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의 자동 주차 방법 및 그 장치', '지능형 카메라 협업 기반 주차관리 시스템', 'CCTV 카메라 연동 자동 주차 제어 방법'.

국내 최대 정부 출연 연구기관(출연연)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무인(無人) 주차 기술'을 개발하면서 출원한 대표적 특허들이다. ETRI는 2013년 이 기술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교통사고와 연료 낭비가 줄면서 연간 18조원에 가까운 경제적 비용이 절감되고, 관련산업의 세계시장 규모가 2017년 3조9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정부로부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동영상 시연도 했다.

하지만 이 무인 주차 기술 특허들은 지금까지 국내외 어느 자동차 업체에서도 채택하지 않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한 연구원은 "이미 다 확보한 기술이라 굳이 갖다 쓸 필요가 없다"면서 "우리 관심은 이미 무인 주차를 넘어 자율 주행 기술로 옮겨간 지 오래"라고 했다.

10년 넘게 팔리지 않는 장롱 특허들

정부 연구개발(R&D) 성과의 상당수가 무인 주차 기술과 비슷한 처지다. 매년 20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들여 개발한 기술들이 산업현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2012~2014년 사이 3년간 정부 국공립 연구소와 정부 출연연이 국내외에 출원한 2만7029건의 특허 중 기술료를 한 푼이라도 벌어들인 특허는 4182건에 불과했다. 6개 중 1개도 안 된다. 기술료 수입도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국회예산처는 기술료 수입에 기업 생산성 향상 기여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정부 R&D의 사업화 성공률이 약 20%로, 영국(70.7%), 미국(69.3%), 일본(54.1%)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했다. 보여주기식 특허만 양산한 결과다. 해외에 출원한 특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의 R&D 사업을 통해 미국에 출원된 특허 125건을 조사해 보니 이 중 단 한 번도 민간에서 이용되지 않은 특허가 68%에 달했다.

정부가 민간 기술 이전을 확대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이 별로 없다. 지난 1월 25개 출연연이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연 '출연연 한마당'이 대표적이다. 출연연의 연구 성과를 중소기업에 이전하겠다며 연구소마다 전시 시설과 상담부스를 설치했지만, 3일간 상담 부스를 찾은 기업은 37개에 불과했고 이전된 기술 성과도 거의 없었다. 당시 상담을 담당했던 출연연 직원은 "단체 견학을 온 초등학생들이 행사장을 채웠고 기업 관계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에 오는 기업이 비정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R&D 특허, 절반이 사라져

이렇다 보니 정부 R&D를 통해 개발된 기술의 상당수가 '장롱 특허'로 전락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보유한 '휴대용 초정밀 동기화 시계 장치' 특허가 한 사례다. 이 기술은 지진파의 속도와 세기를 분석하기 위해 여러 곳에 있는 시계의 시각을 수만분의 1초 단위로 똑같이 맞추는 기술이다. 하지만 1998년 출원된 이후 지금까지 특허 유지비만 내고 아무 데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아무 데도 쓰이지 못하니 출연연들이 포기해 버리는 특허도 부지기수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출연연들이 포기한 특허의 개수는 1만5400건으로, 같은 기간 출원한 특허 수(2만9864건)의 절반(51.4%)이 넘었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R&D 평가 시스템이 '특허 등록' 같은 수치에 매달리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기술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전자공학)는 "정부 기관이 공지하는 연구 과제를 보면 왜 이런 연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