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5일만에 5백만 관객 끌어들인 '부산행' 제작사 NEW 주가 32.48% 치솟아
좀비떼가 덮친 극장가, 재난에 대처하는 인간 심리 리얼하게 그려

영화 ‘부산행'의 주연 배우인 김수안. ‘부산행'의 흥행으로 ‘태양의 후예' 이후 부진을 면치 못했던 제작사 NEW의 주가가 이달 들어 32.48% 치솟았다.

(*주의 기사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6억원의 순제작비가 투자된 영화 ‘부산행'의 흥행 질주가 무섭다. 개봉 5일만에 5백만 명이 극장에 몰렸다. 역대 오프닝 최고 수치, 전염병 전파 속도를 연상시키듯 무섭게 빠른 속도다. ‘부산행'은 앞서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좀비 호러물이라는 유사성은 있으나, ‘곡성'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띤다.

◆ 괴전염병 공포는 ‘괴물', 기차 액션은 ‘설국열차' 닮아

용의자들을 한 장소에 붙들어 매고 뒤흔들어댔던 ‘곡성'은 영화를 본 관객들이 스토리를 일목요연하게 재현할 수 없다는 당혹감이 ‘흥행'의 자극 요소가 됐다. 반면 ‘살아서 부산으로 가야 한다'는 유일무이한 목적으로 남쪽으로 직진하는 ‘부산행'은 유료 시사관객들에 의한 스포일러 사태 이후에도, 스토리를 알고 봐도 재미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흥행 가속 폐달을 밟고 있다.

‘부산행'은 정체불명의 괴바이러스에 의해 전국민이 좀비로 변형되는 과정을 다룬 재난 영화로, 부산행 열차에 탑승한 아버지와 딸, 출산을 앞둔 부부, 야구부원들 등 여러 군상들이 좀비에게 습격받으며 각자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수라 지옥도를 그린다.

괴전염병에 관한 대중의 공포와 그것에 대처하는 정부의 우스꽝스러우리만치 무능한 태도는 ‘괴물'의 유전자를 닮았고, 열차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좀비를 뚫고 진격하는 ‘직진력'은 ‘설국열차'를 떠올리게 한다. 빙하시대를 떠도는 ‘설국열차'처럼 유일한 생존자를 허무의 설원으로 내동댕이치지 않고, 마지막 희망을 남겨둔 점은 이 영화가 천만 관객 확보에 문제가 없을 거라는 예측을 낳게 한다.

무려 428개의 스크린에서 유료시사회를 진행했던 ‘부산행'. 공유가 아이를 안고 있던 포스터가 마케팅적으로 유효했다.

기차 이 칸과 저 칸을 가르는 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겠다고 달려오는 사람 중 어디까지 받고, 어디까지 버릴 것인가. 마동석은 자기 앞에서 매정하게 문을 닫았던 공유에게 묻는다. “너, 펀드매니저라며? 주식할 때 자주 개미들 버리고 갔지?”

쫓고 쫓기는 좀비 기차에서 머리칸인 조종석을 차지하게 된 생존자는?

영화는 공포 상황에서, 살려고 염치를 내려놓은 군중과 그래도 염치를 아는 사람들 사이의 대결 구도를 보여주며 “너는 과연 어느 쪽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염치 있는 자 1 심은경 기차 안에 뛰어든 첫 번 째 좀비로 열연한 심은경은 어떻게든 좀비가 되는 걸 막아보겠다고, 화장실에서 스스로 팔다리를 묶는 등 갖은 애를 썼다는 점에서 염치 있는 좀비라 할만하다. 좀비로 변신한 심은경의 기괴한 표정과 몸 동작은 그녀의 히트작이었던 영화 '써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일찌기 ‘써니'에서 극소심 전학생이었다가 위기 상황에서 눈을 뒤집고 할머니가 빙의한 것 같은 무서운 대사(“벌집을 쑤셔 눈탱이고 대갈빡이고 죄다 조사버릴 주둥박이지 허겄네…”)를 선보여 관객을 혼비백산 시킨 바 있다. 고개를 꺾고 팔다리가 돌아가는 좀비 동작은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킬 만큼 그 시각적 데시벨이 강력한데, 모두 안무가의 섬세한 조련으로 탄생했다. 여타 다른 100여명의 좀비 연기에는 비보이 크루들이 대거 참여했다.

