저 에어컨 설치 여부를 물었다. 기존 군용 레토나 차량에는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있죠.” 운전대를 잡은 기아차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센터페시아엔 내비게이션도 달려 있었다. 센터페시아의 버튼들은 대부분 기계식 스위치 형태의 모양이었다. 고장이 적고 쉽게 수리할 수 있게 기계식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육중한 외관 만큼 승차감 역시 묵직했다. 진동은 일반 SUV 차량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다소 엔진 소음이 있었지만 운전자와 동승자가 대화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정도였다.

LTV가 고각 등판을 하고 있다. 60도 고각 시험장에서 등판 도중 시동을 끈 후 다시 시동을 걸어서 구동하는 방식으로 테스트가 진행된다.

주행능력은 어떨까. LTV에는 225마력 디젤 엔진이 들어간다. 기어는 일반 군용 차량에 들어가는 수동이 아닌 자동 방식이다.

LTV의 가속력은 주행테스트장에 마련된 직선 코스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전투용적합판정을 받으려면 시속 100km까지 속도가 나와야 하는데 기아차의 LTV는 시속 130km까지도 속력을 낼 수 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 봤다. 시속 32km까지는 4초, 시속 80km까지는 14초, 시속 100km까지는 25초가 걸렸다.

LTV의 힘은 고각 등판 테스트에서 바로 느낄 수 있다. 60%(등판각 31도) 고각을 처음부터 쭈욱 올라가는 것은 물론 중간에 일부러 정지했다 다시 등판을 재개하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차보다는 옆에 탄 기자들이 문제였다. 흡사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등판 시험장을 옆에서 봤을 땐 경사가 급해보이지 않았지만 차 안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차량 정면으론 하늘만 보였다. ‘뒤로 밀리는 거 아니야?’ 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등판을 마친 후에는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오’라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나오는 순간 차량은 아무렇지 않게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 때를 빼면 LTV를 타는 내내 안정감이 느껴졌다. 바닥이 빨래판처럼 울퉁불퉁한 코스를 지날 때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자 핸들이 잠시 흔들렸다가 곧바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독립형 서스펜션의 효과라고 기아차 직원은 설명했다. 이 차를 타고 도로에 나가면 그 어떤 차보다 안전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최종 점검을 마친 LTV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

◆ 수출 시장 노리는 LTV...정부의 ‘조용한 지원’ 절실

기아차는 LTV 사업 개발업체로 2012년 11월 선정됐다. 2013년 12월 시제품 제작과 자체 시험에 들어가 2014년 12월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LTV 개발엔 1000억원 이상의 연구비가 들어갔다.

기아차 관계자는 “군용 차량을 생산해서 남는 이익은 거의 없다. 소요되는 연구비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면서 “방위 산업은 이익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다. 방위 산업의 중요성 때문에 소명의식을 갖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LTV의 최대 장점은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열의 승차 공간을 제외한 후면부에 각종 쉘터를 붙이기만 하면 된다.

방산업계에서는 LTV의 수출 성과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개발한 전술차량보다 가격경쟁력이 월등하고 성능은 뒤처지지 않는다”며 “수출경쟁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 상반기 기아차의 군용차량 국내 판매 실적은 475대를 기록했다. 오히려 수출이(500대) 더 좋은 실적을 냈다.

방탄 성능을 낮추고 주행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면 험머처럼 민수 시장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기아차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LTV를 민수화 하기 위해선 고려할 사항이 너무 많다. 고객이 그만큼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기아차는 민수시장보다는 해외 전술차량 시장을 노리는 게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기아차 관계자는 “해외 상품 전시전에 나가면 LTV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주행테스트를 한 바이어들은 대부분 만족스럽다는 반응이다”라고 했다.

수출 확대를 위해선 정부의 ‘조용한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방산 계약에서 국가간 외교 관계는 상당히 중요한 변수다. 상호간의 신뢰가 깔려있어야만 수주 계약이 가능하다. 정부도 이를 위해 방산협력을 담당할 국방무관을 파견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조금만 목소리를 낮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 인사를 통해 수출 계약 추진 과정이 외부에 공개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무기를 구매하는 국가는 대부분 주변국과 긴장 상황에 놓여있다. 이들 국가에서 구매하려는 무기의 제원이나 성능은 국가 안보상 비밀로 비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수출 성과를 홍보하려다 되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며 “방위산업을 내실있게 키우기 위해선 민관의 호흡이 중요하다. 한쪽이 너무 돋보이려다가 파열음을 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