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대기업에 대한 여신 회수 움직임이 은행권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선과 건설, 반도체, 자동차 부품업 등 최근 들어 다소 부진한 업종의 경우 정상기업이어도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여신 회수를 검토하는 분위기다.

대기업 대출이 큰폭으로 줄어들면서 재계 일각에서는 “은행이 금융 공급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너무 한꺼번에 자금 회수를 추진함에 따라 정상 기업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제기된다.

◆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 은행권 여신 회수 움직임에 ‘곤혹’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63조8000억원으로 전월대비 2조9000억원 감소했다.

최근 은행권이 여신을 축소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조선업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금융당국과 최대주주 산업은행이 있어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010140)의 경우엔 호시탐탐 여신을 축소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현재까지는 빅2 조선사를 대상으로 여신을 회수한 사례가 없다. 하지만 은행들은 만기연장 협상 과정에서 수시로 여신 회수를 언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만기 연장도 3개월에 그치고 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산업은행이 최근 삼성중공업 여신 만기를 3개월만 연장했다.

은행측은 부인했지만, 농협은행의 경우엔 오는 10월 만기 도래하는 삼성중공업 여신을 회수할 것이란 설(說)마저 제기된다.

조선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한 다른 대기업도 해외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은행의 여신 회수 추진으로 고초를 겪었다. 이후 이 기업은 국책은행과 자금 조달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시중은행은 골프장, 조선업, 건설업 등 위기 국면에 접어든 업종의 경우 무조건 신규 여신을 내주지 않기로 사실상 공식화했다.

◆ “금융 본연 기능 외면” VS “과거 같은 호황 없을 것…가능할 때 줄여놔야”

재계에서는 금융이 실물 경제에 대한 자금 공급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픽 = 조선DB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를 일으켜 투자를 하고, 그로 인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고 금융은 이 과정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면서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로 현재는 정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면 결국 해외 경쟁사들에게 도움을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은행권은 정상 기업이어도 업황을 보고 당연히 여신 회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조선업의 경우 과거와 같은 호황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정상기업일 때부터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이 맞다고 본다”면서 “기업이 무너진 뒤에는 여신을 회수할 수 없을 뿐더러 금융시장 전반적으로도 큰 타격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부실이 초래됐을 때는 제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너무 까다롭게 군다고 비난하는 형국”이라며 “최근 축소하는 대기업 대출은 거의 대부분 무담보 신용대출인데 요즘 같은 국면에서는 되도록이면 줄이는 것이 당연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