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와 패션사에 모두 남을 오바마식 패션 정치학
JFK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한 대통령
걷어 올린 소매는 성실함과 열정, 노타이는 권위를 내려놓는 의지를 대변해

공식석상에서도 넥타이를 매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

21세기 글로벌 리더 스타일에 빅 트렌드가 있다면,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 무신경하게 입은 듯 흐트러진 스타일링)’라 할 수 있다. 흔히 패션 트렌드에서 ‘무심한 듯 시크함’이란 수식어가 붙는 ‘에포트리스 시크’는 대충 걸쳐 입은 듯 하지만, 사실은 잘 계산된 흐트러짐의 스타일링이다. 지금, ‘에포트리스 시크’ 열풍의 주인공 오바마의 패션이 임기 막바지를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 흐트러짐을 정치적 ‘쿨’과 ‘시크’로 표현하다

노타이와 노재킷의 오바마 대통령. 걷어올린 셔츠 소매는 항상 손목과 팔꿈치의 중간에 위치한다.

지난 5월 말,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 중에 ‘동남아 청년지도자 이니셔티브(YSEALI)’ 소속 청년 지도자 800명을 만났다. 이 행사에서 오바마는 베트남의 여성 래퍼 수보이(Suboi)의 즉흥 랩에 맞춰 비트 박스를 선보여 뜨거운 환호를 얻어냈다. 베트남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날, 오바마는 비둘기빛이 감도는 연한 블루 셔츠와 블루 타이를 매치시켰다. 타이는 눈에 띄지 않을만큼 살짝 느슨했고, 소매는 걷어 올렸다. 오바마의 ‘노재킷 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드레스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린 ‘노재킷 룩’과 타이를 매지 않고 단추를 풀어 헤친 ‘노타이 룩’은 오바마의 대표 스타일이다. 소매를 걷어 올리는 제스처는 성실함과 열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더불어 권위를 내려놓고 행동하는 일꾼이 되겠다는 의지도 대변한다. 노타이의 풀어진 셔츠 단추는 격식이 없는 대화와 오픈 마인드를 상징학 있다. 언제든지 대화하고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해준다. 패션의 ‘쿨’하고 ‘시크’함을 정치적 신념으로 세련되게 전환시킨, 정치사와 패션사에 모두 남을 성공적인 패션 폴리틱스(fashion politics)다.

◆ ‘노타이 노재킷 스타일링’ 흐트러짐에도 엄격함과 규칙이 있다

캐머런 영국 총리와의 공식 회동에서 노타이 스타일을 고수한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는 미국의 클래식 수트 브랜드 ‘하트 샤프너 막스(Hart Schaffner Marx)’의 골드 트럼피터 라인의 팬이다. 수천불을 호가하는 이탈리안 명품 까날리(Canali) 수트를 입을 때도 있지만, 주로 500~700불 대의 실용적인 하트 샤프너 막스 수트에 미국 대통령의 구두라 불리는 존스톤앤머피(Johnston&Murphy)의 클래식한 레이스업 슈즈(lace-up shoes: 끈으로 묶어 신는 남성 구두의 기본)를 신는다.

특히 오바마는 자기만의 수트 스타일링 철칙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하다. 먼저, 수트는 '투 버튼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two button single breasted jacket: 홑여밈에 한 줄로 두개의 단추가 달린 클래식한 재킷)을 고집한다. 재임 이후에는 베이지색 수트를 시도하는 등 가끔 새로운 컬러로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짙은 감색과 회색, 검정을 고수하는 편이다. 드레스 셔츠는 흰색과 연한 파란색을 주로 입는다. 칼라는 기본적인 레귤러 칼라이며, 커프스는 전통적인 원 버튼이다.

타이는 붉은색과 푸른색을 주로 선택하며, 패턴은 젊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어필하는 사선 스트라이프의 레지멘탈 타이(regimental tie)를 즐긴다. 특히 유명한 건 오바마의 넥타이 매듭법이다. 그는 젊은 감각의 ‘포 인 핸드(four in hand: Y자형) 매듭’에 넥타이 중간의 주름 ‘딤플(dimple: 넥타이 중앙을 오목하게 만든 모양새가 보조개 같다 하여 딤플 매듭이람 불림)’을 강조하는 ‘딤플(dimple)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딤플’이 곧 ‘오바마 매듭’으로 불려질 정도다.

또한 흐트러짐에도 규칙이 있다. 먼저 ‘노재킷 룩’에선 대충 걷어 올린듯 하지만,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위치는 한결같다. 소매 끝단을 두 번 접어 올려 조금 위로 당겨, 손목과 팔꿈치의 중간 정도로 위치하게 한다. ‘노타이 룩’에선 셔츠의 첫 단추만을 풀며 투 버튼 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의 첫번째 단추만 잠근다. 또한 멋장이 답게 의자에 앉을 때는 단추를 모두 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단추를 풀지 않으면 재킷이 구겨지며 앉아 있는 실루엣 전체를 망가뜨린다. 수트 애티튜드의 상식이지만, 의외로 잘 몰라 흔히 저질러지는 실수다.

무엇보다 오바마는 ‘핏’에 엄격하다. 지나치게 여유롭지도 조이지도 않으면서 목, 어깨, 가슴의 핏이 잘 맞아떨어질 때, 걷어올린 소매나 풀어 헤진 단추도 멋져 보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슬림 수트핏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곤 하는데, 최근 미국 남성지

정장 차림으로 테니스 치는 오바마 대통령.

오바마 이후, 세계 정상들이 동시에 노타이 룩으로 공식 석상에서 카메라 플레시를 받는 걸 흔히 보게 됐다. 오바마의 노타이 룩은 시진핑 주석조차 백악관에서 타이를 벗어던지게 할만큼 파워풀하다.

그러나 오바마의 수트입는 방식보다 더 주목해야할 건, 그의 수트 애티튜드(태도)라 해야할 것이다. 오바마는 수트를 액티브 웨어처럼 입고 스포츠 선수들처럼 역동적으로 활동했다. 수트를 입은 채 미국의 인기 토크쇼인 ‘엘렌쇼’에 출연해 엘렌과 나란히 춤을 추었고, 아르헨티나 방문시에는 탱고를 추고, 베트남에선 청년들 앞에서 비트 박스를 선보였다. 말 보다는 행동으로 각 나라와 세대의 문화를 지지하거나 존중하는 오바마식 액티브 수트 정치다.

공식 석상을 떠나 휴식을 즐기는 중에도 백악관 녹색 잔디에서 새하얀 드레스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린 채, 자신의 애완견 퍼스트 독(first dog) 과 뛰어다니며 럭비공을 던지는 사진이 SNS를 타고 전세계인들에게 공유되었다. 곧, 신의 한수는 수트를 액티브 웨어처럼 입고 활동한 그의 자유로움과 인간적인 면모다.

세계를 런웨이로 활보하는 오바마의 패션쇼도 피날레에 다다랐다. 그가 백악관에 작별을 고하고 백스테이지로 사라진 다음에도, 오바마의 패션은 영원한 리더 스타일로 남을 것이다.

◆ 김의향은 보그 코리아에서 뷰티&리빙, 패션 에디터를 걸쳐 패션 디렉터로 활동했다.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로 일할 당시 하이패션만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장르와 상호 융합적이고 동시에 실용적인 스타일 아젠다를 만들어냈다. 현재는 컨셉&컨텐츠 크리에이팅 컴퍼니 ‘케이노트(K_note)’를 통해 크리에이터이자 스토리텔러로 일하고 있다.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을 넘나들며, 그 안에서 브랜드와 소비자의 감성 브릿지를 연결하는 스토리를 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