전작인 ‘굿바이 싱글즈'에서 답답해보였던 마동석은 ‘부산행'에서 제대로된 완력을 행사한다.

염치 있는 자 2 공유 공유는 전작 '남과 여'에서 우울증인 아내와 딸 옆을 애매하게 배회하지만, 전도연이 부산행 ktx를 탈 때는 주저 없이 동행해 애틋한 기차 로맨스를 보여준 바 있다. 확실히 기차에 강한 배우! '남과 여'에서 보여준 우유부단한 유부남 이미지를 벗고, 부성애 강한 아버지로 분한 공유는 어둠 속에서 바보가 되는 좀비의 약점을 공략하는 센스와 박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처음엔 딸에게 “이런 위험한 순간에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칠 정도로 ‘각자도생' 주의자지만, 타인의 도움으로 살아난 딸을 위해, 그 자신, 서서히 타인을 돕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염치 있는 자 3 마동석 마동석은 볼수록 흡족하다. 영화 '베테랑'의 엔딩신에서 "나 요 앞 아트박스 사장인데…"라는 대사로 '좀비스러운' 재벌 3세를 기죽이는 강렬한 존재감을 선보인 바 있는 마동석. 최근 '굿바이 싱글'에서 가짜 임신부 행세하는 여배우 김혜수 옆에서 뒤치닥거리를 하던 유학파 스타일리스트 역할이 영 어색하기 그지 없었는데, '부산행'에서는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그는 ‘부산행'에서 아내이자 ‘진짜’ 임신부 역할을 맡은 정유미 뿐 아니라, 탑승객 전체를 구하기 위해 앞장 서서 좀비들과 격투를 벌린다. ‘설국열차'에서 앞으로 돌진하던 행동대장 제이미 벨이 떠오른다. “달려오는 사람 앞에서 문을 닫아? 왜 그랬어. 미친 새끼야. 다 들어올 수 있었잖아” 이기주의에 일침을 가할 때나,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좀비 떼를 온 몸으로 막아설 때 “아! 우리 곁에 아직 이런 시민이 있었구나" 그 존재가 눈물 나게 고맙다.

’부산행'에서 문은 이쪽 집단과 저쪽 집단을 가르는 냉정한 구획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살려고 닫은 문이 결국 퇴로 없는 자멸의 결과로 돌아온다.

염치 있는 자 4 정유미와 김수안 임신부로 나온 정유미와 어린 아이 김수안은 약자다. 그런데 무지막지하게 살을 파먹는 그 좀비 아수라에서 이 약자들이 보여주는 '염치'는 놀랍다. 약자가 약자에게 공감하듯, 임신부는 남편에게 어린 아이를 살리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어린 아이는 아빠에게 노숙자를 데리고 가야 한다고 애원한다. 마동석과 공유가 사람들을 이끄는 행동대장으로 각성하는 것은 바로 그녀들의 일관된 공동체 의식 때문이다.

염치 있는 자 5 기관사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제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가장 빨리 도망친 자가 선장이라면. '부산행'의 기관사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반부엔 상부의 명령으로 영문도 모른 채 승객들을 위험에 빠트리지만, 막바지엔 "혹시 살아 계신 분이 있다면 선로 가장 왼쪽에 운행가능한 기차를 대기 시켜 놓겠으니 탑승하라"는 담담하고 처절한 안내 방송을 한다.

부산행 ktx 기관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책임지려는 자세,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의 승객까지 구조 하려던 그의 염치에서 세월호 트라우마를 씻어내려는 감독의 의지가 읽힌다.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어두운 굴 속에서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피는 시절 다시 만나리니' 노랫소리가 들려올 때, 우리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고아성이 눈 밭에 홀로 살아남았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순결한 감격을 목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