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사망사고’ 말름(Malm) 서랍장의 판매를 중지하지 않는 북유럽 가구업체 이케아(IKEA)에 대해 정부가 고강도 압박에 나섰다.

이케아는 미국에서만 어린이 사망사고 6건에 연루된 말름 서랍장에 대해 북미 지역은 물론 중국 등에서는 판매 중단 또는 전면적인 리콜을 실시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원하는 소비자에게만 환불조치를 하고 있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달 들어 이케아가 이 서랍장을 국내에서 버젓이 파는 상황을 놓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지난 19일 이케아를 상대로 말름 서랍장 ‘판매중지 검토’를 권고했으나 이케아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케아 광명점 전경. 현재 이케아는 국내에서 광명점 매장 1곳만을 운영하고 있다. 2호점인 고양점은 2017년 개장 예정이다.

급기야 국가기술표준원은 24일 국내 유통 중인 수입·국산 서랍장의 안전성 조사를 일제히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케아 등 수입 브랜드 가구를 포함해 인기있는 국내·외, 대·중소기업 수십개 제품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조사 방식은 한층 깐깐해졌다. 이전처럼 유해물질 안전 요건 뿐 아니라, 가구가 넘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전도(顚倒)시험’도 벌인다. 북미 지역에서 말름 서랍장이 어린이 사망 사고를 수차례 일으켰던 점을 고려한 조치다.

◆ 北美·中에선 이미 리콜 결정…한국선 “자율기준 준수했다” 버티기

말름 서랍장은 올해까지 미국에서만 어린이 사망사고 6건에 연루됐다. 서랍장을 여는 과정에서 서랍과 몸체가 앞으로 넘어지면서 어린이가 서랍장에 깔려 숨지거나 다치는 일이 잇따랐다. 현재 미국 기준 관련 사고 41건이 접수됐다.

사고 초기 이케아는 전 세계 매장에서 서랍장을 벽에 고정하는 장치를 무료로 나눠줬다. 말름 서랍장 사고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책이었다.

하지만 올해 초 미국에서 같은 사고로 아이 1명이 추가로 사망하면서 벽 고정장치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곧 이케아는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 말름 서랍장 약 3600만개를 리콜하고 판매 중지했다.

중국에서도 초기 ‘리콜하지 않고, 환불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중국 내부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13일 중국 정부에 리콜 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말름 서랍장 판매를 중단하지 않고 있어 ‘한국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비난의 여론이 비등하다.

경기도 광명시 이케아 국내 1호 매장에 어린이 사망 사고를 일으킨 ‘말름(MALM)’ 제품이 진열돼 있다. 이케아는 말름 서랍장이 앞으로 넘어지면서 어린이가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자 미국에서 2900만개, 캐나다에서 660만개의 제품을 리콜하기로 했지만, 한국에선 원하는 소비자에게만 환불 조치를 하고 있다.

국가표준기술원이 말름 서랍장 ‘판매중지 검토’를 권고했지만, 이케아는 원하는 소비자에 한해 환불해주고 있다. 그저 고객센터에 문의하고 항의하는 고객에게만 환불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수준이다.

이케아 관계자는 “서랍장을 벽에 고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미리 고지했으며 제품에 하자도 없다”며 “한국에 말름 서랍장 리콜 결정을 내리지 않은 이유는 국내 소비자원 등의 자율 기준을 준수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국내에선 서랍장 안전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모서리가 너무 뾰족하지는 않은지, 포름 알데히드 검출량이 기준치에 맞는지에 대해 통과하면 판매에 문제가 없다.

전 세계에서 6500만개 팔린 베스트셀러…강제 리콜 가능성

이케아의 이런 태도는 이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케아는 그동안 대표적인 북유럽 기업으로서 안정성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부보다 한발 앞서 자체적인 조치를 내렸다.

앞서 6월 어린이 안전문 ‘파트룰(Patrull)’이 갑작스럽게 열리는 일이 발생하자 리콜을 결정했다. 그 당시 마리아 퇴른(Maria Thörn) 어린이 이케아(Children’s IKEA) 비즈니스 부문 매니저 대행은 “어린이들의 안전은 타협할 수 없는 부분으로 이케아는 어린이 안전과 관련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란을 빚은 ‘말름(MALM)’ 서랍장. 현재 영국에서 이 제품은 99파운드(약 14만8000원)에 팔리고 있다.

이어 6월 6일 ‘라티오 박쥐망토', 27일 ‘다크 초컬릿’ 등 올들어 리콜 조치를 내린 제품만 6건이다. 이케아는 한국에서도 이들 제품을 리콜했다. 이들 제품과 말름 서랍장의 차이점은 말름이 전 세계에서 6500만개 이상 팔린 이케아의 대표 상품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이번 조사에서 말름 서랍장의 안정성 결함을 확인하면 강제 리콜에 나서게 된다. 특히 전도 시험 요건에 최근 안전 요건을 강화한 미국재료시험협회(ASTM) 표준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케아는 해당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정부가 판매 금지를 강제하고, 수거 명령을 내릴 경우 이케아는 그동안 불거진 반(反)이케아 정서 등 이미지 하락 뿐 아니라 대규모 리콜 비용도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위해 사실이 확인될 경우 제품안전기본법에 따라 제품 수거 등의 권고, 명령 조치를 즉시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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