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가업상속공제 범위 확대되면서 '부 세습' 수단으로 악용"
vs 새누리 "기업 성장 회피하는 '피터팬 증후군' 확대될 수도"

경기도에 위치한 연매출 4000억원의 중견기업 A사 대표 김모씨는 조만간 사업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은퇴할 때가 다가와 자식에게 가업(家業)을 물려주려고 하는데 상속세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회사를 함께 키워온 아들이 전문 경영인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성장시킬 것으로 확신하지만, 지금 회사를 물려주면 상속세 부담이 커 승계가 어렵다”며 “상속세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기준(매출액 3000억원)으로 기업 사이즈를 줄이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매출 규모를 좀 줄이더라도, 탄탄한 중소기업을 물려줘 자식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며 “현재 제품 생산은 해외 공장에서 담당하고 연구개발(R&D) 투자는 국내 본사가 담당하는데, R&D를 해외로 전환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사와 처지가 비슷한 중견기업들이 가업상속세 부담 완화를 요구하는 가운데 국회에서 가업상속세 공제 적용 대상 기업을 축소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규모가 큰 기업에까지 과도한 상속세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인데, 재계와 여당에서는 공제 범위를 축소하면 기업 성장과 투자,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꾸준히 확대된 가업상속공제…野 ‘세금 없는 富 세습’ 악용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김현미, 김정우 의원과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 등 11명의 의원은 9일 기업상속공제 대상을 현행 매출액 3000억원 이하 기업에서 매출액 2000억원 이하 기업으로 축소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법 개정안에는 사업용 자산 전체(100%)인 현행 상속세 공제율도 70%로 낮추고, 공제금액 한도 역시 200억~500억원(경영 기간에 따라 차등)에서 100억~300억원으로 축소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가업상속공제란 최소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한 중소, 중견기업 오너가 자식 등 상속인에게 기업을 물려줄 때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2007년 처음 도입된 이후 공제 대상과 한도가 꾸준히 확대됐다. 특히 지난 2014년부터는 법 개정에 따라 공제 대상이 기존 매출 2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확대되고, 공제액과 공제율도 각각 최고 500억원, 물려주는 자산의 100%로 늘었다. 가업을 물려주며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 강동구 동명대장간에서 3대째 가업을 물려 받은 아들 강단호(왼쪽)가 아버지 강영길씨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적용 대상 기업을 지금보다 더 확대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토론에 나섰던 김관영 의원은 “기업상속공제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은 상속세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세금을 깎아주는 방법으로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공제 대상이 확대돼 온 추세에 대해 야당은 이 제도가 부의 세습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이번에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광온 의원은 “당초 가업상속공제는 가업의 유지 발전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도입됐지만, 수백억원의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과정에서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이 발생했다”며 “요건을 강화해 과도한 공제를 제한하고 세수 증가와 과세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법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 가업상속공제 축소하면 기업 ‘피터팬 증후군’ 우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축소할 경우 기업이 인위적으로 성장을 멈추는 ‘피터팬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 규모가 커지면 상속세 부담도 함께 커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기업이 성장을 회피하거나 투자나 고용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재진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국은 가업상속 지원 대상을 기업 규모로 차별하지 않는다”며 “특히 매출액으로 적용 대상을 제한할 경우 인위적인 기업 분할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고, 이 기준이 가업승계를 앞둔 기업에 현실적인 성장 한계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지금과 같이 공제 기준을 매출 규모로 기준을 정하면 기업은 그 기준을 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기업 성장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며 “해당 기업의 사회적 기여, 후계자의 역량수준 등을 평가해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선정하고, 이중 주식 외에는 가업상속세를 납부할 방법이 없는 경우 등에 한해 가업상속공제를 해주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가업상속공제가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도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주장이 있다. 현행법에는 상속 후 10년 동안 자산과 가업, 지분, 고용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후관리요건이 명시돼있다.

◆ 與 반대, 국민의당은 “검토해보자”…법 논의 탄력 받을 듯

여당인 새누리당은 공제 범위를 축소하는 것은 기업 성장에 독(毒)이 된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 위원장인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은 “중견기업의 경우 매출 1조원 정도로 성장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상속세 부담이 과중해지면 기업의 성장이 정체된다”며 “경제를 키우고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업상속공제 축소를 논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3당인 국민의당은 이번에 발의된 법안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9대 국회에서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을 무산시킨 김관영 의원은 "가업상속공제의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그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 찬성한다"면서도 "가업을 승계 받은 경영인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는 경우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업상속세를 10년 이상 장기간 분할 납부하도록 하고, 이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면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 정책위 관계자는 “가업상속제 등을 포한한 상속증여세 체계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다”면서 “가업상속제는 적용대상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공제조건을 강화하는 방안과 적용대상을 축소하면서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방안 모두 열어놓고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