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는 맥도날드 선호 안 해
버거킹, 공격적 확장과 신메뉴로 성공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살았던 김윤호(40)씨는 1988년의 3월을 기억한다. 가을에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봄에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맥도날드 1호 점포가 생겼다. 올해 여름은 뉴욕에서 온 수제 햄버거 ‘쉐이크쉑(Shake Shack)’ 때문에 대한민국이 난리라지만, 28년 전 맥도날드의 등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김씨는 “맥도날드가 문을 열자 햄버거를 먹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해 개점 1주일 후에 처음 갔다”며 “그때도 줄이 길어 1시간 가까이 기다린 다음에야 빅맥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때 처음 먹어본 빅맥에 대해선 “와 맛있다, 이게 본고장의 맛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구의 한 맥도날드 점포.

중학교 1학년이었던 김씨가 다니던 학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신사중학교. 맥도날드 1호점까지는 1.8㎞쯤 떨어져 있어 걸어 가기엔 다소 무리였다. 김씨는 “버스를 타고 4개 정거장만 가면 금방이었다”라며 “친구들과 가기도 하고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거를 포장해 와서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그랬던 맥도날드지만 외식 시장 트렌드가 변해 위기를 맞고 있다. 본사 직영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해오던 맥도날드는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가장 ‘핫한’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로데오거리에 있었던 맥도날드 1호점은 이미 2007년에 없어졌다. 이 자리엔 지금 SPA(패스트 패션)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매장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쉐이크쉑에서 보듯이 소비자 입맛은 여전히 햄버거를 원한다. 국내 햄버거 산업은 어떤 변화를 겪어왔을까.

맥도날드, 실적 부진에 매각 추진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햄버거 프랜차이즈는 맥도날드가 최초가 아니다. 이미 버거킹이 1984년에 진출했고 치킨 체인점이지만 한국에선 햄버거 인기가 더 많은 KFC도 같은 해 한국에 들어왔다. 일본에서 먼저 시작한 롯데리아는 그보다 빠른 1979년 한국에 첫 점포를 열었다. 하지만 맥도날드가 1988년 들어왔을 때 1시간을 기다려서야 빅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은 ‘햄버거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맥도날드는 한국 사업 매각까지 추진할 만큼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순이익은 지난 3년간 계속 감소해 지난해에는 134억원 적자를 냈다. 가맹점을 확대하는 전략으로 매출액은 늘었지만 점포당 매출액은 2013년 17억8000만원에서 지난해엔 16억3000만원으로 줄었다.
중저가 햄버거 시장에 국내 업체가 진출해 수익성이 악화된 게 원인이다. 지난해 가맹점을 300개나 늘린 맘스터치가 대표적이다.

맛과 양에서도 맥도날드는 경쟁업체보다 뒤처지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5개 패스트푸드점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2013년 12월 5일부터 이틀간 조사해 2014년 3월 발표한 ‘패스트푸드업체 서비스 만족도’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맛·양·위생상태를 종합한 ‘상품 품질’에서 5점 만점에 3.60점을 얻었다. 버거킹이 3.82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KFC와 파파이스가 맥도날드를 근소하게 앞섰다.

한국소비자원 2014년 발표

맥도날드 실적 부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맥도날드는 2분기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맥도날드 매출은 254억달러로 2년 전보다 10%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03억달러에서 89억달러로 14% 줄었다. 젊은층이 더 이상 맥도날드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4년 온라인 경제매체 마켓워치는 맥도날드의 주가 약세를 분석하면서 "젊은 세대들은 더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과 다양한 맞춤형 메뉴를 갖춘 체인점을 찾고 있다"고 했다.
중국 본토와 홍콩 맥도날드도 한국처럼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시장과 달리 한국을 포함한 북아시아에서 운영하는 맥도날드 매장 상당수는 본사에서 직영하고 있다. 맥도날드는 이 지역 매장 95%를 프랜차이즈로 전환하려 한다. 맥도날드 2015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맥도날드 점포는 총 3만6500개다. 이 가운데 82%가 프랜차이즈 매장이고 중국 본토와 홍콩, 한국은 46%가 프랜차이즈 매장이다.

