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이이이잉’

무인항공기(드론)의 각 모서리에 달린 프로펠러 4개가 빠르게 돌기 시작하자 굉음이 발생했다. 실내여서 그런지 소리는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매장 곳곳에 흩어져 제품을 구경하던 방문객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드론을 조종하던 직원이 레버를 만지자 공중에 떠있던 드론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강풍을 날렸다.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바람이다.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이 확 갈라질 정도의 바람 세기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지난 7월 14일 중국 동남부 광둥성(廣東省) 선전(深圳)에 위치한 ‘DJI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했다. DJI는 민간용 드론 시장의 약 70%를 장악하고 있는 세계 최대 드론 제조사다. 왕타오(王濤·36) 최고경영자(CEO)가 2006년 선전에서 설립한 DJI는 출범 10년 만에 기업가치 100억달러(약 11조3390억원)인 회사로 성장했다. DJI의 매출액은 2012년 2600만달러(약 295억원)에서 지난해 10억달러(약 1조1339억원)로 치솟았다.

(위)중국 선전에 있는 DJI 플래그십 스토어의 외부 모습. (아래)한 남성 고객이 선전 DJI 플래그십 스토어에 방문해 전시된 드론을 구경하고 있다.

◆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DJI 기술력 집결지

선전에 있는 DJI 플래그십 스토어는 2015년 12월 문을 열었다. DJI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정식으로 세운 건 이곳이 처음이다. 2호점은 서울 홍대 어울마당로에 있다. 선전 플래그십 스토어의 외관은 언뜻 보면 피라미드를 닮았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구쪽 외벽의 상당 부분은 유리로 덮여있다. 매장을 찾은 몇몇 방문객들이 DJI 로고가 박힌 건물 정면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매장으로 들어서면 800제곱미터 규모의 탁 트인 내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안쪽에는 시연 공간(플라잉존), 영상 상영관, 액세서리 판매점, 라운지 등이 있다. 층고가 높아 입구 쪽에 있는 플라잉존의 규모도 크다. 이 안에서 드론을 날리면 꽤 높은 위치까지 비행할 수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 내부는 중국어로 ‘둥글다’는 뜻을 지닌 ‘원(圆)’ 모양을 참고해 디자인됐다. 현장에서 만난 DJI 직원은 “드론 프로펠러가 원형으로 도는 모양을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DJI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단연 플라잉존이다. 이날 매장에 머무는 동안 DJI 측은 드론 2대를 시범 비행했다. 짧은 헤어스타일의 남성 직원이 먼저 시연한 제품은 최신형 모델인 ‘팬텀4’였다. 하얀색의 팬텀4는 무게가 1380g에 불과하다. 중국이 지난 2013년 발표한 ‘민간용 드론 조종사 관리 규정’에 따르면 중량 7kg 이하에 비행범위가 반경 500m 이내, 비행고도 120m 이하인 드론은 별도의 면허 없이도 조종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팬텀4의 소비자 가격은 200만원 정도다.

(위)선전 DJI 플래그십 스토어의 내부 풍경. (아래)가지런히 진열된 DJI 팬텀 시리즈의 모습.

팬텀4 하단부에는 카메라와 2개의 ‘원(센서)’이 탑재돼 있다. 2개의 원은 고도 10m 이내에서 작동하는 ‘비전 포지셔닝(vision positioning)’ 센서다. 드론을 공중에 가만히 떠있게 하는 호버링(hovering)을 돕는다. DJI 직원이 조종기 위에 애플 아이패드를 장착하고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DJI 고(GO)’를 실행하자 드론에 달린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이 아이패드 화면에 나타났다. 이 직원은 “조종기의 오른쪽 레버는 방향을, 왼쪽 레버는 고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 뒤 직접 조종 시범을 보였다.

