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의 아파트 견본주택 밀집지 일대. 지난해 전국에서 주택시장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곳이라 모델하우스 실내에는 청약 문의를 하는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견본주택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날 견본주택을 찾은 고진모(48) 씨는 “분양 관계자들은 삼성전자 고덕 반도체 사업장 덕에 향후 프리미엄(웃돈)이 붙을테니 꼭 분양을 받으라고 하는데, 평택 사람들은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을 많이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비전 사거리에 위치한 모델하우스 거리 일대.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아 한산했다.

비전 사거리 주변에는 GS건설의 ‘자이더익스프레스3차’를 비롯해 포스코건설의 ‘소사벌 더샵’, 현대산업개발의 ‘비전 아이파크’ 등 주요 건설사가 선보인 아파트 견본주택 5곳이 붙어 있다.

하지만 견본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 분양 관계자들도 한가해 보였다. 심지어 한 아파트 분양 관계자는 기자에게 “오늘 사람도 없는데 제발 와서 설명이라도 들어달라”고 했다. 다른 견본주택 직원도 단지 광고가 새겨진 물티슈를 사은품으로 나눠주며 언제든지 다시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다.

건설사들이 “3대 호재(미군 기지 이전·고속철도 SRT 개통·삼성전자 고덕 반도체 사업장 신설)라 분양 열기가 뜨겁다”고 광고한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소사벌 더샵’ 모델하우스 내부. 상담을 받는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 평택 미분양 한달새 2.4배 급증

평택의 경우 지난해 1만2137가구, 올해 2만1677가구 등 짧은 시간에 3만가구 넘는 물량이 공급됐다. 경기도 주택정책과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평택에 공급될 물량도 총 1만3383가구에 이른다. 2015~2019년 사이에 4만7197가구가 쏟아지는 셈인데, 이는 위례신도시 계획가구(4만3419가구)보다 큰 큐모다.

지난해와 올해 건설사들은 2017년 가동이 예정된 삼성전자 고덕 반도체 ​사업장 신설, 수서발 고속철도(SRT)​ 개통, 미군 기지 이전 등 이른바 평택의 ‘3대 호재’를 업고 이 지역에 공급 물량을 대거 쏟아냈다. 문제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물량이 풀리면서 ‘소화불량’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도청 주택정책과가 발표한 6월 통계를 보면 평택의 6월 미분양 가구 수는 2969건을 기록해 전달보다 1730건이 늘었다. 미분양 수가 불과 한 달 만에 2.39배 증가했다.

특히 소사2지구 ‘효성해링턴플레이스' 등 올해 5월에 공급된 2000가구 이상 대형 단지의 청약 실패 탓이 컸다. 이 아파트는 총 3240가구가 공급됐는데, 6월 말 기준으로 미분양 가구수는 1898가구에 이른다. 평택의 6월 미분양 증가분(1730가구)을 넘어서는 수치다.

분양이 끝나 공사가 진행 중인 GS건설의 ‘자이더익스프레스 1,2차 현장. 3차 현장은 땅 고르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수요 없는 평택 주택시장

전문가들은 “평택 주택시장 열기가 급격하게 식은 건 급격하게 늘어난 공급을 수요가 받쳐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호재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당장 수요가 없기 때문에 미분양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택 부동산 관계자들은 “5년 안에 평택시 인구가 90만명까지 증가한다는 평택시의 예상도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신설로 인구가 유입되는 것은 맞지만, 이로 인한 신도시 주택 수요는 과대 평가됐다고 지적한다. 이미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이 들어서는 고덕지구 안에서도 공급량이 충분하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문미애 평택자이공인 대표는 “고덕지구에 주거지가 완성되기 전까지 평택 시내에 들어서는 단지들은 어느 정도 분양이 되겠지만, 고덕지구가 완성되면 추후 사람들이 거주지를 옮기면서 다른 택지지구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 기지 이전에 따른 주택수요도 과대평가 됐다는 지적이 있다. 용산, 의정부에 있는 미군 기지가 평택 안정리로 옮겨오지만, 평택 시내 아파트 수요는 적을 것이란 전망이다.

안정리 미군 부대 앞 평택119부동산 대재현 공인중개사는 “안정리에서 평택 시내까지 차로 30분 이상 걸릴 정도로 멀어서 평택 시내에서 집을 알아보는 미군은 그리 없을 것”이라며 “게다가 안정리 근처에 이미 주택이나 빌라가 많이 공급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안정리 미군 부대 앞 K-6 정류장은 ‘효성 해링턴 플레이스’가 있는 소사2지구와 12km 정도 떨어져 있다.

지제역 SRT 개통에 따른 수혜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고덕국제신도시 중심가와 소사지구가 지제역과 각각 7km 이상 떨어져 있어 SRT가 개통된다고 해도 이용이 불편해 SRT를 보고 청약할 수요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는 분석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은 “지제역 SRT의 빨대효과(고속철도나 고속도로 개통으로 인한 대도시 집중 현상)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며 “천안과 아산의 사례를 봐도 문화 생활 면에서 구매력이 서울로 옮겨갔었다”고 말했다.

고분양가에 투자 수요도 시들

평택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들은 “지금 입주한 가구들은 그나마 분양가라도 저렴할 때 집을 샀으니 사정이 낫다"고 말했다.

현재 입주한 단지들이 2013년 공급될 당시 분양가는 3.3㎡당 700만원 후반에서 800만원 초반대였다. 현재 공급된 미분양 단지의 분양가는 800만원 초중반에서 900만원대다. 3.3㎡당 100만원 넘게 분양가가 올랐다.

소사지구에 입주예정인 ‘효성해링턴플레이스 모델하우스에 마련된 단지 모형도.

전문가들은 분양가가 계속 오르면서 투자 매력이 줄어 수요가 꺾이면, 예정된 공급 물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평택 호재를 보고 들어왔던 투자자들이 공급과잉으로 분위기가 바뀌자 시장에서 빠지는 분위기"라며 “중도금 대출 규제 등 투자 수요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많아진 것도 평택 주택시장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어 내년까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은 “평택의 문제점은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라며 “고덕국제신도시와 미군 부대 이전이라는 호재가 과대평가 된 감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평택시는 분양을 신청한 단지를 대상으로 예정대로 인허가를 낼 계획이다. 소중영 평택시청 주택팀 과장은 “평택시 주택공급률은 이미 120%대를 넘겼지만, 여전히 투자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는 유지영 윤민혁 이다비 최문혁 기자가 참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