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비행기를 제작할 때 ‘목업(mock-up·비행기 기체 전부 또는 일부의 모형을 목재로 만든 것)’이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했지만, 3차원(3D) 설계 애플리케이션인 ‘카티아(CATIA)’를 통해 물리적인 모형을 만들지 않고도 100% 디지털 방식으로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다쏘시스템(Dassault Systems)이 추구하는 3D 경험은 비즈니스뿐 아니라 환경과 사람을 위한 지속가능한 ‘가상세계(Virtual Twin)’를 제공해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6월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 9층에 있는 다쏘시스템코리아 본사에서 조영빈(50·사진) 대표를 만났다. 그의 사무실 벽 한쪽은 통유리로 돼있어 한눈에 삼성동 일대가 들어왔다. 차분하게 옆으로 쓸어넘긴 머리에 붉은색 계열의 넥타이로 포인트를 준 조 대표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는 “다쏘시스템코리아는 7년 연속 두 자리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고 올해도 두 자릿수 성장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제품 개발 전(全)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비즈니스 플랫폼인 ‘3D 익스피리언스(3D EXPERIENCE)’로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3D 기반 소프트웨어 업체 다쏘시스템은 지난해 28억3900만유로(3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 대비 24% 증가한 수준이다. 다쏘시스템은 파리 주식 시장과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2014년에는 포브스 선정 소프트웨어 부문 ‘가장 혁신적인 기업’ 세계 2위, 2016년 다보스 포럼 선정 ‘세계 100대 지속가능(The most sustainable) 기업’ 세계 2위에 오르는 등 혁신성과 지속가능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 다쏘시스템코리아에는 어떻게 합류했나.

“영국 에섹스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박사과정 입학 허가도 받아놓은 상태였는데 영국계 인도인인 지도교수가 MBA 과정을 권유했다. 졸업 후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서 열린 잡 페어에서 다쏘시스템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사장을 만났다. 그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할 건데 함께 할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그 당시만 해도 다쏘시스템이 어떤 회사인지도 몰랐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터지기 직전에 다쏘시스템코리아에 입사했다. MBA 전공을 살려 한국 지사 설립 당시 재무팀 매니저를 맡게 됐다. 사무실에 직원은 저 혼자였다. 예산과 재무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쏘시스템코리아의 초기 세팅 작업을 했다. 이듬해인 1998년만 해도 직원이 10명 남짓에 불과했다. 현재 직원수는 200명이며 한국인의 비율이 98%에 달할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했다.”

― 다쏘시스템은 어떤 회사인가.

“다쏘시스템은 1981년 프랑스에 설립된 CAD(컴퓨터 지원 설계) 소프트웨어 회사다. 프랑스 전투기 제조회사인 다쏘항공의 개발팀에서 출발했다. 전투기를 만들기 위해 개발한 CAD 소프트웨어 성능은 뛰어났다. 산업계의 요구도 있어서 다른 항공기 제조사에 CAD 소프트웨어를 판매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설립 초기부터 벤츠, BMW, 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협업했다.그 당시 IBM이 마케팅과 영업을 대행했다. 다쏘시스템의 엔지니어들은 제품 개발에만 주력할 수 있어 혁신적인 기술을 빠르게 선보일 수 있었다. 다쏘그룹의 주 고객사였던 IBM을 통해 카티아를 시장에 내놓는 전략을 택해 IBM과 다쏘시스템 양사가 모두 성공을 거뒀다.

다쏘시스템은 뛰어난 기술력 덕분에 회사의 모태였던 다쏘항공을 비롯해 보잉사 등을 제치고 항공기 디자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CAD 소프트웨어인 ‘카티아’는 IBM 상표를 달고 전 세계 IBM 조직을 통해서 빠르게 확산되면서 세계 1위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특히 카티아는 자동차 디자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카티아는 항공제조 분야뿐 아니라 기계, 조선, 소비상품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사용됐다. 1980년대 중반에는 IBM도 엔지니어링과 제조분야에서 카티아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이 됐다.”

― 다쏘시스템의 소프트웨어는 항공기·자동차에서 그치지 않고 제조업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다.

“보잉은 1995년 다쏘시스템의 디지털 3D 목업을 이용해 100% 디지털 방식으로 ‘보잉 777’을 설계했다. 이를 토대로 초대형 여객기가 제작됐다. 다쏘시스템은 1999년 3D 목업을 ‘제품 수명주기 관리(PLM·Product Lifecycle Management)’라는 개념으로 진화시켰다.

PLM이란 제품 설계부터 생산공정에 이르기까지 제품 출시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디지털로 관리해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생산 프로세스를 말한다. 나아가 최종 소비자(고객)의 피드백(반응)까지 반영해 제품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일련의 반복된 과정을 통해 혁신에 기여하는 기업 혁신 프로세스를 뜻한다. 고객은 PLM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이를 온라인 상에 올릴 수 있게 됐다. PLM은 다쏘시스템뿐 아니라 전 세계 산업계 표준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다쏘시스템은 2012년 PLM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대신 ‘3D 익스피리언스’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3D 기술로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과학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와 철학이 담겨있다. 다쏘시스템은 3D 익스피리언스를 모든 제품군이 포함된 12 개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반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하며 디지털을 통한 경험의 시대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다쏘시스템은 빙하를 이용해 아프리카의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 ‘아이스 드림(Ice Dream)’, 태양열 비행기 ‘솔라임펄스 2’, 심장질환 치료를 위한 3D 심장 모델링 프로젝트 ‘리빙 하트(Living Heart)’, 지속가능한 미래도시 설계를 위한 ‘버추얼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혁신에 나서고 있다.”

