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문제 해결 없이 거시경제정책만으로 경기 회복에 한계"
"재정여건 양호…경기 부진·고용 위축에 대응할 여력 충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한국 경제가 고착화 되고 있는 저성장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경제재정연구포럼의 초청으로 열린 조찬 강연에서 "한국의 저성장·저물가와 관련해 통화정책도 열심히 하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정 정책과 구조조정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실 제공

◆ "경기 부진 타개 위해 재정 역할 필요…여력 충분"

그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화가 중요하다"면서도 "경기 부진을 타개하고 고용을 증폭시키는 데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럴 역할을 할 만큼 재정 여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에서 재정건전성에 가장 문제가 없는 나라는 노르웨이와 호주 그리고 한국"이라며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로 재정이 경기 부진 및 고용위축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발표자료를 통해 세계 주요국의 재정 상태를 비교한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소개하며 우리의 양호한 재정건전성을 설명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지속가능한 국가채무 최대치와 현재 국가채무 수준과의 차이) 추정치는 241.1%로 주요 11개국 가운데 노르웨이(246.0%) 다음으로 높았다. 우리나라의 재정 여력은 미국(165.1%), 영국(132.6%), 프랑스(116.9%) 등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다.

이 총재가 우회적으로 이번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정부의 재정 보강이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충분치 않음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이 총재의 언급에 김광림 의원은 "이 총재가 재정의 본연적인 역할을 주문했는데 기획재정부는 통화정책 먼저, 한국은행은 재정정책을 먼저를 얘기한다"며 뼈 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포럼의 공동대표이자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다. 김 의원은 회의에 참석한 추경호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정부와 추경 등의 재정정책을 조율해 왔다.

장병완 국민의당 의원실 제공

◆ 시진핑 '양조론' 아베 '아베노믹스' 언급하며 구조개혁 강조

이 총재는 재정정책의 역할과 함께 구조개혁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중국 시진핑의 '양조론'(兩鳥論·두 마리 새 이론)과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언급하며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양조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시진핑 주석은 '새장을 비우고 새로운 새를 채워넣겠다'는 뜻의 등롱환조(騰籠換鳥)를 넘어 '봉황열반'(鳳凰涅槃·봉황이 죽었다가 부활한다)의 개혁을 통해 '팍스 차이나'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총재는 "중국은 모든 걸 불태워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로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런 방향 아래 중국은 수출과 투자 중심에서 내수와 서비스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경제는 확장적 통화·재정정책에도 불구하고 회복세가 미흡하다"며 아베노믹스의 실패에서 구조개혁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일본에게 지난 6월 외국인 노동자 수용, 소비세 인상 등 보다 강력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며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제로(0) 금리'까지 갈 수 없는 한계가 있고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려면 통화정책의 여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통화정책은 시간만 벌어주고 과도한 완화정책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똑같은 얘기"라고 했다.

이 총재는 향후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 회복에 중점을 두고 완화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유의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편 이 총재는 선진국들의 성장세 둔화에 따라 보호무역주의 회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최근 전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상시화 되고 있고,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축이 G7에서 G20으로 확장되면서 신흥국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도 눈여겨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