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11시. 이날 문을 연 서울 강남 ‘쉐이크쉑(Shake Shack)’ 국내 1호점 앞에는 북적이는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매장 입구에서 시작한 줄은 뙤약볕 아래 400미터 가까이 이어졌다. 폭염에 지칠만도 했지만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제일 처음 줄을 선 사람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올라와 전날 밤 10시부터 매장 앞을 지켰다.

쉐이크쉑은 미국의 유명 햄버거 체인이다. 세계 어디든 문을 여는 매장 마다 기다란 줄을 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도쿄 기타아오야마(北靑山) 매장은 개장 후 8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줄을 서야만 햄버거 맛을 볼 수 있다.

이날 쉐이크쉑을 찾은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 모습.

열광(熱狂)에 가까운 관심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염소 뿔도 녹는다’는 대서(大暑)였지만 1500명이 넘는 인파가 줄을 섰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금요일 오전 연차를 내고 찾아온 직장인들까지 성별과 연령이 다양했다. 금발의 외국인도 보였다. 강남대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신기하다는듯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 “음식 맛만큼 신나는 분위기도 중요해”…일관성 위해 美서 숙련된 스태프 파견

2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매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 강남점은 전 세계 98번째 매장이다. 중동, 유럽을 제외하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쉐이크쉑 매장을 연 국가다. 강남점은 210석 규모로 일본에 비해 매장이 큰 편이다.

직원들이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는 능숙했다. 쉐이크쉑 강남점에는 미국 매장의 맛과 가치를 그대로 전수하기 위해 글로벌 스태프 14명이 일하고 있다.

“쉐이크쉑은 음식 맛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환대)’야말로 음식 맛과 동등한 가치가 있습니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소비자가 즐거운 마음(attitude)으로 먹어야 하니까요.”

랜디 가루티(Randy Garutti) 쉐이크쉑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여러 매장의 개장 행사를 돌아다녀 봤지만, 서울은 유난히 열기가 뜨거웠다”고 말했다.

간판 메뉴 ‘쉑 버거’와 ‘크링클 컷 포테이토’, ‘밀크 쉐이크’를 시켰다. 쉐이크쉑은 주문과 동시에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햄버거 업계에서 쉐이크쉑의 좌표를 ‘패스트푸드’ 카테고리에 넣기보다 ‘다이닝(dining·정찬)’ 코너에 넣는 이유다.

22일 SPC그룹이 들여온 미국 버거 브랜드 ‘쉐이크쉑(SHAKE SHACK)’ 국내 1호점 강남점에서 관계자들이 그랜드 오픈 기념 테이프 컷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마크 로사티(Mark Rosati) 쉐이크쉑 컬리너리 디렉터, 마이클 칵(Michael Kark) 쉐이크쉑 글로벌 사업 부사장, 랜디 가루티(Randy Garutti) 쉐이크쉑 CEO, 마크 리퍼트(Mark Lippert) 주한 미국 대사, 허희수 SPC그룹 마케팅전략실장, 권인태 파리크라상 대표이사, 황재복 파리크라상 부사장

◆ 肉香·씹는 맛 살아있는 풍성한 패티

20여분을 기다리자 음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릇한 풀잎색 번(bun·햄버거 빵) 사이에 오롯이 자리잡은 불규칙한 모양의 쇠고기 패티. 그 위를 장식한 노란 치즈 한장과 넓게 썬 빨간 토마토 두 조각, 상추 한 장. 첫 인상은 단출했다.

햄버거는 단순한 음식이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지만, 기본은 빵 두장 사이에 넓고 평평한 고기를 넓은 형태다. 복잡하지 않아 역설적으로 맛있게 만들기 어렵다. 간단하게 만들면 대체로 비슷한 맛이 난다. 차이를 주려면 그만큼 손이 많이 간다.

한껏 호기심을 갖고 첫입을 베어물자 진하고 뭉근한 육즙이 입안을 채웠다. 곧 풍성한 육향(肉香)이 코를 타고 올라왔다. 소금과 후추의 향긋함, 치즈의 고소함이 뒤따랐다. 쉐이크쉑은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사용하지 않은 미 농무부(USDA) 인증 앵거스 쇠고기만 사용한다.

쉐이크쉑의 대표 메뉴 ‘쉑버거’(아래)와 밀크쉐이크(왼쪽 위), 크링클 컷 포테이토.