― 3D 설계 소프트웨어 회사가 과학 회사로 탈바꿈했다.

“버나드 샬레(Bernard Charles) 다쏘시스템 회장은 3D 기술로 기업과 과학, 사회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당장은 수익과는 거리가 먼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샬레 회장은 더 나은 지구를 자손들에게 넘겨줄 방법을 고민했고,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제품과 개인의 건강, 자연환경이 더 나아지면 결국 자손들이 잘살게 될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

2013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마르틴 카르플루스는 수학적 계산과 이론을 이용해 화학적 성질을 컴퓨터로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201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카사키 이사무도 청색 발광다이오드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다쏘시스템의 3D 익스피리언스를 연구에 활용했다.”

― 3D 소프트웨어를 통해 인공심장을 제작하고 가상 도시를 설계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2014년 심장질환 치료를 위한 3D 심장 모델링 프로젝트 ‘리빙하트’에 착수했다. 유럽에서는 2025년부터 신약 개발을 위한 쥐 등 동물 생체실험이 금지된다. 이렇게 되면 특정한 병의 원인이나 새로운 약을 만드는 연구에 차질이 생긴다.

3D로 디자인된 디지털 심장을 이용해 제약회사는 신약효과를 실험할 수 있고, 의사는 수술 전에 가장 효율적으로 수술할 방법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의사나 제약회사 연구진들은 심장이 특정 약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컴퓨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쏘시스템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하버드대에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제공했다.

다쏘시스템은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설계하기 위해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통해 싱가포르 도시의 각종 데이터를 ‘3D 익스피리언시티’에 입력하고 현실 모습과 동일한 가상의 도시를 건설했다. 가상의 도시에서 건물 하나를 지었을 때 나타나는 교통 체증의 문제, 건물과 건물 사이 바람의 풍속 등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건물을 설계할 수 있고 환경 친화적인 도시 조성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

― 한국에는 언제 진출했고 무슨 사업을 하고 있나.

“다쏘시스템의 한국 법인인 다쏘시스템코리아는 1997년에 설립됐다. 현재 200명이 근무 중이며 한국인의 비율이 98%에 달할 만큼 현지화에 성공했다. 삼성전자, 포스코, LG전자, 현대자동차, 두산인프라코어, 삼성디스플레이, STX, 현대중공업, 한국항공우주, SK하이닉스 등 국내 1만1000개의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한국항공우주는 3D 디지털 목업을 통해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 현대, LG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이용해 가상의 제품을 디지털로 미리 다지인해보고 제품을 제작한다. 가상의 비행기, 자동차, 선박 등을 3D 소프트웨어를 통해 디지털로 미리 설계해보고 이를 통해 테스트해본 결과를 실제 제작에 반영하는 것이다.

2010년 720억원을 투자해 대구 최초의 해외기업 연구개발(R&D) 센터인 조선해양산업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대구 지역에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다.”

― 제품 설계부터 생산, 유통 등 제조업 전 과정에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하는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등 제4차 산업혁명(ICT와 제조업 융합)이 제조업계의 큰 관심사다.

“우리나라에는 삼성, 현대차, LG 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벤처기업나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들도 있다. 이들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다쏘시스템코리아의 목표다. 제품 전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비즈니스 플랫폼인 3D 익스피리언스를 통해 국내 제조기업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경쟁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치킨집을 하더라도 창의적이면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 치킨집만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이 보유한 가치있는 무형의 아이디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다쏘시스템코리아는 이노디자인, 스트라타시스코리아와 함께 한국의 차세대 디자인을 주도할 청년 디자이너 육성을 위한 청년 디자인 지원 프로젝트 ‘디자인 2020’을 시작했다.

디자인 2020의 대상자는 젊은 디자이너, 관련 전공 학생, 디자인 전공이 아니더라도 3D솔루션을 사용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상품 개발에 도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다쏘시스템은 디자이너들이 최상의 솔루션을 활용해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기반의 ‘3D 익스피리언스 플랫폼’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우수작을 공동 지원해 상품화하고 디자이너들의 취업까지 적극적으로 돕겠다”

― 올해 사업 목표와 앞으로의 비전은.

“국내 경제와 산업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세계 최대 크루즈선(초호화 유람선) 제조업체 독일 마이어베르프트 한 임원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조선업이 독일에서 계속 영위되려면 혁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에 있는 모든 공장이 중국으로 가야한다. 독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혁신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빨리 성장시키고 그 성과를 누리다 보니 성장세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안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변화를 너무 두려워한다.

기업들이 100억원 투자해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 시스템을 100년동안 사용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100원을 투자해서 1000원을 버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얼마를 버는 것이 아니라 90원을 투자하는 것을 고민한다. 새로운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혁신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다쏘시스템코리아는 국내 기업들에 혁신을 위한 파트너가 되고 싶다. 진정한 혁신 파트너로서 국내 기업이 새롭게 성장하고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1967년 서울 출생
-영국 에섹스대 경제학 학사
-일본 인터내셔널대 MBA
-경희대 경제학 박사
-1997년 다쏘시스템 KTCC(Korea Technical Competency Center) 파이낸스 매니저
-2006년 다쏘시스템 중국 PLM 채널 총괄 상무
-2008년 다쏘시스템 한국 지사장
-2010년~현재 다쏘시스템코리아 대표이사