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부 김문관 기자

‘몇 년이 지나서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에,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 전 어느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일이 생각났다.’

시작과 끝, 실타래처럼 얽힌 운명을 다룬 남미 소설 ‘백년의 고독(Cien anos de soledad-스페인어)’ 의 첫 문장입니다. 지난해 10월 남미를 여행했던 기자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있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문화관’을 둘러보며 오래전 헤어진 옛 친구와 그가 사랑하던,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이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마르케스 문화관은 콜롬비아는 물론 라틴아메리카가 자랑하는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를 기념하는 공간입니다. 이 곳은 대형서점과 카페가 있고 위로 오르면 소담한 몬세라테 산이 보이는 아늑한 장소입니다. 연인들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기에 딱 좋은 장소죠.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마르케스 문화관

마르케스는 지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의 언론인이자 소설가입니다. 그는 천수를 누리고 지난 2014년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국내 일부 일간지에도 그에 대한 칼럼이 실렸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는 1966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 18개월 동안 칩거하면서 매일 8시간씩 집필에 매달린 끝에 ‘백년의 고독’의 마지막 구절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책은 이듬해 6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다메리카나’ 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죠.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마르케스 문화관

감수성이 풍부했던 저의 이십대 시절. 경애하던 친구의 추천으로 단숨에 읽고, 1년 후에 또 읽고, 2년 후에 다시 읽고, 10년 후에도 읽고, 18년후엔 머나먼 콜롬비아까지 기자를 이끈 소설입니다. 제가 어릴 땐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읽었고, 나중엔 '백년의 고독'으로 발표된 새번역을 읽었습니다.

백년의 고독 새번역 표지

저는 그 친구와 이 소설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았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낯간지럽게’ 적자면 보다 더 고독해지고 더 자유로워졌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한 가문의 역사를 담은 작은 규모의 대하소설입니다. 일백년, 일곱대(代)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은 숙명적 고독을 타고 났습니다. ‘가문의 첫사람은 나무에 매달려 죽고 가문의 마지막 사람은 개미밥이 된다.’ 이 같은 소설 속 문장처럼 예언적이고 숙명적입니다.

소설의 문체는 한 줄 한 줄 엄청나게 긴 게 특징입니다.

특히 작품에선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환상적인 사건에 대한 묘사가 이어집니다. 죽음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살아나고, 유령과 대화하며, 돼지꼬리를 단 아이가 태어나기도 하죠.

부엔디아 가문의 숙명적인 고독은 답답한 현실로부터 저를 도망칠 수 있게 했고, 뭐든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비겁한 용감함’도 심어줬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걸작에는 라틴아메리카의 슬픈 역사와 현실을 담겨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항상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용어가 뒤따릅니다. 작년 마르케스 문화관에서 스페인어 원서를 한 권 구입했습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마르케스 문화관에 전시된 백년의 고독 원서(왼쪽)과 마르케스 사진집. 사진집에 써있는 가보(GABO)는 마르케스의 애칭이다

제게 이 ‘보물’을 권했던 친구의 생기넘치던 미소를 기억하며 이 소설의 기나긴 마지막 문장을 적어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 행에 도달하기 전에 자신이 그 방에서 절대로 나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이해했었는데, 그것은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양피지의 해독을 마친 순간 거울의 도시는 바람에 의해 부서질 것이고,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버릴 것이고, 또 백년의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가문들은 이 지상에서 두번째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양피지들에 적혀 있는 모든 것은 영원한 과거로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반복되지 않는다고 예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자는 이 소설을 읽고 작가의 직업을 따라 기자가 됐습니다. 일상에 지친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마르케스 문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