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부지도(茂朱府地圖, 규10479), 조선후기 지방지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무주 위치. 네이버 지도 참조

무주읍내를 걷다 보면 하천이 도시 가운데로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대천으로 불리는데 금강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남대천의 남쪽에 무주종합버스터미널이 있고 이 하천 북쪽에 무주군청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청

옛지도를 보면 이 하천 북쪽에 아사(衙舍), 객사(客舍), 향교(鄕校)가 그려져 있다.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에서 나와 남대천의 다리를 지나면 무주군청이 나온다. 군청 앞 길은 옛지도에 등장하는 옛 길이 그대로 남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관아였던 아사(衙舍)터에 군청이 들어선 것으로 생각되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군청사에는 무주반딧불 축제와 세계태권도 문화엑스포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청사 왼쪽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보인다.

무주 구상화강편마암

군청사 앞에서 옛 관아터였다는 단서를 발견할 수 없어 뒤편으로 가보았다. 옛 관아건물은 보지 못하고 특이한 돌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상화강편마암(球狀花崗片麻巖)’이라고 이름붙인 암석이다.

변성암의 일종인 화강편마암이고, 자세히 보면 작은 공모양으로 되어 있어 구상(球狀)이란 단어를 앞에 붙였다. 무주읍 오산리 왕정마을 일대에서 출토된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1974년에 천연기념물 제 249호로 지정된 암석이다.

무주초등학교

아사터는 정확히 확인 못하고 특이한 암석만 보았다. 이제 객사터라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주초등학교로 갔다. 2009년이 개교 100주년이었던 학교다. 아담하고 예쁜 학교지만 옛 관아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무주초등학교 옆에 무주중학교가 보인다.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가 객사터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무주향교 안에 있는 선정비.

옛지도에 등장하는 건물 중에서 남아 있는 건물이 향교다. 다른 곳에 있다가 순조 32년(1832)에 이곳으로 옮겼으니 1872년 제작 옛지도에 그려진 위치와 같다. 옛지도에는 있는데 지금 홍살문이 없는 것은 향교 명륜당 앞에 새로 길을 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향교 마당 왼쪽에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전라도 관찰사와 무주부 수령들의 선정비, 영세불망비들이다. 옛 관아 앞에 있던 것들을 향교 안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무주향교 대성전

선정비들을 보고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나온다. 대성전을 보고 나오는데 내삼문 옆에 관광안내소가 들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지방 향교는 제사지내는 날이 아니면 열려 있지 않은데 무주향교에서는 체험활동을 할 수 있게 열어두었다. 사무실을 지키는 분은 결혼 이주민 여성이었는데 우리에게도 활쏘기, 투호놀이, 제기차기를 해보라고 권하였다.

호국사비

향교 근처 식당에서 어죽을 먹으면서 향교를 기준으로 옛길, 객사, 관아터를 다시 추정만 해 보았다.

옛지도를 보면 관아가 있었던 읍내와 더불어 크게 그린 곳은 적상산성이다. 읍내에서 남대천을 건넌 후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면 산성 안에 도착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올라가는 걸 포기하는 게 낫겠다 싶다.

산성 안에는 두 개의 절이 그려져 있다. 호국사(護國寺)와 안국사(安國寺)이다. 호국사는 공사 중이었다. 호국사 아래로 내려가면 비각(碑閣) 안에 호국사의 창건 과정을 기록한 비(碑)가 보인다. 적상산성 안에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를 보관하였기에 이를 지키는 승군(僧軍)을 모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호국사를 지은 것이다. 조선 인조 때 지은 절인데, 1949년 여순 사건때 불타고 터만 남은 절이다.

적상산성

호국사비 근처에 적상산성의 성벽이 남아 있다. 적상산성의 축성시기는 삼국시대 백제, 고려 말 또는 조선초기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적상산성이 중요하게 대두된 시기는 광해군 대이다. 후금(청)이 강성해지면서 묘향산에 보관 중이던 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록을 옮길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이곳 적상산성이 후보지가 된 것이다.

광해군 6년(1614)에 실록각이 창건되고 광해군 10년(1618)에 선조실록이 봉안되었다. 인조 12년(1634)에는 묘향산에 보관 중이던 실록들이 이곳으로 옮겨졌고, 인조 19년(1641)에 선원각이 건립되었다.

안국사 청하루

적상산성 성벽을 보고 위로 올라가면 안국사다. 적상산성의 남문지와 동문지 사이에 있는 사찰이 안국사다. 청하루(淸霞樓)를 지나면 안국사 경내에 들어가는데, 옛지도에도 청하루가 그려져 있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이 절이 크게 확장된 것은 광해군대에 사고(史庫)를 만들면서다. 영조 47년(1771)에 법당을 새로 지었고 안국사(安國寺)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 절 건물은 1989년에 적상산 양수발전소 상부 댐을 건설하면서 절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었기에 새로 옮겨 지은 것이다.

안국사 극락전

청하루를 지나면 보이는 극락전이 본전에 해당한다. 이 절에 보물이 한 점 있다. 영산회괘불괘불탱(靈山會掛佛幀)이다. 보물 제 1267호다. 영조 4년(1728)에 그린 것이다. 괘불은 야외에서 법회나 행사를 할 때 걸어두는 그림이다. 안국사를 구경하고 내려가다보면 적상산 사고가 나온다.

선원각과 사각

1910년에 조선이 망하고 이곳의 실록은 서울의 장서각으로 옮겨진다. 이후 사고는 황폐화된 상태였다. 원래 자리는 1992년에 양수발전소 상부댐에 의해 물에 잠기게 된다. 지금의 건물은 한 눈에 새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왼쪽의 선원각은 1997년에, 오른쪽의 실록각은 1998년에 만든 것이다.

양수발전소

새로 만든 적상산 사고를 보고 산을 내려가면 적상산 전망대가 나온다. 이 전망대가 무주양수발전소의 조압수조다. 이곳에 올라가면 보이는 상부저수지가 적상호이고 하부저수지가 무주호다. 지하발전소는 하부저수지 옆에 있다. 전망대는 적상호와 무주호를 지하로 연결하는 수로(水路) 상단에 위치한 압력 조절장치이다. 이곳에서 전체를 조망한 후 나제통문으로 이동하였다.

라제통문

‘라제통문(羅濟通門)’은 신라(羅)와 백제(濟)가 통하는 문(通門)이란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삼국시대에 있던 문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 금광개발을 하면서 신작로를 만들기 위해 뚫은 것이다.

터널 앞 다리 이름이 설천교다. 무주군 설천면 지역이다. 나제통문을 지나면 무풍면이 된다. 무풍폐현이 있던 지역이다. 설천은 백제 땅, 무풍은 신라 땅이었다고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1963년에 무주 33경 중에서 제 1경으로 지정하였다. 장소마케팅에서는 사실보다 이야기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제통문에서 무주부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올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반딧불 축제를 한다니 이 때 무주를 다녀와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