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을 지낸 김승조〈사진〉 서울대 공대 명예교수는 "뚜렷한 목표 없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정부 출연연이 많다"며 "이를 과감히 정리해야 정부 R&D(연구·개발) 예산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과학기술 분야 출연연은 모두 25곳이다.

김 명예교수는 "출연연의 연구 분야가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국가 발전보다는 각자의 생존을 위해 운영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 예로 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천연물 연구를 위한 분원(分院)을 강릉에 두고 있지만, 이미 생명공학연구원·식품연구원·한의약연구원 등 유사한 연구를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거의 같은 내용의 연구 주제인데도 조금씩 이름만 바꿔 여러 출연연과 대학이 중복으로 연구비를 타내는 상황도 벌어진다"고 했다.

김 명예교수는 "국내 출연연을 미국의 NIH(국립보건원), NASA(항공우주국)처럼 뚜렷한 목표를 가진 굵직한 3~4개의 그룹으로 재편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국가 경쟁력과 관련된 큰 줄기의 목표 몇 가지에 예산을 집중하고, 나머지 산업 관련 연구들은 기업·대학 등 민간의 영역으로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에 산재(散在)한 소규모 연구원도 문제로 지적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까지 무슨 연구원을 다 하나씩 갖고 있는데,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누구도 제대로 짚어보지 않습니다. 모두 정부 예산을 타내려 혈안이 돼 있죠. '왜 지방은 홀대하냐, 다른 데도 다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는 식의 정치 논리로 만들어진 겁니다."

김 명예교수는 "지금은 정치권에서 정부 R&D 투자를 늘리려고 노력할 때가 아니라 (정부 자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목표와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할 때"라며 "무작정 돈을 많이 쓴다고 과학 선진국이 될 순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