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병을 거꾸로 세운 듯한 다리 모양이 특징
국내 연구팀, '유전자 가위 기술' 이용해 치료제 개발
CJ헬스케어도 관심

‘현재까지 완치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 세계 모든 인종과 민족을 통틀어 280만명이 앓고 있는 유전성 희귀 질환.’

이재현(56) CJ그룹 회장이 앓고 있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샤르코-마리-투스(Charcot-Marie-Tooth·CMT)병’에 대한 설명이다. 최근 대법원에 재상고를 포기해 형이 확정된 이 회장은 검찰의 3개월 간 형 집행정지 결정으로 샤르코-마리-투스병과 신장이식 면역 거부 반응에 대한 치료를 서울대병원에서 계속 받을 수 있게 됐다.

건강했을 때의 이재현 CJ그룹 회장 모습(왼쪽)과 2014년 7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4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는 이재현 회장 모습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이 현재까지 완치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정복을 위해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어 화제다. 유전체 교정 기술 벤처기업 툴젠은 올해 5월 최병옥 성균관대 의대 교수, 홍영빈 삼성서울병원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 사업과제 수행자로 선정돼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툴젠은 정부로부터 5년간 15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받게 된다.

또 국내 제약사들도 바이오 벤처가 연구개발한 신약 기술을 활용, 신약 개발에 나서는 등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한 희귀 질환 치료제 개발을 타진하고 있다. 국내 샤르코-마리-투스병 환자 수는 1만7000여명으로 추산된다.

◆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어떤 질환?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세계적인 유전성 희귀 질환인 만큼 국내에서도 연구 자료들이 많지 않다. 최병옥 교수가 지난 2007년 대한의사협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30년 전인 1886년 프랑스인 샤르코(Charcot)와 마리(Marie), 영국인 투스(Tooth)가 처음으로 샤르코-마리-투스병을 기술했다. 병명에 이 3명의 내과 의사 이름이 붙은 이유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처음으로 기술한 프랑스인 샤르코(Charcot)와 마리(Marie), 영국인 투스(Tooth) 초상화

샤르코-마리-투스병은 유전성 말초 신경병 중 하나다. 유전성 말초 신경병은 크게 유전운동감각신경병(HMSN), 유전운동신경병(HMN), 유전감각신경병(HSN) 등 3가지로 나뉜다.

유전운동감각신경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은 특정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운동신경 및 감각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신경전도검사(신경을 전기적으로 자극해서 얻어지는 파형을 분석함으로써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의 기능을 평가하는 검사)상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에 이상이 있는 모든 유전 질환이 해당된다. 희귀 질환이지만, 희귀 질환 중에서는 발병 빈도가 가장 높다(2500명 중 1명).

샤르코-마리-투스병은 과거에는 하지(다리) 원위부(팔과 다리에서 먼 쪽인 손과 발 부위)의 근육 위축으로 인해 ‘샴페인 병을 거꾸로 세운’ 듯한 다리 모양을 하는 질환 정도로 비교적 단순한 병으로 취급됐지만 최근엔 단일 질환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질환군(syndrome)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질환은 말초신경에 손상이 생겨 손발의 근육이 위축되고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전신 근육 소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이 급속도로 진행된 이재현 회장의 손(왼쪽)과 발(가운데), 종아리 사진.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의 근육이 모두 빠져 움푹 패여 있어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고, 근육 위축으로 발등이 솟아오르고 발가락이 굽어져 자력보행이 불가능하다. 종아리 근육은 2012년말 대비 26% 감소했다.

최근에는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새로운 발병기전들이 많이 밝혀졌다. 유전자 클로닝(필요한 유전자의 수를 증폭하는 것) 기법으로 40개 이상의 샤르코-마리-투스병에 대한 유전자좌(locus·유전자가 염색체 혹은 염색체 지도 상에 차지하는 위치)가 발견됐고, 20개 이상의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샤르코-마리-투스병 환자들이 이미 알려진 유전자좌와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도 50개 이상의 발병원인 유전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유전성 근육병의 종류가 많은 것처럼 유전성 신경병인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종류도 상당히 다양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샤르코-마리-투스병에 대한 치료는 재활 치료, 보조 기구, 통증 조절 등에 국한됐다. 그러나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원인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유전상담과 가족계획이 가능하게 됐다.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임상적 치료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와 그 발병기전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진단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치료적 접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며 “활발한 연구를 통해 머지않은 미래에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정확한 유전적 원인에 따른 적합한 맞춤 치료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샤르코-마리-투스병의 치료 전략으로 크게 프로게스테론 길항제(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등 기능을 저해하는 약제)인 ‘오나프리스톤(Onapristone)’, ‘아스코르빈산(Ascorbic Acid)’, ‘NT-3(Neurotrophin-3)’ 등이 꼽힌다. 이 중 오나프리스톤은 샤르코-마리-투스병에서 가장 흔한 유형인 ‘CMT1A’에 대한 합리적이면서 잠재적인 약물 치료법이다. CMT1A 환자는 한국에 8000여명, 전세계 약 110만명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국내 바이오 벤처, 독자 기술로 치료제 개발 나서…국내 전문가·삼성 의료진과 공동 개발

툴젠은 현재 최병옥 성균관대 의대 교수, 홍영빈 삼성서울병원 박사 연구팀과 함께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한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세포 안에 존재하는 질병 원인이 되는 유전자(DNA) 중에서 원하는 부분만 자르고 세포 내 유전체의 특정 유전 정보를 선택적으로 편집 또는 교정하는 최첨단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 설명

툴젠은 생명과학 분야에서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 ‘크리스퍼’의 국내 최고 전문가인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창업한 바이오 벤처 회사다. 툴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1세대 유전가 가위 기술 ‘징크핑거(Zinc finger nuclease·2008년 개발 완료)’와 2세대 ‘탈렌(TALEN·2011년 개발 완료)’, 3세대 ‘크리스퍼(CRISPR·2012년 개발 완료)’ 모두를 보유하고 있다.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는 세균의 면역체계에서 발견된 것으로 RNA(특정한 DNA에만 결합하는 유전물질)을 통해 숨어있는 바이러스성 DNA를 찾아 이 DNA를 자르고 새로운 DNA를 삽입할 수 있다. 1, 2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징크핑거와 탈렌보다 다루기가 쉽고 간편하며, 기술의 정확도와 효율성이 높다.

의학계에서는 샤르코-마리-투스병 등 유전성 희귀 질환의 원인 유전자를 크리스퍼를 활용해 제거하면 근원적인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CJ그룹 계열 제약사 CJ헬스케어가 툴젠에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의 임상 과정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CJ헬스케어는 툴젠과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개발과 관련해서 몇 차례 만나 논의를 진행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CJ헬스케어 관계자는 “회사는 오픈 이노베이션 일환으로 올해도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포럼’을 개최하는 등 국내외 바이오 벤처기업의 유망한 기술들을 탐색해오고 있다”며 “툴젠과도 담당자끼리 만나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확인하고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개발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김종문 툴젠 대표는 “샤르코-마리-투스병에 대한 세계적 권위자인 최 교수와 삼성 의료진인 홍 박사 연구팀과 공동으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전임상 단계 연구를 수행하기로 했다”며 “복지부 사업과제 수행자로 선정된 이후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정부 과제인 샤르코-마리-투스병 치료제 개발 연구는 CJ헬스케어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면서도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연구가 끝난 뒤 결과물이 나오게 되면 CJ헬스케어가 가장 관심을 가질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