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가담자들은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징계를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회계사기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회사를 옮기면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다시는 금융권에서 일을 할 수 없다.”

“포상이 있어야 내부 고발이 활성화된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의 회계부정 적발로 추징한 금액의 10~30%를 내부고발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있다.”

호세 로드리게스 KPMG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글로벌 리더는 13일 “분식회계는 한두 사람의 악인 때문이 아니라 조직에서 압력이 있을 때 발생한다”며 “분식회계를 없애려면 회사 내 감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하고, 동시에 분식회계에 관여한 당사자들에 대해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때 미국에서도 감사위원회 활동이 쓸 데 없는 비용 정도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01년 엔론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과 2002년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건 이후 변화가 있었다. 우선 회사 내 감사위원회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2002년 7월에는 사베인-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이 입법하면서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로드리게스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글로벌 리더는 “미국도 엔론과 월드컴 이후 분식회계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됐다”며 “분식회계가 왜 발생하고, 어떤 규제가 효과적이었는지 한국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글로벌 리더는 지난 2011년부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기업들의 독립적인 감사위원회 작동과 분식회계 방지를 위해 조언을 하고 있다. 중소회사부터 대규모 다국적 기업까지 다양한 기업의 감사위원회 작동 사례와 분식회계 사례를 두루 지켜본 회계 사기 방지 전문가다.

아래는 로드리게스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글로벌 리더와의 일문일답.

-규제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완비했다고 하는데, 잊을 만하면 분식회계가 터져나온다. 분식 회계는 왜 발생할까.
"분식회계는 어떤 한 사람이 악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에 일종의 압력이 있을
때 분식회계가 발생한다. 개인이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미미한 규모로 분식이 이뤄진다. 하지만 그 규모는 점차 커지고, 나중엔 눈두덩이처럼 커져서 숨기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이 때문에 분식회계를 억제하려면 이에 대한 구성원의 경각심을 심어놓아야 한다. 그게 가장 먼저다. 미국의 경우 엔론 사태 이후 변화가 있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엔론과 월드컴은 경각심을 일으킬만한 일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감독감시 수준이 높아졌고, 곧이어 관련 법령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대표이사(CEO)나 재무담당책임자(CFO)가 작성한 문서를 검증하는 절차가 신설됐다. 회계법인과 회사 내 감사위원회의 관계도 증진됐다. 감사위원회도 과거보다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었다."

-분식회계 방지에 가장 효율적이었던 규제를 꼽자면.
"사비엔-옥슬리법이었다. 분식회계 가능성을 낮추는 데 아주 효율적이었다. 분식회계에 관여했을 경우 받을 과징금 수준을 아주 높게 설정했다. 수감기간도 높였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재무제표 관련 부정행위로 기소된 사람은 2013~2014년에 약 173명, 2014년에서 2015년 사이 175명이다. 기소 대상이 된 사람들은 최고재무담당자(CFO) 등 재무 관련 직원 뿐 아니라 제대로 부정행위를 감독하지 못한 감사 담당자도 포함됐다."

-징계는 어느 정도 수준인가.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징계가 내려지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어떤 기업에서 분식회계와 관련한 회계사기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회사를 옮기면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미국의 경우 다시는 금융권에서 일을 할 수 없다. 금융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로 할 수 없다. 포상도 있다. 그래야 고발행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의 회계부정 적발로 추징한 금액의 10~30%를 내부고발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있다."

-재무부서에서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아 감사위원회가 분식의 징후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어떻게 처리되는 편인가.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분식회계나 회계부정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조치를 취했는지가 중요하다. 어느 선까지 알고 있는지 확실히 조사했는지, 분식회계로 회사에 불어닥칠 재무적 부담이 어느 수준인지, 미래에 이런 사기행각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꼼꼼하게 검토해야 한다. 부정회계사건이 발각되고 감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순 조력자도 마찬가지다. 단순 회계업무를 하는 담당자라고 할 지라도 분식의 징후를 알고 있었다면 책임이 있다. 몰랐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순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회계부실을 막지 못한 회계법인의 대표이사도 처벌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회계감사 업무는 회계법인의 파트너(책임자급)가 진행한다. 이 때 어떻게 직무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규칙을 준수했는지가 중요하다. 회계법인 대표는 파트너들이 이 규칙을 제대로 준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회계법인 대표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하는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호세 로드리게스 KPMG 감사위원회 지원센터 글로벌 리더는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플로리다와 뉴욕,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미국 공인회계사로 활동했다. 2006년부터 KPMG 미국 이사회 멤버 및 의장으로 활동했고, 2011년부터 KPMG 글로벌 감사위원회 지원센터(ACI) 리더를 맡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기업 심리 담당 파트너도 겸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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