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최대 기업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명예회장은 2012년 말 75세로 정년 퇴임했다. 그는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자동차와 철강, 정보기술(IT) 등을 집중 육성해 인도 최대 그룹 입지를 더욱 탄탄히 했다.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를 인도는 물론 세계 최대 IT서비스 기업 가운데 하나로 키운 것도 그였고, 적자에 허덕이던 철강회사 타타스틸을 알짜배기 세계적 철강업체로 떠오르게 한 사람도 그다.

2008년 10월 라탄 타타 당시 타타그룹 회장이 뉴델리에서 열린 오토 엑스포에서 타타자동차의 최저가 승용차 ‘나노’ 옆에 서 있다.

라탄 타타 회장은 2004년 한국의 대우상용차를 인수해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세계적 차(茶) 메이커 테틀리와 영국 최대 철강기업 코러스를 인수하는 등 세계적으로 눈길을 끈 대형 인수합병(M&A)도 성사시켰다. 2008년 5월에는 미국 포드자동차로부터 랜드로버와 재규어 부문을 인수하는 등 타타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평생 독신 살며 사회공헌에도 몰두

라탄 타타 명예회장은 인도 최대 그룹의 회장이지만 그의 재산은 수백억원 정도로 평가된다. 타타가문이 소유한 지분도 지주회사 타타선스의 1%인 3억3000만달러다. 오너가 많은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인도 기업과 다른 점이다. 타타그룹이 사회적 책임에 철저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라탄 타타 회장은 1937년 12월 파르시(조로아스터교) 출신 창업주 잠셋지 타타의 증손자로 태어났다. 뭄바이 타지마할호텔 인근의 궁궐과 같은 대저택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다닐 땐 운전기사가 롤스로이스 차량으로 등하교를 시켜 줬다. 그러나 라탄 타타 회장은 상류생활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편으론 부끄러워했다. 부유함을 드러내는 사치스런 생활도 싫어했다.

지금도 그는 시간이 나면 뭄바이 집 주변 바닷가에서 산책하는 단순한 생활을 즐긴다.
뭄바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건축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 코넬대로 유학을 떠났다. 인도 재벌 집안이었지만 미국 유학생활은 여유로운 편이 아니었다. 접시닦기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다. 당시엔 인도 정부가 외환 송금을 규제해 돈을 받을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미국에 남아 건축가의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1962년 할머니가 위독해 급거 귀국했고 타타스틸에 첫 발령을 받는다. 철강 생산 현장에서 그는 철광석을 나르고 뜨거운 용광로를 관리하는 등 철강 노동자와 똑같이 일했다.

자동차를 핵심 사업으로 육성

라탄 타타 회장은 1971년부터 본격적인 경영의 길로 들어선다. 타타그룹 자회사인 가전업체 넬코와 섬유업체 엠프레스 밀스의 경영을 맡으면서다. 그는 1991년 타타그룹의 새 회장으로 지명됐는데, 이 해는 인도가 세계를 향해 문을 연 해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 시장에 들어오자 수십년간 규제와 보호막 속에 있던 인도 기업들은 갑자기 경쟁의 바다에 던져졌다. 타타그룹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다.

라탄 타타 회장은 타타그룹을 크게 변모시켰다. 시멘트, 의학, 섬유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과감히 내다 팔았다. 대신 자동차와 철강 등 핵심사업에 집중했다.

초저가 자동차 ‘나노’ 프로젝트도 라탄 타타 회장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의 결실이다. 그는 복잡한 길거리에서 오토바이 한 대에 아빠, 엄마, 아이 둘 등 온 가족이 타고 가는 위험한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라탄 타타 회장은 이들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값이 싼 차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고 불가능하다는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이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