가루티 CEO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쇠고기는 전량 미국에서 냉장육으로 들여온다”고 말했다.

쇠고기 패티는 살코기와 지방을 적절히 섞어 사용해야 맛있다. 살코기는 씹는 맛을, 지방은 풍부한 육즙을 가져다 준다. 미국 쉐이크쉑은 살코기와 지방 비율을 8대2 정도로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등심, 갈비, 양지, 볼살 부위를 섞는다. 부위별 비율은 기밀이다.

쉐이크쉑 패티는 ‘불맛’이 살아있다. 직접 패티를 직화(live fire)로 굽진 않지만, 마이야르 반응(고기 속 아미노산과 당이 반응해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극도로 끌어내는 조리법을 사용하는 듯하다. 패티는 다른 국내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 비해 성긴 편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투박한 타입이다. 밀도가 높지 않아 뻑뻑하지 않다. 살코기와 지방질 사이로 풍성한 육즙이 흘러 쇠고기의 풍성한 맛을 더한다.

쉐이크쉑의 메뉴를 총괄하는 마크 로사티(Mark Rosati) 컬리너리 디렉터는 “고기를 분쇄할 때 특수 제조한 분쇄기를 사용해 가장 씹기 좋고 육즙이 빠져나가지 못할만한 크기로 부수는 것이 패티 맛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평범한 곁들임 메뉴는 약점…‘항상 같은 맛’ 유지도 과제

번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다. 미국 쉐이크쉑은 펜실베니아주(州) ‘마틴스’에서 만든 감자 반죽으로 빵을 만든다. 감자 반죽으로 만든 번은 밀가루 번보다 훨씬 쫄깃쫄깃해 씹는 식감이 좋다. 국내에도 이 번을 그대로 사용한다.

감자 전분 함유량이 높은 번은 촉촉한 육즙, 소스와 만나도 좀처럼 부서지지 않는다. 햄버거를 먹을 때 빵이 젖거나 부서져 곤욕을 치를 가능성이 작다. 굳이 햄버거의 단짝 감자튀김을 주문하지 않아도, 번에 숨겨진 감자의 맛과 향이 패티의 묵직함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크링클 컷 포테이토는 아이다호·몬타나·워싱턴 등 미국 서부에서 자란 골든 포테이토를 톱니 모양으로 잘라 사용한다. 밀크쉐이크는 전반적으로 소금기가 많은 메뉴를 단 맛으로 잡아줬다. 그러나 곁들이는 메뉴들은 맛이 다소 평이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햄버거 질에 비해 사이드 메뉴의 퀄리티가 아쉬운 편’이라는 평가가 나오곤 한다.

가루티 CEO는 “한국 쉐이크쉑 버거가 미국 뉴욕에서 맛본 쉐이크쉑 버거와 똑같은 맛이라는 것을 보증한다. 다른 메뉴들도 글로벌 스태프들을 동원해 일관성(consistency)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쉐이크쉑의 핵심 가치는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환대)’다. 카운터 직원들이 웃는 모습으로 주문을 받고 있다(위). 음식이 만들어 지는 주방(아래)은 속이 보이는 ‘오픈 키친’ 형태로 돼 있다.

이날 식사에는 총 1만6700원이 들었다. 쉑버거가 6900원, 밀크쉐이크와 크링클 컷 포테이토가 각각 5900원, 3900원이었다.

혹자는 미국 유명 브랜드를 붙였다고 고작 햄버거 한 세트에 2만원 가까이 하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 패스트 푸드 햄버거와 쉐이크쉑을 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하긴 어렵다. 허희수 SPC그룹 마케팅전략실장은 개장에 앞서 가진 간담회에서 “쉐이크쉑 도입으로 국내에 ‘파인 캐주얼(Fine Casual·고급 레스토랑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에 패스트푸드점의 편리함을 적용한 콘셉트)’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롯데리아와 맥도날드 햄버거 단품이 2000~5000원, 홍대와 이태원 일대 수제 버거 매장 햄버거 단품 가격이 7000원에서 1만5000원을 넘나드는 점을 고려하면 쉐이크쉑은 그 틈새를 노린 브랜드라고 봐야 한다. 미국에 가지 않고도 햄버거의 본고장을 뒤흔든(shake) 맛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