DJI 직원이 두 번째로 시범 비행한 제품은 고가 모델인 ‘인스파이어1’이었다. 팬텀4보다 크기 때문에 프로펠러가 내뿜는 바람의 강도도 셌다. 조종을 맡은 직원이 이따금씩 인스파이어1의 하단부가 보이게끔 기기를 공중에서 눕혔는데, 그때마다 땅바닥을 때려야 할 강풍이 구경하는 사람들의 안면을 강타했다. 공장 등에서 쓰는 대형 선풍기 바람을 맞는 기분이 들었다.

인스파이어1의 장점은 항공 영상 촬영이 가능한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했다는 점이다. DJI 직원이 인스파이어1을 호버링 상태에 놓은 다음 매장 방문객들을 360도로 촬영하자 아이패드를 통해 개개인의 얼굴이 상세하게 나타났다. DJI는 최근 자사의 첫 번째 항공 촬영용 일체형 카메라 ‘젠뮤즈 Z3’를 출시하기도 했다. 폴 팬 DJI 수석 매니저는 “젠뮤즈 Z3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항공 카메라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열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아이디어가 곧바로 시제품으로…선전 주택서 DJI 일군 왕타오

DJI는 선전을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소개하는 글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공 기업 사례다. 선전에서는 DJI 외에도 화웨이, 텐센트, ZTE, 비야디(BYD), 오포 등의 기업이 탄생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8.5명당 1명이 창업에 뛰어들 정도로 선전의 창업 열기는 뜨겁다. 전문가들은 DJI의 성공 역시 창업자 왕타오의 노력과 선전의 탄탄한 창업 지원 인프라가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분석한다.

선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정보기술(IT) 제조 기지다. 선전에 있는 화창베이(华强北)의 경우 전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부품 상가 밀집지역으로 통한다. 본사 근무자 1500여명 가운데 70%가 연구개발(R&D) 인력일 정도로 기술력에 집착하는 DJI로서는 아이디어를 시제품으로 빠르게 구체화할 수 있는 선전이 최상의 창업 환경이다.

실제로 지난 16일 방문한 화창베이에는 드론 부품 개발사와 판매점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제2의 DJI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드론 부품 또는 완제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이번 탐방에서 현지 안내를 맡은 송안창(38)씨는 “DJI 제품과 비교하면 당연히 좀 부실하지만, 화창베이에서 개발된 저가 드론도 제법 잘 날아간다”면서 “관련 부품이 계속 싸지다보니 100위안(약 1만7000원)짜리 초저가 드론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위) DJI의 창업자인 왕타오 최고경영자. (아래) 선전 DJI 플래그십 스토어에 전시된 인스파이어 모델들.

DJI 창업자인 왕타오 CEO는 홍콩과학기술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4학년 때 ‘헬기 제어 시스템 설계’ 조별 과제를 수행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왕타오 CEO는 2006년 대학원 동료 2명과 함께 홍콩 인근 선전의 한 주택에서 DJI를 설립했다. DJI의 첫 투자자는 200만위안(약 3억4000만원)을 투자한 왕타오의 대학원 교수 리저샹(李澤湘)이었다.

DJI 설립 초기에는 비행체에 카메라를 연결하는 기구인 ‘짐벌’ 개발에 주력했다. 짐벌은 비행체의 흔들림에 관계없이 카메라의 기울기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재 DJI는 짐벌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DJI가 본격적으로 드론을 출시한 건 2008년부터다. 그러나 매출은 한 동안 지지부진했다. 제대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기체 하단부에 카메라가 달린 팬텀 시리즈를 내놓은 2013년부터다. 지난해 7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캐피털 액셀파트너스가 DJI에 7500만달러(약 851억원)를 투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액셀파트너스는 “DJI가 제2의 애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선전 IT 탐방 프로그램을 이끈 박종일 착한텔레콤 대표는 “한국의 예비 창업가들도 벤처 태동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중국 선전에 방문해 DJI 같은 기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 큰 공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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