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부 고성민 기자

불안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고용도 불안하고 주거도 불안하고 연애와 결혼도 불안합니다. 때문에 칼 융 학파 이론가들은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원형(archetype)에 자아의 어두운 측면인 그림자(불안감)가 침투하면 다양한 형태로 원형이 변한다고 얘기합니다. 가령 자각과 통찰력의 근원인 ‘마술사(Magician)’ 원형은 불안사회 속에서 사기꾼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기운을 북돋고 동기를 부여하는 ‘전사(Warrior)’ 원형은 폭행범이 된다는 것이죠.

불안은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도 엄습하고 있나 봅니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을 그린 로맹 모네리의 ‘낮잠형 인간’이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끌더니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이름 없는 주인공은 대학원 석사학위까지 받았지만 직장이 없고, 친구 4명이 집을 나눠 쓰는 29세 미혼 프랑스인입니다. “이 시대는 벽으로 돌진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전진만을 강요”한다는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이죠.

브뤼노, 스테파니와 같이 주인공 친구들의 이름이 나오는 반면 그의 이름은 책을 덮을 때까지 알 수 없다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누구나 그일 수 있다는 뜻이겠죠. 사실 학부 시절 서점에서 이 책을 꺼내 들게 된 것도 친구 때문입니다. “너 같은 사람이 책에 나오더라”면서 말이죠. 제가 한량같이 보였는지 불안해 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덕분에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면서 마음속 불안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낮잠형 인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입니다.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얼핏 한량 같습니다. 노동의 목표는 실업수당입니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가로 그는 실업수당과 함께 석 달 동안 1000시간에 달하는 잠을 자면서 500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보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얻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형 인간도 저녁형 인간도 아닌 낮잠형 인간입니다. (사실 프랑스판 원제목은 낮잠형 인간이 아닌 ‘Libre, seul et assoupi’입니다. 직역하면 ‘자유로운, 외로운 그리고 졸린’이라는 뜻)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대신 그의 전쟁은 내면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꼭 무언가를 해야 할까? 성장하지 않으면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일까? 야망이 없는 나는 비정상일까?’와 같은 고민입니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272번 자문했다는 그는 한 회사에 취업해 아침형 인간으로 탈바꿈합니다. 그곳에서 세일즈왕까지 등극하지만,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는지 또 다른 불안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로맹 모네리의 ‘낮잠형 인간’(왼쪽)과 ‘상어 뛰어넘기’(오른쪽)

작가 로맹 모네리는 독자가 첫 페이지를 열고 마침표를 읽을 때까지 쉴 틈을 주지 않고 독자를 책 속으로 빨아들입니다. 책이 담고 있는 묵직한 주제의식과 달리 때론 능청스럽고 때론 톡톡 튀는 문장으로 독자를 유혹한 덕분입니다. 뜨겁게 책장을 넘기면서 속 시원한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은 로맹 모네리의 첫 작품인데, 만만찮은 매력을 가진 두 번째 작품인 ‘상어 뛰어넘기’도 서점에서 조선비즈 독자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낮잠형 인간의 매력에 빠져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