경제전문잡지 은 맥도날드가 직영 체제를 프랜차이즈로 바꾸려는 것은 현지 업체와 경쟁이 격화되고 중국의 경우 식재료 안전성 문제가 불거져 이미지가 추락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직영보다 프랜차이즈는 인건비와 관리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직영점 부동산 투자 비용도 가맹점으로 전환하면 회수할 수 있다. 맥도날드 매각은 지분을 처분한 뒤 로열티로 수익을 얻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맥도날드 매각엔 CJ그룹과 NHN엔터테인먼트·KG그룹 컨소시엄이 뛰어들었다. NHN엔터는 KG그룹과 손잡고 맥도날드 매장에 간편결제 시스템을 정착하려는 목적에서 인수전에 뛰어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다만 중국과 한국 맥도날드를 묶어서 팔 것이라는 전망도 있어 매각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중국 맥도날드는 켐차이나(중국화공)와 신시왕그룹(新希望集團)이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켐차이나는 화학업종 국유 대기업이지만 1995년 설립한 마란 누들패스트푸드 체인 스토어를 통해 요식업에도 진출했다. 올해 2월엔 스위스의 세계적 농약회사 신젠타를 430억달러에 인수했다. 신시왕그룹은 1982년 베이징에서 설립된 농축산종합회사로 농산물, 유제품, 식품, 부동산 등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 버거킹, 공격적 확장과 신메뉴로 성공

맥도날드보다 4년 전 한국에 들어온 버거킹은 맥도날드보다 4년 먼저 매각됐다.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는 2012년 두산그룹의 SRS코리아가 갖고 있던 버거킹을 인수했다. VIG파트너스 밑에서 버거킹은 대성공을 거뒀고 올해 버거킹은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다시 매각됐다. 매각 가격은 2000억원대 수준으로 VIG파트너스는 3여년 만에 100%의 수익을 얻었다.

VIG파트너스는 버거킹 인수 후 점포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다양한 신메뉴를 출시했다. 과거 버거킹은 직영으로만 점포를 인수했지만 VIG파트너스는 가맹점을 모집해 짧은 기간에 점포를 많이 늘릴 수 있었다. 인수 당시 버거킹 매장은 131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엔 200개를 넘겼다. 또 배달 서비스를 도입했고 24시간 운영하는 점포도 확대했다.

버거킹 콰트로치즈와퍼(위)와 롯데리아 AZ버거(아래).

버거킹의 주력 메뉴는 ‘와퍼’다. 다른 햄버거보다 크고 불에 직접 구운 쇠고기 패티를 넣어 충성 고객이 많다. VIG파트너스는 신메뉴를 개발해 몇 개월간 기간 한정으로 판매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중 하나가 콰트로치즈와퍼다. 모차렐라, 아메리카, 파마산, 체다 등 4종류의 치즈가 들어간다. ‘콰트로’는 이탈리아어로 ‘4’를 뜻한다. 2013년에 기간 한정 메뉴로 출시됐다가 인기가 높자 2014년 2월 정식으로 메뉴에 이름을 올리고 판매되고 있다. 지난 5월까지 국내에 1200만개가 판매됐고 버거킹 본사가 있는 미국으로 역(逆)수출됐다. 또 중국, 태국, 필리핀 버거킹에도 수출됐고 중국에선 지금까지 선보인 기간 한정 메뉴 중 두 번째로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광고 모델로는 영화배우 이정재를 캐스팅해 브랜드 이미지도 높였다. 덕분에 버거킹 실적도 빠르게 개선됐다.

반면 매각 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패스트푸드업체도 있다. 버거킹처럼 두산이 갖고 있다가 2014년 유럽계 사모펀드 CVC캐피털에 매각된 KFC다. KFC의 2013년 영업이익은 115억원이었지만, CVC캐피털에 인수된 후 2014년엔 68억원, 지난해에는 11억원으로 급감했다.

