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마다 달라지는 보양의 기준…과거엔 우유죽이 최고의 보양식
보양식 찾기 보다, 즐겁게 먹고 적당히 운동하는 것이 더위를 나는 법

복날이 되면 삼계탕 등 보양식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

복날이면 삼계탕을 먹으러 사람들의 줄이 길어진다. 삼계탕 속의 대추를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인터넷 기사를 열심히 찾아 읽는다. 삼계탕은 더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한 보양식인가? 과거에 그랬던 것은 분명하다.

기록을 찾아보면 과거에 보양식으로 여겨졌던 음식은 주로 단백질 함량이 높은 것들이다. 한민족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먹기 힘든 게 고기였고, 제일 결핍되기 쉬웠던 게 동물성 단백질이었다. 특히 한국전쟁 전후로는 영양부족이 더 심했다. 영계 한 마리를 푹 고은 삼계탕에는 하루 필요량의 2배에 이르는 단백질이 들어있으며, 한 그릇을 먹고 나면 하루 필요 열량의 절반을 섭취할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영양식인가. 같은 이유로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A가 풍부한 장어도 인기 있는 여름 보양식이다.

◆ 영양이 풍족한 현대인에게 고열량 고지방 보양식은 해가 될 수도

삼계탕도 장어도 보양식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지는 백 년이 채 되지 않았다. 193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사람들이 흔히 먹지 않지만 먹으면 보신될 음식 가운데 하나로 번데기, 자라와 함께 뱀장어를 꼽고 있다. 삼계탕이 대중적인 보양식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것도 한국전쟁 이후부터다. 하지만 과거의 보양식이 현대에도 보양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때는 우유도 보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A가 풍부한 장어도 인기 있는 여름 보양식이다.

우유는 보통 사람은 꿈꿀 수도 없는 왕실과 귀족의 양생 음식이었다. 고려시대 충렬왕 때 우유 생산을 전담하는 유우소(乳牛所)라는 상설기관도 설치되었고, 이 유우소는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어, 일부 특권층에게 우유를 공급했다. 우유에 쌀가루와 물을 넣어 만든 우유죽은 당시 평민은 꿈도 꿀 수 없는 보양식이었다.

현대인에게는 다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우유를 매일 마시고, 다른 음식으로도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 우유는 영양이 풍부한 식품이지만 오늘날 우유를 보양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침에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다음날 우유죽을 또 먹으려고 줄을 길게 서진 않는다. (우유죽을 파는 집도 드물다.)

하지만 엊그제 야식으로 치킨을 먹고, 복날 점심 다시 삼계탕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인삼과 한약재를 넣어 끓였으니, 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인삼은 삼계탕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였다.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는 20세기 한국 음식의 역사화 문화를 조명하는 저서 ‘식탁 위의 한국사’에서 1950년대 백삼가루를 넣은 닭국에 불과했던 계삼탕이 1960년대가 되자 삼계탕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닭고기보다 인삼을 전면에 내세웠다고 지적한다. 시간이 흐르고 식량 사정이 나아지면서 닭고기로는 보양식의 특별한 효능을 내세우기 어려워졌으니, 전통적으로 귀하게 여겨온 약재, 인삼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삼계탕에 인삼을 넣었다고 음식 이상의 효능을 낸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최근 삼계탕의 효능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닭고기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닭고기 속에 풍부한 카르노신, 안세린과 같은 펩타이드 성분에 항산화 및 피로회복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고온으로 가열하는 요리 과정에서 이들 성분이 얼마나 버텨내는지, 이들 성분에 정말 피로회복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 정도면 삼계탕 속 닭고기가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데도 신빙성은 있는 셈이다.

삼계탕은 고단백, 고지방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엔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닭고기만 먹어야겠다고 결심하지는 마시길. 카르노신과 안세린이 닭고기에만 들어있는 성분은 아니다. 새우, 칠면조, 참치에도 많이 들어있고 쇠고기에도 닭고기의 절반 정도로 들어있다. 물론, 과거 결핍으로 시달리던 시절에는 이런 연구 결과도 필요 없었을 거다.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이겨내는데 영양이 풍부한 음식은 두말할 것 없이 최고의 해결책이었을 테니 말이다.

◆ 보양식이 필요한 시대는 지났다

초복은 지났다. 하지만 중복, 말복이면 또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방송, 신문, 인터넷은 보양식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할 테고, 삼계탕을 먹으러 줄이 길게 설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음식이라도 그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여름철 무리한 다이어트로 기운이 빠진 사람, 혼자 사느라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사람에게 복날 삼계탕은 훌륭한 영양식이지만 과잉의 시대, 넘쳐나는 음식을 이미 너무 많이 먹고서, 비만과 고지혈증으로 고생 중인 사람에게 고단백, 고지방의 보양식은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간 또는 신장 기능이 저하된 사람들의 경우 하루 단백질 섭취량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 단백질이 소화, 흡수되어 몸속에서 처리되는 과정에서 간과 신장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음식과 보양식 이야기가 쏟아지는 세상 속에서,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먹기 전에 우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 정재훈은 과학,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강한 잡식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