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계 석유 투자 회사 하노칼이 전격적으로 ISD를 취하했다. 하노칼은 UAE 국부펀드인 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가 네덜란드에 세운 자회사이며, 국내에 만수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부호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사진〉'이 소유한 회사다. 하노칼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한 양도 차익에 대해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 2400여억원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다가 국내 법원에서 패소하자, 지난해 5월 ISD를 제기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중이었다.

27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ISD를 심리하는 국제기구인 국제투자분쟁기구(ICSID)는 이날 오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에 "하노칼이 한국을 상대로 낸 ISD를 취하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1년 2개월째 하노칼과 진행 중인 ISD 분쟁이 끝나는 절차를 밟게 됐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 대상 국가의 법령이나 제도에 의해 피해를 보았을 때 국제 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하노칼 측이 ISD를 취하하는 이유를 ICSID에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하노칼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중간에 포기한 것으로 추측했다. 정부 관계자는 "하노칼이 승리한다면 이미 한국에 납부한 2400억원대 세금에 가산 이자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데도 중간에 그만뒀다는 것은 그만큼 이길 확률이 낮다고 본 것"이라며 "우리 정부의 승리라고 봐도 좋다"고 했다.

ISD를 제기하면 판결이 나오기까지 3~4년은 걸린다. 그래서 도중에 양측이 한발씩 양보해 일부를 배상하는 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아 조정으로 소송을 끝내는 경우도 있다. 하노칼이 조정을 시도하지도 않은 채 갑자기 소송을 취하한 것은 이길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국제 중재 전문가들은 말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하노칼의 소송 취하로 한국 정부의 과세 원칙에 대해 국제 신인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우리 정부도 소송 대응에 필요한 비용 수백억원을 아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노칼의 소송 취하에 따라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ISD 3건 중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사건과 이란 가전 회사 엔텍합이 대우일렉트로닉스(현 동부대우전자)를 인수하려다 계약이 파기돼 발생한 분쟁 등 두 건만 남게 됐다. 이 가운데 론스타 사건은 하노칼 사건과 쟁점 구조가 같다는 점에서 정부는 하노칼의 소송 취하를 반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 정부와 면세 협정을 맺은 제3국에 자회사를 만든 뒤 국내 기업 주식을 매매한 수익에 대한 과세 여부를 놓고 다툰다는 점에서 하노칼과 론스타 건이 얼개가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