KFC가 택한 방법은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18년 만의 가격 인하다. 이진무 KFC 대표는 7월 20일 서울 서림동 청계천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더 많은 고객이 KFC를 즐길 수 있도록 가격은 낮추고 메뉴 품질은 높여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KFC는 7월 1일부터 대표 메뉴인 징거버거 세트 가격을 6700원에서 5500원으로 18% 내렸다. 타워버거 세트는 7400원에서 6300원으로, 치킨 9조각과 칠리소스 2개 등이 들어 있는 점보치킨버켓은 1만9800원에서 1만7500원으로 주요 인기 메뉴 대부분의 가격이 인하됐다. 또 햄버거와 치킨, 음료 등 5가지 메뉴를 한 번에 즐기는 ‘KFC 매직박스’를 4900원에 판매한다.

심지어 이달 4일엔 국내 일반 치킨업체와 경쟁하기 위해 한국인 입맛에 맞춘 양념치킨을 선보였다. 이날 발표한 ‘KFC 순살치킨’은 양념소스를 더해 매콤 달콤한 ‘크리스피 양념 순살 치킨’과 담백하고 짭짤한 ‘크리스피 순살 치킨’ 두 가지가 있다.

◆ 맘스터치, 1년 만에 점포 266개 확장

최근 햄버거 시장에선 국내 업체 맘스터치가 빠르게 점포를 확장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수제 햄버거 전문점’이라는 이미지가 강점이다.

맘스터치 브랜드를 갖고 있는 해마로푸드서비스의 정현식 대표는 지난 2004년 대한제당 자회사 ‘TS해마로(현 TS푸드앤시스템)’ 상무였다. 1994년 파파이스를 국내에 들여와 사업을 벌이던 회사였다. 정 대표는 1997년 설립됐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적자를 내던 맘스터치를 인수해 독립했다. 주로 치킨을 판매하지만 햄버거가 입소문을 타며 2013년쯤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표 메뉴 싸이버거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두껍다는 의미에서 ‘입찢버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미리 만들어두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치킨을 튀기고 햄버거를 만드는 방식으로 다른 패스트푸드 업체와 차별화했다.

사쿠라다 아쓰시(櫻田厚·61) 일본 모스버거 대표가 2012년 4월 4일 서울 서초동 매장에서 간판 메뉴를 소개하고 있다.

맘스터치보다 앞서 국내 토종 브랜드 중에서 성공을 거둔 햄버거 업체는 크라제버거다. 2000년대 초반 ‘프리미엄 햄버거’를 내세우며 등장했고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서울 압구정과 청담동 등 임대료가 비싼 지역에 점포를 냈다. 2000년대 후반 전성기를 맞았으나 해외 진출 매장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고 무리한 확장으로 위기에 몰렸다. 크라제버거를 운영하는 크라제인터내셔날은 현재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고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크라제버거는 쓰러졌지만 수제 버거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미국 동부에 쉐이크쉑이 있다면 서부엔 인앤아웃(In-N-Out)버거가 있다. 1948년 캘리포니아에서 창업한 인앤아웃버거는 신선한 재료를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는 미국 서부에서만 주로 점포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2년 3월 21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오전 11시부터 4시간 팝업스토어가 열렸을 때 줄이 길게 늘어서 일대에 교통 혼잡이 발생하기도 했다. 웰빙 트렌드에 어울리는 브랜드다.

이런 전략은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맥도날드도 채택했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8월 ‘시그니처(Signature) 버거’를 선보였다. 고객이 직접 20가지 식재료 가운데 원하는 번(bun·햄버거 빵)과 치즈, 토핑과 야채, 소스를 고를 수 있는 프리미엄 수제 버거 메뉴다. 대형 터치스크린에서 식재료를 골라 주문하면 조리를 해 점원이 자리로 버거를 갖고 온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하고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는 롯데리아도 이런 대열에 합류했다. ‘아재버거’라고 불리는 AZ버거다. 좋은 재료와 맛을 A부터 Z까지 모두 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시작하는 수제버거 타입의 햄버거다.

다만 수제버거 콘셉트라도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 유명 햄버거 체인 모스버거는 일본 여행객이 반드시 들러서 먹고 와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인 사이에서 유명했다. 그러나 2011년 진출 후 5년이 지났지만 점포가 10여개에 불과할 정도로 반응이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