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 문화부장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신하들에게 한 달여 간의 독서 휴가를 주어 이를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라 했습니다. 세종대왕도 집현전의 젊은 신하들을 불러 ‘사가독서'를 명했는데, 이는 출근하지 말고 아침 저녁으로 독서에 전념하여 왕의 뜻에 맞는 성과를 내라는 어명이었지요.

독서라는 것이 몸과 마음을 전혀 다른 세계로 데려다 놓는 완전한 리프레시일 수도 있고, ‘사가독서'처럼 목적한 바가 분명한 맹렬한 자기 계발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시간에 멱살 잡혀 끌려다니는 직장인들은 누군가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이나 ‘사가독서'를 명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여름 휴가철입니다. 휴가는 ‘작전 타임'이고, 휴가를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은 제대로 쓰는 사람보다 승진하거나 보너스를 받은 사례가 6.5% 적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휴가철에 자발적으로 ‘셰익스피어 배케이션'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작정하고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 기념 작품으로 출시된 ‘세계를 향한 의지'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세계를 향한 의지'는 언어 이외에는 사적인 자취를 절제했던 미스터리한 직업 작가 셰익스피어를 파헤친 한 전기 작가의 위대하고도 집요한 스토킹 기록입니다.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우아한 시로 바꿔 읊는, 제왕이나 걸인이나 공정하게 비참하게 그려냈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뿐 아니라, 34년간 결혼 생활을 했던 아내에게 한 푼의 유산도 남겨주지 않았던 ‘뒤끝 작렬' 인간 셰익스피어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스티븐 그린 블렛의 ‘세계를 향한 의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혹은 거실 소파 위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뒹굴 읽기에는 역시나 에세이가 좋습니다. 일터를 떠나왔으나 항상 일터로의 복귀를 염두에 두는 사람이라면, 근본적으로 자기 일을 돌아볼 수 있는 에세이 두 권을 권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 스스로 감독하고 노동하는 예술가든, 회사의 지엄한 명령을 따르는 회사 인간이든, 내가 왜 이 일을 하며, 직업인으로서 나는 대체 어떤 부류의 인간인가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에세이를 ‘맥주회사에서 만든 우롱차’같다고 눙치며, 중요한 일을 별것 아닌 것처럼 뒤로 빼며 서술하는 하루키의 ‘수줍은 아저씨' 문체와 사소한 행위조차 암석에서 공룡 뼈 발굴하듯 대대적으로 기술하는 알랭 드 보통의 ‘현학적인 탐정' 문체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혼자만 가고 싶은 단골집은 마지막에 못 이기는 척 발설하듯, 사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내 인생의 책'은 두 권입니다.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와 미국의 정신과 의사 M. 스캇 펙이 쓴 ‘아직도 가야 할 길'.

조지 오웰은 표제작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잘난 척 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과 정치적 목적'에서 글을 쓴다고 고백합니다. 실로 정교하고 정직해서 돌판에 십계명 새기듯 가슴에 새기고 싶은 글입니다. 드라이한 관찰형 르포 ‘교수형'이나 낭만적인 술집 허풍담 ‘물속의 달'도 필사의 유혹이 들 정도로 매혹적이지만, 무엇보다 톨스토이가 셰익스피어를 비난하는 팸플릿의 글을 조지 오웰이 다시 비꼰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는 우울할 때 읽으면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진정 ‘악당 같은' 글입니다.

마지막으로 스캇 펙의 정신분석 명저인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삶'이란 오랜 생존 게임에 지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적인 휴가'를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추천한 몇 권의 책이 제 삶에 영감을 주었듯 여러분의 삶에도 그러하길! 모두, 해피 배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